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엄마·아빠 결혼식은 어땠나요?" 시대별 결혼 문화 들여다봤죠

독립된 남녀가 정식으로 부부 관계를 맺는 것을 결혼(結婚)이라 하죠. 소중 독자 여러분은 결혼이란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나요. 흔히 생각하는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갖춰 입은 신부와 신랑이 치르는 결혼식이나 신혼여행지로 사랑받는 해외 관광지 등이 결혼의 일부가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랍니다.  

소중 학생기자단이 예식장 신부 대기실처럼 꾸며진 곳에서 서울 시민의 결혼문화 변천사는 대한민국 역사의 굵직한 사건들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정리했다.

소중 학생기자단이 예식장 신부 대기실처럼 꾸며진 곳에서 서울 시민의 결혼문화 변천사는 대한민국 역사의 굵직한 사건들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정리했다.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있는 서울생활사박물관은 광복 이후부터 현재까지 서울 사람들의 일상 속 희로애락과 추억을 다루는 현대사박물관인데요. 이곳에서 지난 80여 년간 변해온 서울 시민의 결혼문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전시 '서울 가족 삼대의 결혼이야기'가 열리고 있어요. 2023년 서울생활사박물관이 광복 이후부터 현재까지 서울 사람들의 결혼문화를 조사·연구한 내용을 기초로 기획한 전시죠. 윤근혜 학생모델과 정하은 학생기자가 강성신 학예연구사와 함께 서울 시민들의 결혼문화를 시대별로 알아보기로 했어요. 전시실에는 결혼식 사진, 혼수품, 예복 등 시대별 서울 시민의 결혼문화를 보여주는 물품이 가득했죠.  

1부에서는 결혼 준비 과정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어요. 전통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결혼은 집안의 대사로 여겨져 부모님의 결정이 중요했어요. 하지만 일제의 항복으로 들어선 미군정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서구 문화가 유입됨에 따라 1980년대에는 자유연애와 연애결혼이 보편화됐죠. 결혼 날짜를 정하는 것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전통 혼례에서는 양쪽 집안이 혼인을 결정한 후 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신랑의 생년월일시를 쓴 사주단자를 보내, 사주에 따라 길일을 택했죠. 소중 학생기자단은 1964년 작성된 사주단자와 이를 담았던 사주단자함을 살펴봤어요. 1980년대 이후에는 사주에 따른 길일보다는 주말이나 공휴일을 결혼식 날짜로 정하는 게 보편화했지만, 여전히 양가의 부모가 만나는 상견례에서 사주단자를 주고받기도 합니다.  

강성신(맨 왼쪽) 학예연구사가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광복 이후 약 80여 년 간 서울 시민의 결혼문화가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설명했다.

강성신(맨 왼쪽) 학예연구사가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광복 이후 약 80여 년 간 서울 시민의 결혼문화가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설명했다.

가정을 꾸리는 데 필요한 살림 물품으로 장만하던 혼수품의 경우, 1970년대까지만 해도 신혼부부가 시댁에서 함께 사는 경우가 많아 침구류나 의류 및 소형 가전제품이 일반적이었어요. 하지만 1980년대 이후 독립된 신혼집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대형 가전제품과 가구 등이 필수가 됐죠. 전시실에는 시대별로 인기 있던 혼수품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하은 학생기자가 석유통의 주입구에 석유를 넣고 불을 붙여 음식을 조리하는 석유풍로를 살펴봤는데요. 석유풍로는 1970년대 인기 혼수품이었지만, 가스레인지·전기인덕션이 보편적인 요즘에는 보기 힘든 물품이죠.  

근혜 학생모델이 요강을 보고 "당시 필수 혼수품이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라며 고개를 갸우뚱했죠. "예전 집들은 화장실이 집 밖에 있는 경우가 많아서, 어두운 밤에 방 안에서 용변을 보려면 요강은 필수품이었어요. 게다가 1970년대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신혼부부는 시부모님 댁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첫날밤엔 문턱을 넘지 않는다’라는 속설도 있어서 갓 시집을 간 신부는 방 안에서 소변을 보아야 했기에 요강이 꼭 필요했죠."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1970년대 인기 신혼여행지였던 경주 관광기념 페넌트,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인기 혼수품이었던 요강.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1970년대 인기 신혼여행지였던 경주 관광기념 페넌트,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인기 혼수품이었던 요강.

