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세계가 맛보고 싶어 해요, 정성·시간 듬뿍 들인 구수한 한국의 맛

간장·된장·고추장 등은 우리 밥상에 빠질 수 없는 장류 식품입니다.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이 음식의 간을 맞추고 맛을 내는 데 사용한 장류(醬類)는 보통 일정 기간 이상 숙성을 전제로 하는 복합 발효 식품이에요. 지난 12월 3일(현지시각)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 간 위원회는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Knowledge, beliefs and practices related to jang-making in the Republic of Korea)라는 명칭으로 우리 장류 문화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했습니다. 위원회는 “장은 가족의 정체성을 반영하며 가족 구성원 간의 연대를 촉진한다”며 “공동의 행위를 통해 공동체의 평화와 소속감을 조성한다”고 평가했는데요. 등재에 앞서 위원회 산하 평가기구는 ‘장 담그기 문화’와 관련해 “된장·간장·고추장과 같은 발효 장류는 한국 식생활의 근간을 이루는 식품”이라며 “장류는 각 가정의 역사와 전통을 담고 있고, 전승 노력도 공동체 안에서 활발하다”고 설명한 바 있죠. 소중한 전통 장을 지키고 알려온 사람들, 대한민국 장류 식품명인을 만나러 소중 학생기자단이 출동했습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한국 장 담그기 문화를 알아보기 위해 소중 학생기자단이 전통 장 대한민국식품명인을 만났다. 왼쪽부터 전상윤 학생기자, 정승환 죽염홍된장 명인, 조현하·서지안 학생기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한국 장 담그기 문화를 알아보기 위해 소중 학생기자단이 전통 장 대한민국식품명인을 만났다. 왼쪽부터 전상윤 학생기자, 정승환 죽염홍된장 명인, 조현하·서지안 학생기자.

한국의 23번째 인류무형문화유산이 된 장 담그기 문화는 장이라는 음식뿐 아니라 다양한 재료를 준비해 장을 만들고 관리·이용하는 과정에서 전하는 지식·신념·기술 등을 아우릅니다. 우리나라에선 주로 콩으로 쑨 메주에 소금물을 알맞게 부어 숙성시킨 뒤 장물을 떠내 간장을, 건더기로는 된장을 만들었죠. 메줏가루에 고춧가루와 여타 재료를 더해 고추장을 만들고요. 특히 메주를 띄운 뒤 된장과 간장을 각각 만들고, 아껴둔 씨간장을 새로운 장에 더하는 방식은 한국만의 독창적 문화로 여겨져요.  
우리나라에서 콩을 재배한 것은 초기 철기시대 무렵으로 알려져 삼국시대에는 콩을 활용해 몇 가지 장류 식품을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다만 고려시대까지는 장류에 대한 기록은 있으나 제조법은 남아있지 않고, 구체적인 장 담그는 법이 실린 문헌은 조선시대 것이 대부분이에요. 이를 기반으로 오늘날에도 장류 식품을 만들고 있죠.  
우리 전통을 살려 장류 식품을 만들며 장 문화를 전파하는 식품명인도 여럿입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1994년부터 우수한 전통식품의 계승·발전을 위해 대한민국식품명인을 지정·인증해왔는데요. 조윤주 식품명인체험홍보관 관장은 “그중 장류로 식품명인이 되신 분은 총 13명”이라고 귀띔했죠. 서울 종로구에 있는 식품명인체험홍보관은 전국 각지의 명인들을 서울에서 만날 수 있는 곳이에요. 이곳에서 서지안·전상윤·조현하 학생기자가 죽염홍된장으로 식품명인이 된 정승환 명인을 만났습니다.

장물을 떠내며 된장과 간장으로 장 가르기를 하는 시범을 보이는 정승환 명인.

장물을 떠내며 된장과 간장으로 장 가르기를 하는 시범을 보이는 정승환 명인.

