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원인과 이후 상황에 대한 정확한 분석 및 판단을 위해선 두 장치의 기록을 일일이 대조하고 따져봐야 하므로 최종 결론과 조사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2~3년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2일 국토교통부와 국토부 산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이하 사조위)에 따르면 조종실음성기록장치(CVR,Cockpit Voice Recorder)에서 추출한 자료를 음성파일 형태로 전환하는 작업이 이날 오전 완료됐다.
CVR에는 기장과 부기장 등 조종실 승무원 간의 대화는 물론 관제사와 승무원 사이 교신내용, 항공기 작동 상태의 소리 및 경고음 등이 모두 녹음돼 있다. 사고 발생 당시와 이후 조치 과정에서 조종실 안팎에서 오간 긴박한 대화가 모두 담겨 있는 셈이다.
반면 비행기록장치인 FDR은 손상이 심해 미국 교통안전위원회(NTSB)에 보내서 분석을 의뢰하기로 했다. FDR은 항공기의 3차원적인 비행경로와 각 장치의 단위별 작동상태를 디지털, 자기 또는 수치 신호로 기록해두는 장치다.
문제는 소요 시간이다. 국토부는 미국 측 협의와 이송 등을 거쳐 실제 분석결과가 나오기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현지 사정을 파악해봐야 알 수 있다는 입장이다. NTSB에는 미국 내 사고는 물론 해외 사고에 대한 다양하고 많은 분석 요청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지난 2002년 4월 김해공항 인근 돗대산에 추락해 129명이 사망한 중국국제항공 사고 때도 FDR의 손상이 심해 미국에서 분석했고, 사조위의 최종보고서가 나오기까지 3년이 걸렸다.
이런 상황에서 먼저 나올 녹음기록만 따져봐도 사고 원인과 기체 상황 등을 대부분 파악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사고 조사 관계자들 얘기는 전혀 다르다.
익명을 요구한 사조위 관계자는 “CVR와 FDR 기록을 면밀히 대조하지 않은 채 한가지 자료에만 의존해서 섣불리 판단했다가는 최종 결론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 될 수도 있다”며 “국내에서도 사고 초기에 알려진 것과 달리 조사결과가 반대로 나온 사례가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006년 6월 승객 200여명을 태우고 경기도 상공을 지나던 아시아나항공 여객기가 대형 우박에 맞아 조종석 유리창에 금이 가고, 기체 앞부분에 장착된 레이더 장치가 통째로 떨어져 나가는 위기 속에서도 무사히 착륙한 경우가 있었다.
당시 위기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비상착륙에 성공한 조종사에 대한 찬사가 쏟아졌고, 아시아나항공은 물론 정부도 포상 계획까지 발표했다. 그러나 사고 조사가 진행되면서 상황이 뒤바뀌었다.
사조위의 조사결과, 조종사가 큰 비구름을 완전히 돌아가지 않은 데다 기상레이더 각도도 제대로 조절하지 않았으며, 비구름 속에서 적정 속도보다 빨리 비행한 과실도 확인됐다. 애초 비구름을 제대로 회피했으면 비상상황이 없었을 거란 의미다.
결국 건설교통부(현 국토부)는 이듬해 1월 아시아나항공에 과징금 1억원을 부과하고, 기장과 부기장은 각각 3개월·1개월 15일의 자격정지 처분을 내렸다.
당초 기장은 면허취소 방침이었으나 비상대응을 잘한 점을 고려해 징계를 낮췄다고 한다. 섣부른 초기 판단과 평가가 조사결과로 인해 완전히 뒤집어진 대표적 사례다.
유경수 국토부 항공안전정책관도 “음성기록은 조종사가 기체 상태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데, 실제 비행기록은 다르게 나올 수도 있다”며 “반드시 음성기록과 비행기록 모두를 비교 분석해야만 결론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블랙박스 자료 분석과 검증 과정 등을 차분히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조위 관계자는
“지금은 팩트확인이 가장 중요한 시점인 만큼 섣부른 원인 추정과 주장 등은 자제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