 
2부에서는 시대별 서울 시민의 결혼식 변천사를 살펴볼 수 있었죠. 하은 학생기자가 "광복 이후부터 80여 년 간 서울 시민의 결혼 문화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친 분기점이나 사건은 무엇인가요"라고 질문했죠. 강 학예연구사는 "결혼 장소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은 한국전쟁이라 할 수 있어요. 전통적으로 결혼은 신부 집 앞마당에서 이루어졌지만, 전쟁으로 폐허가 되면서 사람들은 신부 집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결혼식을 올려야 했죠.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 때문에 1950년대부터 서울에 전문 예식장이 늘어나기 시작했어요"라고 설명했죠. 1960~70년대 서울 시내 예식장들은 웨딩드레스 대여, 사진 촬영, 신부 화장 등 결혼식과 관련된 모든 상품을 제공했어요. 자연스럽게 양복과 웨딩드레스를 입는 서구적 결혼식이 보편화했죠.

1980년대에는 광복 이후 서울의 경제·상업·문화 중심지였던 중구 명동에서 일하던 웨딩드레스 디자이너들이 마포구 아현동으로 진출하면서 '웨딩타운'이 조성돼 인근의 가구거리, 혼수 전문 백화점 '꽃가마'와 함께 서울 시민의 결혼 준비 중심지로 떠올랐어요. 소중 학생기자단은 1985년 한 신문에 게재된 국내 최초 혼수 전문 백화점 '꽃가마'의 광고를 볼 수 있었는데요. 한 곳에서 모든 신혼살림을 쇼핑할 수 있는 편리성으로 큰 인기를 얻었죠.  

1970년대 웨딩드레스를 살펴본 윤근혜 학생모델. 이 시기는 섬유 산업의 발달로 레이스 소재 웨딩드레스가 사랑받았다.

1970년대 웨딩드레스를 살펴본 윤근혜 학생모델. 이 시기는 섬유 산업의 발달로 레이스 소재 웨딩드레스가 사랑받았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대형 웨딩컨설팅 업체의 등장, 인터넷을 활용한 정보 탐색 발달, 소비 공간으로서의 강남 지역 성장 등으로 '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를 비롯한 결혼 관련 각종 업체가 청담동으로 몰려들면서 강남, 특히 청담동이 새로운 웨딩 산업의 중심지가 됐죠. 2021년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강남구의 예식장 수는 48개이며, 이는 서울 전체 예식장 수의 약 1/3에 해당합니다.  

최근 몇 년 간은 코로나19가 결혼에 끼친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죠. 2000년대 후반 등장한 주례 없는 결혼식은 코로나19로 도입된 '사회적 거리두기'가 결혼식에 영향을 미치면서 더욱 확대됐어요. 신부가 시부모와 시댁 식구들에게 인사를 올리면서 그 집안에 편입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의례인 폐백 또한 점차 사라지는 추세예요. "결혼식이 예식장에서 진행되면서 폐백 또한 예식장의 폐백실에서 했었는데요. 요즘 결혼식은 집안과 집안의 결합을 선포하는 자리가 아닌, 신랑과 신부가 주인공인 자리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고, 코로나19 당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되면서 폐백을 생략하는 추세예요."

강 학예연구사의 설명을 듣던 근혜 학생모델이 "납폐도 사라져가는 결혼의식 같아요"라고 했죠. 납폐는 신랑 측에서 준비한 혼서(婚書)와 예물을 함진아비가 신부 측에 가져가는 의식인데요.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신랑 친구가 함진아비를 맡아 아파트 앞에 함을 지고 와서 함값을 받겠다며 신부 측과 실랑이를 벌이는 일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었죠.  

결혼 예물로 받은 보석 세트를 보관하던 패물함. 결혼 예물은 1970~80년대 이후 패물·핸드백·화장품 등으로 다양해졌다.

결혼 예물로 받은 보석 세트를 보관하던 패물함. 결혼 예물은 1970~80년대 이후 패물·핸드백·화장품 등으로 다양해졌다.

 
그러나 공동주택인 아파트 주거 문화 확산으로 납폐 과정이 주변 주민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함을 지고 가서 함값을 받는 함팔이 문화는 대부분 사라졌어요. 오늘날에는 신랑이 여행용 캐리어에 나무 기러기, 혼서, 청홍 종이, 실타래를 들고 신부 집에 혼자 가기도 하는데, 이는 납폐가 형식적으로나마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죠. 실제 함 들이기 영상을 관람한 소중 학생기자단은 말린 오징어 가면을 얼굴에 쓴 함진아비와 신랑 친구들이 신부 집 앞에서 함값을 내놓으라고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을 보며 신기해했죠. "요즘 친구들에게는 함 들이기라는 용어 자체가 생소할 텐데요. 그래서 영상을 통해 꼭 소개하고 싶었어요."