정 명인은 16세 때부터 부모님을 도우며 광주 정씨 집안 대대로 내려온 죽염홍된장 제조법을 전수받았죠. 죽염홍된장은 조선 숙종 때의 기록인 ‘갑자윤부’와 명인의 할아버지가 쓴 민간요법 의서 등에 그 제법이 자세히 나와요. 이를 토대로 경남 하동 청학동에서 재배한 콩, 지리산 800고지의 천연 옥계수와 전통 비법으로 9번 구운 죽염 등을 사용해 만들죠. 보통 된장 하면 누런빛을 떠올리지만, 이 된장은 오랜 시간에 걸쳐 덧장을 쳐 붉은색을 띱니다.
상윤 학생기자가 “원래 된장 색이 여러 가지인지, 그럼 색이 다르면 그 가치도 달라지는지” 궁금해했죠. 정 명인은 “자연 상태에서 발효 시 시간이 지날수록 색이 달라진다”며 “오래 숙성할수록 체내 흡수율도 높아진다”고 했죠. “1~3년 정도면 맑다, 젊다고 해서 청장, 4~5년쯤 되면 그리 진하지 않은 색에 감칠맛이 돌아 조미료로 쓰기 좋은 준장, 5~6년 정도면 누렇게 풋풋한 맛도 나고 국·찌개 끓이기 좋은 황장이 되고 6~7년이 넘으면 감홍색으로 순하고 깔끔해 차별화된 맛이 나는 홍장이 됩니다. 청장이나 준장은 체내 흡수율이 약 78%인데, 홍장은 95~99%로 소화에 부담도 없죠. 학생기자단 여러분처럼 어린이나 노약자도 편하게 먹을 수 있어요.”

40년 된 죽염씨간장이 담긴 항아리 속을 들여다보는 조현하(왼쪽)·서지안 학생기자.

40년 된 죽염씨간장이 담긴 항아리 속을 들여다보는 조현하(왼쪽)·서지안 학생기자.

정 명인의 죽염홍된장은 먼저 죽염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10년 동안 간수를 뺀 천일염을 3년 된 대나무 통에 넣고 황토가마에서 920~930도로 8번, 마지막에 1300도 이상 온도에서 총 9번 굽죠. 좋은 장을 만들려면 메주를 잘 띄우는 것도 중요합니다. 가을에 대두로 메주를 만들어 지리산의 청량한 환경에서 발효시키죠. 이듬해 음력 정월, 화창한 날을 골라 죽염과 메주, 옥계수를 옹기에 담아 장을 담그고 40일 정도 침전 후 된장과 간장으로 장 가르기를 해요. 장 가르기 2년 후부터 매년 1번씩 총 7번의 덧장을 칩니다.  
“그럼 7년 동안 덧장 작업을 하시는 건가요?” 놀란 지안 학생기자가 “덧장이란 어떤 작업이고 맛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려달라고 했죠. “장은 한번 담은 그대로 유지되는 게 아니에요. 그 속에 수억만 미생물들이 활동하며 발효되는데, 시간이 지나면 멈추게 되죠. 그래서 미생물들이 계속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메주·쌀보리·죽염·물 등의 재료를 가마솥에 죽처럼 고아 기존 장에 뒤섞는 덧장을 통해 새로운 먹이를 주는 겁니다.”  
현하 학생기자가 “오랫동안 장을 만들며 메주 등 특유의 냄새가 힘들진 않으신지” 운을 떼자 상윤 학생기자도 “메주에 곰팡이가 핀다는데 먹어도 문제가 없는지” 물어봤죠. “어릴 때부터 해온 작업이라 자연스럽고, 적당히 잘 익은 메주는 그렇게 심한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말한 명인은 메주를 잘 말려 띄우면 좋은 균이 나온다며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메주를 보여줬어요. 메주를 반으로 쪼개자 군데군데 희고 노랗게 된 부분이 보였죠.

정승환(맨 왼쪽) 명인이 죽염홍된장을 만들기 위해 경남 하동 청학동에서 재배한 콩으로 만든 메주를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보여주며 좋은 메주에 관해 설명했다.

정승환(맨 왼쪽) 명인이 죽염홍된장을 만들기 위해 경남 하동 청학동에서 재배한 콩으로 만든 메주를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보여주며 좋은 메주에 관해 설명했다.

