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안 돼, 하지마'라는 소리를 안 했어요”
에드워드 리의 모친이 스타 셰프의 탄생 배경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한국계 미국인 셰프 에드워드 리(53)는 지난해 ‘흑백요리사’ 준우승 이후 각종 방송, 광고 등 영역에서 활동 중이다.

에드워드 리의 모친 이순자 여사가 지난 16일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에서 열린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CICI) 주최 언론간담회에서 말하고 있다. 사진 CICI
약 10년 만에 아들과 함께 방한한 모친 이순자 여사는 지난 16일 언론간담회에서 아들의 인기에 “하늘에 떠 있는 기분”이라며 “길 가다가 같이 사진을 찍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놀랐다”고 운을 뗐다. 아들의 ‘흑백요리사’ 준우승 소식을 들었을 때 믿기지 않아 “(프로그램에) 지원해서 간 거냐, 초대받아서 간 거냐”고 물어봤을 정도였다고.
스타 셰프의 탄생 배경을 두고 어머니에 대한 호기심도 컸다. 셰프가 되겠다는 아들의 말에도 “(공부를 계속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내심 반기지는 않았지만, 다른 부모들처럼 내쫓거나 욕하면서 반대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에서 열린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CICI) 주최 언론간담회에 참석한 (오른쪽부터) 셰프 에드워드 리와 그의 모친 이순자 여사, 최정화 CICI 이사장. 사진 CICI
이 여사는 또 “에디(에드워드 리의 애칭)는 모든 걸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한다”며 “내 능력을 이어받은 것 같다”고 유쾌히 말했다. 그는 “지금 내 나이 85세지만, 아직 할 게 많다”며 “내년에 한국이미지상 받으러 올 거라고 (아들에게) 말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심심한 게 싫다”며 눈을 반짝인 아들과 무척 닮았다.
모친의 역할 덕분이었을까. 에드워드 리는 “셰프가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꿋꿋이 외길을 걸어왔다. 그는 “유명한 요리 학교를 나오거나 유명한 셰프 밑에서 일해본 적은 없다”며 “제 갈 길, 제 방식을 좀 쫓았던 것 같다”고 했다. 통상 요리학교를 졸업한 뒤 식당에서 일을 배우고, 투자 유치를 받아 자신의 식당에서 총괄셰프가 되는 게 일반적이라는 업계의 설명이다. 반면 브롱스 과학고와 뉴욕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에드워드 리는 출판사에 취직해 잠시 일하다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둔 뒤 22세부터 전문적으로 요식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물론 (제) 길이 더욱 험난하고 어렵고 성공까지 오래 걸리긴 했지만, 제 방식대로 저만의 길을 걸어왔다는 것이 좋다”며 “아마 고집이 센 것도 어머니를 닮아서 그런 거 같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셰프 에드워드 리가 지난 16일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에서 열린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CICI) 주최 언론간담회에서 웃음을 보였다. 사진 CICI
스타 셰프의 길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건 아니다. 그는 “어렸을 때 (집안이) 돈이 많지 않아서 힘들었다”며 “항상 어머니께서 아침에 일하러 나가고, 저녁 늦게 오셨다”고 털어놨다. 서울 출생으로 1세 때 부모를 따라 미국에 이민 간 그는 뉴욕 브루클린에서 자랐다. 10대에 식당에서 주방 일을 하며 돈을 벌었다.
그는 “어렸을 때 어머니와 아주 친하진 않았다”면서도 “요리사가 된 이후 대화를 더 나누고 친해진 것 같아 좋다. 어머니를 참 존경한다”고 말했다.
에드워드 리와 이 여사는 전날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CICI) 개최 한국이미지상 2025년 시상식도 참석했다. 모자가 함께 모습을 드러낸 첫 공식 석상이었다. 당시 한국을 세계에 알린 공로로 징검다리상을 수상한 에드워드 리는 모친을 향해 “특별히 감사하다”며 수상의 영광을 돌렸다. 이 여사는 “진짜 행복하다”고 감격하면서 아들의 손을 꼭 잡았다. 그는 CICI 최정화 이사장에게 "어머니와 함께 한국에 올 수 있었다는 점이 저에게는 얼마나 큰 의미인지 모른다"라고 귀띔했다고 한다.

셰프 에드워드 리. 사진 CIC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