혼수품의 변천사를 살펴본 정하은 학생기자. 쌀을 넣어두는 통, 구식 텔레비전 등 요즘은 보기 힘든 물건들이 많다.

혼수품의 변천사를 살펴본 정하은 학생기자. 쌀을 넣어두는 통, 구식 텔레비전 등 요즘은 보기 힘든 물건들이 많다.

 
마지막 3부에서는 서울 시민의 시대별 신혼여행지 변화를 살펴볼 수 있었어요. 최근에는 예식과 피로연을 끝낸 신혼부부가 해외로 신혼여행을 가기 위해 공항으로 향하는 모습이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1950~60년대만 해도 신혼여행은 경제적 여유를 가진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호사였죠. 경제발전으로 생활 수준이 올라간 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제주도·설악산과 같은 유명 관광지로 신혼여행을 떠났어요. 해외여행의 전면적 자유화가 이뤄진 1989년부터는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해외로 신혼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전시실에서는 1970년대 신혼여행을 기념하기 위해 신혼부부가 구매했던 경주 관광기념 페넌트(삼각기)가 있었는데요. 해외 유명 관광지에서 선물을 사 오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요즘과는 다른 시대상이 담겨있었죠.  

이렇게 결혼 준비과정부터 예식과 신혼여행까지 서울 시민의 결혼 문화 변천사를 살펴봤는데요. 한국전쟁부터 1970년대 경제 성장,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2020년대 팬데믹까지. 대한민국 역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결혼 문화에도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었죠. "이번 전시가 어린이·청소년 여러분의 부모님과 조부모님이 어떻게 만나서 연애했고, 어떤 결혼식을 통해 가정을 꾸리셨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해요. 이를 통해 여러분이 부모님은 물론 조부모님과도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주제를 제공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윤근혜(왼쪽) 학생모델과 정하은 학생기자가 '서울 가족 삼대의 결혼이야기' 전시를 통해 서울 시민의 결혼문화 변천사를 살폈다.

윤근혜(왼쪽) 학생모델과 정하은 학생기자가 '서울 가족 삼대의 결혼이야기' 전시를 통해 서울 시민의 결혼문화 변천사를 살폈다.

 
동행취재=윤근혜(서울 이문초 4) 학생모델·정하은(서울 당현초 6) 학생기자 

서울 가족 삼대의 결혼이야기
위치: 서울생활사박물관 기획전시실(서울 노원구 동일로174길 27)
전시기간: 2025년 3월 30일(일)까지  
관람시간: 화~일, 오전 9시~오후 6시(오후 5시 30분 입장 마감)
휴관: 공휴일을 제외한 매주 월요일, 1월 1일
입장료: 무료  
문의:  02-3399-2900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결혼은 초등학생인 저에게는 아직 먼 이야기라 사실 큰 관심이 없었는데, 전시 '서울 가족 삼대의 결혼이야기'를 통해 광복 이후부터 현대까지 서울 시민의 사례를 중심으로 결혼문화에 대해 배울 수 있어서 재미있었어요. 또 전시 외에도 '신혼여행은 해외 vs 국내 vs 안 간다', '신혼집은 구입 vs 전세 vs 월세' 등 결혼과 관련한 각종 밸런스 게임도 있어 미래에 성인이 된 기분으로 질문에 답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정말 재밌어서 서울생활사박물관을 한 번 더 가볼 예정이에요.

윤근혜(서울 이문초 4) 학생모델

이번 취재에서는 매번 서울 시민의 삶을 주제로 다양한 테마의 전시를 한다는 서울생활사박물관에 다녀왔습니다. 서울생활사박물관 전시들의 가장 큰 장점은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다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서울 가족 삼대의 결혼이야기' 전시에는 제게 신기했던 부분이 많았어요. 과거에 혼수품으로 인기 있었던 쌀통이나 구식 텔레비전 등은 실물로는 처음 보는 것이라 놀라웠죠. 또한 그곳에 있던 다양한 영상들을 통해 당시 결혼식 때의 분위기를 한층 더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었어요. 게다가 결혼식장을 재현한 포토존이나 신혼집 꾸미기나 신혼여행지 투표 같은 다양한 활동과 게임도 있어서 지루하지 않았어요.  

정하은(서울 당현초 6) 학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