“죽염홍된장에 쓰는 메주예요. 두 가지 균주가 메인인데, 흰 백국은 시원한 맛을 내고 노란 황국은 고소한 깊은 맛을 내죠. 안 좋은 건 청국·흑국 같은 게 뜨는 건데, 그럴 땐 먹으면 안 돼요.” 메주를 직접 들어보고 코 가까이 대고 냄새도 맡아본 소중 학생기자단은 “싫은 냄새가 아니고 은은하게 고소한 냄새가 난다”고 신기해했죠.
“장은 왜 오래 둬도 상하지 않고 보존이 잘되나요?” 현하 학생기자가 이어 질문했죠. “물과 재료 등 비율을 잘 맞춰서 염도를 유지하는 거죠. 저는 조선 중기부터 270여 년 이어온 씨장, 장씨앗도 가지고 있어요. 여기 40년 숙성한 죽염씨간장을 가져왔으니 한번 맛보세요.” 항아리에 담긴 간장은 오래된 것에서 연상한 쿱쿱함 대신 맑은 느낌이었죠. 살짝 찍어 맛보니 짠맛과 단맛, 감칠맛이 어우러진 맛있는 맛이 났어요.  
“김칫독처럼 장 항아리도 땅속에 묻나요?” 상윤 학생기자가 묻자 정 명인은 “옛날엔 김치냉장고 같은 게 없어서 김칫독을 땅에 묻어둔 거고, 장은 햇빛을 받고 공기를 만나야 깔끔하고 맛있게 숙성된다”고 했어요. “전통 옹기에 장을 담아 두면 항아리가 숨을 쉬어요. 미생물들이 원활하게 발효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인 거죠. 장이 익는 소리도 들을 수 있어요. 다만 옹기에 넣은 채 오래 두면 증발하는 양이 많아 숙성 후에는 따로 보관합니다.”


급장을 만들기 위해 잘 삶은 메주콩을 적당히 으깨고 삶은 보리쌀과 함께 치대는 소중 학생기자단.

급장을 만들기 위해 잘 삶은 메주콩을 적당히 으깨고 삶은 보리쌀과 함께 치대는 소중 학생기자단.

지안 학생기자는 “전통식으로 장을 만드는 장단점과 공장 제조와의 차이점을 꼽아주세요”라고 청했죠. “저는 16세에 부모님께 레시피를 물려받고 지금까지 50년 가까이 전통 방식으로 장을 만들어와서 이게 더 좋고 편하고 단점을 잘 모르겠어요. 기업식 공장 생산과 차이라면 아무래도 오랜 시간을 들여 정성껏 만드는 데서 나오는 깊은 향과 좋은 영양을 우리 땅에서 자란 자연의 원맛 그대로 섭취할 수 있어 건강한 삶에 도움이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어 소중 학생기자단은 죽염홍된장과 덧장 기법을 활용한 급장 만들기 체험에 나섰습니다. 잘 삶은 메주콩을 적당히 으깨고 삶은 보리쌀을 치대 동그랗게 빚은 다음 가운데에 홈을 파고 덧장을 위한 씨된장·씨간장을 섞어 다시 모양을 잡아주면 되는데요. 명인이 삶아둔 콩을 으깨는 것부터 난관이었습니다. “너무 잘게 부수려고 하지 않아도 돼요. 60~70% 정도로 으깨면 식감도 살죠.” 정 명인의 가르침대로 무사히 과정을 완수한 세 사람은 콩 반 조각까지 싹싹 긁어 통에 담았죠. “해는 피해서 실온에 2주 정도 두면 먹을 수 있어요. 그때부턴 냉장 보관하고요.”  

잘 삶은 메주콩, 삶은 보리쌀을 으깨고 치댄 뒤 씨된장·씨간장을 섞어 급장을 만든 전상윤 학생기자.

잘 삶은 메주콩, 삶은 보리쌀을 으깨고 치댄 뒤 씨된장·씨간장을 섞어 급장을 만든 전상윤 학생기자.

열심히 만든 급장 맛을 상상하는 소중 학생기자단 앞에 죽염홍된장으로 끓인 된장국과 밥, 김과 홍된장쌈장, 무 샐러드가 차려졌어요. 무 샐러드엔 홍된장을 활용한 드레싱을 뿌렸죠. 현하 학생기자는 “드레싱이 새콤해 샐러드랑 잘 어울린다”며 “된장으로 만들었다고 말 안 하면 모를 것 같다”고 했죠. “평소 먹는 된장국이랑 좀 다르다”며 맛을 음미하는 지안 학생기자 옆에서 상윤 학생기자는 “너무 맛있다”며 쌈장·밥·김 조합으로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죠.
이렇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전통 장인데, 날로 늘어나는 수출에 비해 국내 소비량은 갈수록 줄고 있습니다. 지안학생기자가 “국내 소비량도 늘릴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저희 같은 어린이도 즐길 만한 레시피 개발도 필요할 것 같아요”라고 하자 현하 학생기자가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가 호재가 될까요”라고 덧붙였죠.

