탄핵정국 한달, 톱20 기업 시총 37조 증발…곡소리 나는 재계

탄핵 정국 칼바람에 재계가 된서리를 맞고 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국내 주요 기업의 시가총액이 줄줄이 하락하며 기업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여기에 치솟는 환율에 따른 자금 부담은 커지고 있다.  

29일 중앙일보가 한국거래소 데이터를 활용해 비상계엄이 선포됐던 지난 3일부터 최근인 27일까지 국내 시총 ‘톱 20위’ 기업의 시총을 분석해 보니 24일 만에 37조1139억원이 감소했다. 시총은 주가와 발행 주식수를 곱한 수치로,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대표적인 지표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이 기간 미국 보조금 최종 계약 낭보가 있었던 SK하이닉스(6조9889억원), 미국 정부의 협력 요청을 받은 HD현대중공업(6조79112억원), 기아(1조1533억원)‧삼성전자(5970억원)‧현대차(1048억원)를 제외한 나머지 기업은 시총 하락을 피하지 못했다.  

가장 하락폭이 큰 기업은 배터리 사업 부진을 겪고 있는 LG에너지솔루션(-11조4660억원),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고려아연(-10조6622억원), KB금융(-6조3751억원), 신한지주(-4조528억원), 삼성바이오로직스(-2조3487억원) 등이었다.  

재계는 울상이다. 비상계엄 이후 탄핵까지 정국이 안정될 낌새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두산그룹은 진행하던 사업구조 개편도 포기했다. 두산은 지난 10일 임시주주총회에서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두산밥캣을 떼어내 두산로보틱스의 자회사로 옮기는 분할·합병 계획에 대한 주주 동의를 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2만1000원선이었던 두산에너빌리티 주가가 비상계엄 이후 1만7000원대로 떨어지면서 주식매수청구예정가를 밑돌자 5개월간 준비했던 분할합병을 포기했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관계자는 “연초부터 정부 주도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동참해 자사주 소각‧배당 확대 같은 주주환원책을 고심해서 발표하고 있지만, 날벼락 같은 정국에 한 번에 물거품이 됐다”고 토로했다.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짓고 있는 반도체 공장. 완공되면 4나노 와 2나노 칩이 본격적으로 생산된다. [REUTERS=연합뉴스]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짓고 있는 반도체 공장. 완공되면 4나노 와 2나노 칩이 본격적으로 생산된다. [REUTERS=연합뉴스]

 
더 큰 문제는 ‘트럼프 한파’가 코앞에 닥쳤다는 점이다. 다음달 미국 보호주의로 무장한 트럼프 정권이 들어서지만, 한국은 통상외교 공백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 수출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미국의 정권 교체기에 대통령 대행의 대행 체제로는 제대로 된 협상을 할 수 없다는 우려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는 사업가 출신으로 협상의 달인이라 정국이 안정된 상황에서도 대통령간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 필요한 인물”이라며 “대통령 대대행 체제에서 통상외교에 얼마나 힘이 실릴지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뛰는 환율도 기업들에겐 부담이다. 외환당국이 국민연금과 외환스와프 확대 등 다각도로 환율 방어에 나서고 있지만, 상승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미국 달러 대비 원화값은 지난 3일 1402.9원에서 지난 27일 1470.5원으로 4.8% 올랐다. 달러로 결제 대금을 받는 수출 기업 입장에선 환차익을 노릴 수도 있지만, 대부분 원자재를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에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다.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한 대기업은 속이 더 쓰리다. 달러 강세가 길어지면 투자 비용이 예상보다 크게 늘어날 수 있어서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170억 달러를 투자해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는 등 2030년까지 37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지난 3일과 27일의 환율을 기준으로 비교하면 삼성전자의 미국 투자 비용은 2조5000억원 늘어난다.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SK회장)은 지난 17일 국회의장과 간담회에서 "경제에서 가장 큰 공포는 불확실성"이라며 "미국 새 정부 출범에 따른 대응이 기업 혼자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벅찬 만큼 정부도 각별히 신경 써주길 부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