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의 자극적이고 나르시시스트적인 수사에 함몰되기보다 냉정하게 향후 미국의 외교·국방 정책을 전망해 볼 시기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주 마이크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후보자(대통령 취임 즉시 직위 수행)의 미 평화연구소(USIP) 초청 공개행사, 그리고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후보자와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후보자(1월 21일 취임)의 의회 청문회는 우리의 관심을 끈다. 이들은 선거 기간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다른 뉘앙스로 동맹을 중시하고 기존의 전통적인 미국의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방향성도 보여 주었다. 물론, 대중 강경론자인 후보자 3명 모두 중국에 대해 단호한 견해를 보였다.
미국은 현재 전 세계 GDP의 4분의1을 넘어설 만큼 최고의 경제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1990년대 초반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에서 구가했던 시기와 같은 규모의 경제력이고, 유로를 공용통화로 사용하는 유로존 경제 규모의 2배에 이른다. 그러나 현재 미국은 스스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심각하고 도전적인 위기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평가는 왈츠 보좌관의 공개행사는 물론이고 국무·국방 장관 청문회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연대를 강화한 중·러는 미국의 영향력을 감소시키고 있다. 특히 중국은 미국의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과거 냉전 시 미국이 경험했던 소련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국력의 여러 요소에서 많은 잠재력과 실질적인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수십 년간의 군사력에 대한 투자로 서태평양지역에서 미국의 군사력을 거부하고 있으며 주변 국가들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왈츠 보좌관은 중국의 침략을 억제하고 광물·첨단 기술 공급망 문제 등 경쟁을 위해 AUKUS, QUAD, 한·미·일, 미·일·필리핀 등과의 협력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특히 역사적 인식의 차이를 극복하고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이라는 공동의 가치를 위해 많은 성과를 낸 한·미·일 협력은 전임 바이든 정부에서 잘한 일이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미·일 안보협력 관련 트럼프 정부의 방향성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루비오 국무장관은 중국공산당이 이끄는 중국은 우리 미국이 상대해본 가장 능력 있고 위협적이며 미국과 거의 대등한 능력을 지닌 적(Peer Adversary)이라고 평가했다. 중국은 미국에 기술·산업·경제·지정학·과학적 경쟁자임을 분명히 했다. 중국은 자유주의 제도와 질서를 통해 누릴 수 있는 이익을 다 누렸으나, 해킹·지식재산권 약탈·남중국해 섬의 군사기지화·국내 인권 탄압·노동력 착취·불공정 무역 거래 등으로 자유주의의 의무와 책임은 모두 회피했다고 강한 어조로 비난했다.
루비오 장관은 시진핑의 발언을 보았을 때 대만 침공은 근본적이고 확정적이라고 했다. 이어서 중국의 대만 침공은, 미국이 원하지 않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군사적 대 혼란을 의미하기 때문에 중국에 대만 침공의 대가가 크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식시켜 대만을 넘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10년 내 극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1979년 미국이 제정한, 대만의 자위권을 위해 미국이 필요한 지원을 한다는 대만관계법과 1982년 미국에서 대만에 약속한 6가지 보장책(미국의 대만 무기 수출 기한 제약이 없다는 것 등을 포함)을 지지한다고 언급했다. 미국이 지금까지 대만과 전통적으로 유지해 온 정책을 트럼프 정부에서도 변함없이 추진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트럼프 정부가 대만 지원을 대폭 축소하거나 소극적일 것이라는 우려와 다른 맥락이다.
루비오 장관의 나토에 대한 평가 역시 주목해야 한다. 그는 나토가 미국에 매우 중요한 동맹으로, 나토가 없었다면 냉전 종식도 없었고, 현재의 유럽은 침략의 희생물이 됐을 수도 있었다고 했다. 다만, 미국은 능력 있고 자신을 방위 할 수 있는 동맹을 원한다. 21세기 미국의 나토에 대한 역할은 미국이 나토 방위의 주체가 되는 것보다 적의 침략을 저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했다.
동맹의 합의나 조약이 동맹국의 비용을 적게 부담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하며, 나토 회원국들이 책임을 확대하고, 국방예산도 더 늘려야 한다고 했다. 이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의 나토 회원국 국방예산 증액을 지지하고 추진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미국의 대북 정책은 실패했고, 비핵화는 환상이다. 북한은 2024년에만 40여 회의 미사일 시험발사를 했고, 지속해서 핵·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하고 있다. 대북 정책을 재검토할 의향이 있느냐?”고 브라이언 샤츠 민주당 상원의원(하와이)이 질의했다. 이에 루비오 장관은 “이 자리에서 미국의 공식 입장을 말하기는 어렵지만, 나는 대북 정책을 더 광범위하게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본인이 청문회장에 오면서 북한 관련 파일을 미처 가져오지 못했다고도 했다.