된장으로 만든 드레싱을 무 샐러드에 뿌려 맛봤다. 정승환 명인은 죽염홍된장을 바탕으로 한 소스류를 개발 중이다.

된장으로 만든 드레싱을 무 샐러드에 뿌려 맛봤다. 정승환 명인은 죽염홍된장을 바탕으로 한 소스류를 개발 중이다.

“그럼요. 많은 장류 식품명인들과 관계자분들이 노력한 덕분에 인류무형문화유산이 됐으니, 이를 통해 홍보가 잘되고 정부 차원에서도 전통 장류를 분류해 지원해 주길 바라요. 제 경우 원장만 가지고는 시장성이 좁아 소스류를 개발하고 있어요. 김밥용·샐러드용 등 10여 종을 내년 출시 예정이니 마트나 백화점 등을 잘 살펴봐 주세요. 그리고 지금 소년중앙학생기자단 여러분이 우리 전통 장을 취재하고 기사도 쓰잖아요.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전통 장의 가치와 장 담그기 문화를 널리 알려주세요.”

대한민국 전통 장 식품명인을 소개합니다

대한민국식품명인 중 전통 장류 명인은 정승환 명인을 포함해 모두 13명입니다. 이름만 들어도 아는 순창고추장·청국장부터 생소한 천리장·즙장까지, 다양한 우리 장류 식품을 보존·전파하는 명인들을 만나봐요.

기순도(식품명인 35호: 진장)

한국 전통 장 명인 기순도(식품명인 35호: 진장)

한국 전통 장 명인 기순도(식품명인 35호: 진장)

전남 담양군 창평면 유천리 작은 마을, 양진제 고세태 종가의 종부 기순도 명인은 370여 년 대대로 내려온 씨간장을 보존하고, 진장(5년 이상 숙성시킨 간장) 제조기법을 전수 발전시켜 진장 명인으로 선정됐습니다. “제사 때마다 씨간장을 떠서 음식을 마련하고, 떠낸 만큼 맛 좋은 햇간장이나 진장을 보충합니다. 집안의 맛이 370년 세월만큼 쌓인 맛입니다.” 기순도 명인의 장맛은 150m 지하에서 퍼올린 맑고 깨끗한 물과 직접 구운 담양의 죽염에서 나와요. 죽염은 장맛을 더욱 깊고 부드럽게 하죠. 또한 메주를 많이 쓰고 숙성과정에서 간장을 많이 빼지 않기 때문에 간장도 진하고 된장 맛도 좋습니다.  

조종현(식품명인 36-가호: 순창고추장)

한국 전통 장 명인 조종현(식품명인 36-가호: 순창고추장)

한국 전통 장 명인 조종현(식품명인 36-가호: 순창고추장)

조종현 명인은 ‘고추장 하면 순창’ 공식을 만든 고(故) 문옥례 명인의 아들로 2대째 명인이자 7대째 집안의 장 담그기 문화를 이어가고 있죠. “맛있는 고추장은 비법이랄 게 없습니다. 정성껏 담으면 됩니다. 비율은 정해져 있고 좋은 재료를 길러 정성껏 담가 숙성시키면 그걸로 끝이죠. 더 할 게 없습니다.” 여기에 물과 공기가 맑고 지대가 높은 순창은 고추장 맛을 내기에 최적지라고 해요. 조종현 명인이 어머니로부터 배운 전통의 손맛으로 국내산 농산물만 사용해 만든 순창고추장은 검붉은 색, 은은한 향기, 뛰어난 감칠맛을 자랑해요. 순창문옥례식품은 전통 장류를 바탕으로 여러 제품군을 생산하죠.

권기옥(식품명인 37호: 어육장)

한국 전통 장 명인 권기옥(식품명인 37호: 어육장)

한국 전통 장 명인 권기옥(식품명인 37호: 어육장)

오랜 사대부 가문으로 특히 증조할아버지 때는 흥선대원군과 왕래해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궁중음식을 접한 권기옥 명인은 어육장(어육된장·어육청장) 명인입니다. 집안에 100년 이상 내려온 어육장은 일반 장과 달리 콩 외에 소고기·닭고기·도미·대구·가자미·조기·병어·두부·다시마가 들어가는 전래의 방법만 봐도 궁중과 사대부 양반들이 아니면 감히 담글 수 없었던 고급 장인데요. 『규합총서』에 “그 맛이 아름답기 그지없다”고 기록됐죠. 어육장은 다양한 재료서 녹아난 특유의 깊고 구수한 감칠맛이 특징으로, 명인에 따르면 “찌개를 끓이면 고기를 넣지 않아도 고기국물 맛이 느껴진다”고 합니다.

