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왼쪽)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사진 각 사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의 분수령이 될 다음 달 23일 임시주주총회를 앞두고 양측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MBK파트너스·영풍의 지분율이 앞서는 가운데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판을 뒤집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MBK의 인수합병(M&A) 시도가 ‘외국인 투자’에 해당할 수 있다며 공세를 펴고 있다. 고려아연은 국가핵심기술과 국가첨단전략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외국인이 지배하는 회사가 인수하려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고려아연 측은 김병주 MBK 회장이 외국인이고, 그가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투자심의위원회에서 유일하게 거부권(비토권)을 가졌다는 점에서 MBK를 외국인 투자자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고려아연 측은 이번 고려아연 인수 주체인 MBK의 6호 바이아웃펀드 출자 구성이 국내 20%, 해외 80%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려아연이 외국인 투자를 이유로 법원에 “MBK 측의 주총 의결권 행사를 막아달라”는 가처분을 신청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이 지난 10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고려아연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가치 회복 방안‘을 주제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스1
MBK 측은 억지 주장이라고 반박한다. 고려아연에 투자하는 주체인 ‘MBK 파트너스 유한책임회사’는 국내 법인이며, 고려아연에 대한 투자 및 주요 결정은 김광일 부회장이 주도한다는 설명이다. 최종 투자 여부를 결정하는 투자심의위원회는 김병주 회장을 포함해 11명(내국인 7명·외국인 4명)으로 구성되고, 김 회장이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고려아연은 외국인 투자 의혹과 더불어 MBK 측이 제련업 이해도가 떨어지고 장기 비전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 MBK·영풍의 고려아연 지분율은 40.97%로, 자사주를 제외한 의결권 기준으로 46.7%까지 확보했다. 나머지 모든 주주가 최 회장 측 손을 들어주면 MBK 측이 패하게 된다. 결국 양측 모두 의결권 위임장 확보 경쟁에 나서 임시주총 출석률은 100%에 육박할 전망이다.
관건은 현대차·국민연금 등 주요 주주들의 표심이다. 고려아연 우호지분으로 분류되던 현대차는 5%의 지분을 갖고 있지만 아직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중립 또는 기권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난 9월말 기준 7%대 지분을 가진 국민연금이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도 변수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지난달 13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입장을 밝힌 뒤 생각에 잠겨 있다. 뉴스1
집중투표제 공방도 이어지고 있다. 고려아연은 주총 안건으로 집중투표제 도입과 이사회 정원을 19명으로 제한하는 정관변경을 올렸다. 집중투표제는 이사 선임 때 1주당 선임하는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주주에게 부여하는 제도다. 원하는 후보에게 표를 몰아줄 수 있어 최 회장 측 지분의 의결권을 고려아연 추천 이사들에게 집중해 행사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고려아연이 MBK 측 이사 14명의 이사회 진입을 전부 막을 수 없으니, 몇 명이라도 막자는 의도인 것으로 풀이한다.
MBK 측은 집중투표제 방식으로 이사를 선임하는 의안의 상정을 금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고 이날 밝혔다. 집중투표 청구가 상법상 적법한 요건을 갖추지 못했고, 마감일에 임박해 청구함으로써 다른 주주들은 이사 후보 추천권을 행사할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이유다.
만약 집중투표제 도입으로 MBK 측이 이사회 과반 장악에 실패하면 분쟁은 다시 장기화한다. 내년 3월 정기주총에서 같은 싸움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어느 한쪽도 지분 과반을 확보하지 못해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고, 소모적인 분쟁이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라며 “이럴 경우 기업 경영에 상당히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양측이 협상 등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