한안자(식품명인 40호: 동국장)

한국 전통 장 명인 한안자(식품명인 40호: 동국장)

한국 전통 장 명인 한안자(식품명인 40호: 동국장)

조선시대 왕후 집안인 사직촌 한씨 가문의 30대손으로 어머니로부터 전통장류 비법을 전수받고 결혼 뒤 시어머니로부터 100년 묵은 씨간장과 함께 해남 윤씨 집안의 장류 제조비법까지 전수받은 한안자 명인은 지정품목인 동국장을 비롯한 여러 전통식품을 만듭니다. “생장(生醬)은 말 그대로 살아있는 장입니다. 생장인 동국장은 일반 된장처럼 메주를 발효시켜 끓이거나 간장을 따로 내지 않고 발효균이 살아 있는 그대로 떠다 먹죠.” 된장과 간장의 장점을 동시에 가진 동국장은 희석하는 정도에 따라 각종 나물·국·찌개 요리에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으며, 비빔밥 소스나 샐러드 드레싱으로도 좋아요.

성명례(식품명인 45호: 대맥장)

한국 전통 장 명인 성명례(식품명인 45호: 대맥장)

한국 전통 장 명인 성명례(식품명인 45호: 대맥장)

안동 권씨와 안동 김씨 등 사대부 집안에 내려온 대맥장은 생소한 우리 전통 장 중 하나예요. 대맥장을 전수한 성명례 명인에 따르면 재료는 검은콩과 보리쌀로 단순하지만, 질 좋은 검은콩을 선별해 볶은 다음 물에 담가 불린 후에 삶고 보리가루를 섞어 또 찌는 등 제조 과정이 독특하며, 메주를 띄울 때는 꼭 닥나무 잎에 싸서 발효시키고, 10~12도 정도 염도로 저염식에 냉장보관을 해야 하는 점도 일반적인 장과 다른 점입니다. 검은 빛깔을 띤 대맥장은 찌개를 끓이는 등 가열용으로는 쓰지 않고 쌈장처럼 찍어 먹거나 비빔밥 장 등 소스로 쓰는데, 조상들이 하던 그대로 만든 전통의 맛이 난답니다.

윤왕순(식품명인 50호: 천리장)

한국 전통 장 명인 윤왕순(식품명인 50호: 천리장)

한국 전통 장 명인 윤왕순(식품명인 50호: 천리장)

천리 길을 들고 가도 상하지 않는다는 ‘천리장(千里醬)’은 파평 윤씨 집안 대대로 내려온 내림장이자 귀한 손님께 대접하던 별미장이에요. 조선시대 『증보산림경제』(1766)에도 기록돼 있죠. 윤왕순 명인은 집안의 내림장이자 문헌에 남은 천리장을 복원해 지금의 천리장으로 상품화하는 데 성공하여 세상에 널리 알리고 있죠. 직접 농사지은 햇콩과 5년 이상 간수를 뺀 질 좋은 국산 소금을 주재료로 사용해 담근 감청장(甘淸醬)과 소고기가 재료입니다. 맑은 빛깔과 깊은 향, 그리고 단맛까지 어우러진 구수한 감청장에 잘 말려서 빻은 소고기를 더해 걸쭉하게 졸여 낸 천리장은 영양가도 높고 보존성도 좋죠.

최명희(식품명인 51호: 소두장)

한국 전통 장 명인 최명희(식품명인 51호: 소두장)

한국 전통 장 명인 최명희(식품명인 51호: 소두장)

소두장(小豆醬)은 일반적인 장과 달리 팥을 주재료로 한 독특한 장이에요. 최명희 명인의 소두장은 『증보산림경제』와 『규합총서』의 기록과, 안동 김씨 계공랑공파 30대 종부로서 익힌 100여 년이 넘게 이어진 제조법을 통하여 만든 것으로 조상들이 전해준 지혜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죠. 소두장은 주재료가 팥이라 먹어보면 단팥죽 냄새가 나면서 굉장히 구수하고, 특유의 단맛이 입안에 돌아요. 또 팥을 삶아 띄우고 팥누룩에 콩을 볶은 뒤 갈아 숙성시켜 콩에 없는 영양소를 보충하고 소화도 돕죠. 찌개 등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지만 특히 쌈장으로 먹을 때 소두장만의 향을 가장 잘 느낄 수 있어요.  

서분례(식품명인 62호: 청국장)

한국 전통 장 명인 서분례(식품명인 62호: 청국장)

한국 전통 장 명인 서분례(식품명인 62호: 청국장)

전통 밥상에서 청국장은 단백질 보충원 중 하나였죠. 3대째 제조법을 이어받아 30여 년간 청국장을 만들고 있는 서분례 명인이 운영하는 경기도 안성 서일농원은 3만여 평 부지에 2500개의 장독을 아우르는 규모로, 콩 선별부터 청국장 완성까지 전통방식을 고수합니다. 천장까지 편백나무로 꾸민 발효실에서 키워낸 균을 활용해 청국장을 띄우죠. 균이 잘 자란 청국장은 고약한 냄새가 아닌 구수한 향이 납니다. “전통 청국장은 선조들의 지혜와 자연이 주는 발효의 선물”이라는 그는 “청국장은 살아있는 식품이라 냉장고 안에서도 발효된다”며 오래 두고 먹으려면 냉동보관을 해야 한다고 팁을 전했어요.

강순옥(식품명인 64호: 순창고추장)

한국 전통 장 명인 강순옥(식품명인 64호: 순창고추장)

한국 전통 장 명인 강순옥(식품명인 64호: 순창고추장)

발효천국이라 불리는 순창에서 강순옥 명인이 만드는 고추장의 특징은 찹쌀풀이 아니라 찹쌀밥을 지어 넣는다는 거예요. “찹쌀밥에 메줏가루·천일염·조청·고춧가루를 넣어 밥 고추장을 합니다. 옛날엔 차가 없어 장에 방아 찧으러 가려면 멀리 걸어야 했지만 밥을 질퍽하게 해서 담으면 장에 갈 필요 없이 손쉽게 할 수 있죠. 쌀눈은 안 삭으니 식감도 있고요.” 친정 할머니·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손맛에 시어머니의 장맛을 더해 40여 년간 고추장을 만들며 늘 모든 과정을 직접 보고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강순옥 명인은 지금도 수없이 신제품을 개발하며 체험부터 수출까지 고추장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죠.

백정자(식품명인 65호: 즙장)

한국 전통 장 명인 백정자(식품명인 65호: 즙장)

한국 전통 장 명인 백정자(식품명인 65호: 즙장)

『시의전서』에 따르면 1600년대부터 담가 먹던 즙장은 절인 채소가 들어가는 것과 짧은 숙성기간이 특징이에요. 백정자 명인은 전남 강진 군동면 해주 최씨 현감공파 33대 종갓집 며느리로 집안의 제조 비법을 통해 즙장을 만들죠. 찹쌀로 죽을 쑤고 고춧가루·고춧잎·가지·노각·무·메줏가루·누룩가루·엿기름가루 등을 섞어 3일 정도 발효·숙성하면 먹을 수 있는 명인의 즙장은 『시의전서』 기록과 가장 유사합니다. 쉬워 보이지만 재료 하나하나 농사지어 염장하는 등 준비에만 1년이 걸리죠. “염장 채소를 사용해 슴슴한 저염식 장이에요. 갓 지은 뜨끈한 밥에 즙장을 비벼 먹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을 정도죠.”

양정옥(식품명인 75호: 제주막장)

한국 전통 장 명인 양정옥(식품명인 75호: 제주막장)

한국 전통 장 명인 양정옥(식품명인 75호: 제주막장)

양정옥 명인은 제주 서귀포 토종콩인 푸른콩으로 만든 푸른콩장으로 제주막장 명인이 됐습니다. 제주막장, 푸른콩장은 귀중한 맛 자원을 보호·전승하려는 국제슬로푸드협회 ‘맛의 방주’(Ark of Taste) 국내 1호이기도 하죠. 푸른콩·천일염과 한라산에서 발원한 화산 암반수를 가지고 할머니가 하던 대로 누룩을 사용해 장을 만드는 방식은 17세기 규장각본 『주방문』에 나오는 제법과 상통해요. 명인은 사라져가는 푸른콩 종자를 지키기 위해 직접 농사짓는 채종포도 운영하죠. 장을 담글 때 쓰는 콩은 도내 농가와 계약해 재배합니다. 깊은 맛과 향이 특징이며 찌개·국·쌈장 등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어요.

조정숙(식품명인 78호: 된장)

한국 전통 장 명인 조정숙(식품명인 78호: 된장)

한국 전통 장 명인 조정숙(식품명인 78호: 된장)

초계 변씨 집안 시어머니로부터 500년 이상 내려온 전통 장 제조 기술을 배운 조정숙 명인은 전국 최초 된장 명인이기도 합니다. 흔히 세계 3대 광천수라 불리는 초정약수 마을 자락에서 키운 무농약 친환경 재료와 100년 이상 된 집안의 씨간장, 1000여 개의 옛 항아리 등을 활용해 정성껏 만드는 것이 명인의 장맛 비법이에요. 씨간장은 소금을 채운 항아리에 잘 보존하죠. 전통을 살려 태양과 바람에 장맛을 맡기며 사람의 정성으로 숙성한 된장에선 고소한 향기가 납니다. “후손에게 아름다운 이야기와 장맛을 물려주기 위해 노력하고 더욱 발전할 것”이라는 명인의 전통 장 비법은 딸에게 전수 중이죠.
동행취재=서지안(서울 잠일초 5)·전상윤(경기도 낙생초 4)·조현하(서울 성내초 5) 학생기자

소중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죽염홍된장에 쓰는 메주의 냄새를 맡아본 서지안 학생기자.

죽염홍된장에 쓰는 메주의 냄새를 맡아본 서지안 학생기자.

옛날부터 내려오는 조상님들의 장 담그는 방식을 그대로 이어가는 정승환 명인님을 취재하며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장’은 우리 식생활의 필수품이자 한식의 맛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며, ‘장’을 완성하기까지는 콩·소금·물뿐 아니라 ‘기다림’과 ‘정성’까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우리나라 전통음식 ‘장’이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정승환 명인님을 비롯한 많은 분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들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죠. 또 자랑스러웠고요. 장을 담그는 방법을 자세히 알고 나니 뿌듯했고 한번쯤 제대로 담가보고 싶어졌어요.  
-서지안(서울 잠일초 5) 학생기자

죽염홍된장으로 만든 쌈장을 김에 올리고 밥을 더해 맛보는 전상윤 학생기자.

죽염홍된장으로 만든 쌈장을 김에 올리고 밥을 더해 맛보는 전상윤 학생기자.

우리 장 담그기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됐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 대한민국식품명인 제67호 정승환 명인님과 인터뷰하면서 장류문화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장 만드는 과정 설명을 듣고, 삶은 메주콩·보리쌀을 치대어 으깬 뒤 씨된장·씨간장을 더해 죽염홍된장 급장도 만들어봤죠. 처음엔 홍된장이 붉고 매운 된장인가보다 했는데요. 숙성기간 6~7년이 넘어야 감홍색의 ‘홍장’이 된다고 합니다. 죽염홍된장으로 끓인 된장찌개를 시식했는데, 구수한 맛이 정말 최고였어요. 또, 김에 밥을 얹고 홍된장쌈장을 싸 먹는 김밥도 맛있었죠. 끈적끈적 보리쌀을 열심히 치대 만든 된장으로 집에 가서 바로 찌개를 끓여 먹고 싶었지만, 명인님이 알려주신 대로 숙성 중입니다. 우리 장 문화의 유네스코 등재로 장뿐만 아니라 건강한 우리 음식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기회가 될 것 같아 매우 자랑스러웠어요.
-전상윤(경기도 낙생초 4) 학생기자

조현하 학생기자가 메주콩과 보리쌀을 치대 둥글게 만든 뒤 홈을 파고 씨된장과 씨간장을 더하고 있다.

조현하 학생기자가 메주콩과 보리쌀을 치대 둥글게 만든 뒤 홈을 파고 씨된장과 씨간장을 더하고 있다.

식품명인체험홍보관에서 정승환 명인님과 인터뷰하고 급장 만들기 체험을 했어요. 잘 만들어진 메주는 냄새가 안 나고 고소한 향만 난다고 하셔서 직접 맡아봤더니 강아지 꼬순내같이 정말 고소한 향만 나서 신기했어요.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데도 전통 제조 방식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하시고, 전통 장을 이용한 여러 소스를 개발하는 명인님의 모습을 보며 저도 앞으로 우리나라 장류 문화와 전통문화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현하(서울 성내초 5) 학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