이러한 루비오 장관의 지극히 원론적인 발언은 대선 기간 공화·민주 양당의 정강정책에 북한 비핵화 문제 관련 거론 자체가 없었다는 면을 고려한다면 일견 예상한 일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김정은에 관한 관심을 제외하고 북한 핵 문제에 대한 미 국무부 차원의 관심은 그리 크지 않으며, 향후 대북 정책의 기본 방향부터 검토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위기 안정화 관련, 루비오 장관은 “한반도에서 우발적인 전쟁의 위험을 낮추고 상황을 안정화하기 위해서는 다른 국가가 핵무기를 추구하지 않도록 하고 위기를 예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본다고 했다. 이 문장에서 다른 국가에 한국이 포함될 것이고, 그렇다면 향후 트럼프 정부에서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한국의 자체 핵무장론에 대해서는 루비오 장관이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헤그세스 국방장관 후보자의 청문회는 후보자 개인의 성폭행 혐의, 과음 전력, 불륜의 혹 등에 대한 논쟁으로 많은 시간이 소모됐다. 이에 따라 아직 미 상원의 인준을 받지 못해 장관 취임이 지연되고 있으나, 트럼프 대통령의 후보자에 대한 지지는 여전하다.
그는 청문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본인을 장관으로 펜타곤에 보낸 가장 핵심적인 이유로 Warrior Culture(용사문화)를 거론했다. 후보자는 트럼프 대통령은 국방부에서 집중해서 추구해야 할 5대 핵심 과업으로 치명성(Lethality), 능력주의(Meritocracy), 전쟁수행(Warfighting), 책임(Accountability), 그리고 준비태세(Readiness)를 제시했다.
미군이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재건하려면 획득 제도 개선을 통해 방산업체에 활력을 부여하고, 핵무기 3축 체계(대륙간탄도미사일·전략폭격기·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를 정해진 계획에 따라 현대화하겠다고 했다. 전술핵 관련, 중국과 러시아에 대비해 열세인 상황의 개선을 위해 핵 무장된 잠수함발사크루즈미사일(SLCM)의 생산도 추진하고, 2018 핵태세보고서에 언급된 ‘적의 핵 공격을 억제하는 것이 미국의 최 우선순’에 동의한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했다는 치명성·전쟁수행 능력·준비태세 등과 연관된 분야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반도에 전술핵 배치를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
헤그세스 후보자는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동맹 체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공산국가 중국의 공격을 억제하려고 동맹국과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서 “건강한 동맹과 파트너 관계를 재평가하도록 지시할 것”이라며 “동맹과 파트너의 국방비 지출 증액과 부담 분담은 우리의 관계가 일방적이지 않도록 보장하는 데 중요하다”고 밝혔다. 기존의 동맹관계를 유지해 전략적 우위를 달성하되 비용 문제에서는 상호주의적 관점에서 대처하겠다는 의미다.
우리 안보의 가장 큰 위협은 북한의 핵 문제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돌발적으로 몇 차례 언급한 김정은과의 관계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 차원의 대북정책은 이제 검토를 시작하는 단계로 보인다. 아니 어쩌면 다른 긴급한 글로벌 현안에 밀려 검토의 시작이 늦어질 수도 있다.
루비오 장관이 이 문제를 폭넓게 검토한다고 하였으니 검토 단계부터 미국과 긴밀한 공조를 통해 우리의 정책과 의지를 반영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의 강 대 강 대치 역시 예상되는 상황으로 예의 주시해야 한다. 한·미 동맹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물론이고, 중국을 억제하는 데 매우 긴요하다.
미국이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에 대한 전략적 우위를 유지하려고 한미동맹 관계를 더 강화할 수는 있으나, 주한미군 철수 등 동맹이 약화하는 방향으로 급격한 변화는 없을 것이다. 한반도 방위의 주인 의식을 가지고 비용 부담 관련 미국의 요구에는 원칙을 유지하는 가운데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 한반도에 전술핵 배치 검토 가능성에 대비한 우리의 생각도 정리해야 한다.
불확실한 국내외 정세 속에 막 출범한 트럼프 정부의 실행 가능한 정책을 계속 예측해 보면서 우리도 국익을 우선해 미국에 대응해야 한다.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트럼프 정부의 국방력 강화, 나토의 방위비 증가는 우리에게 방산 수출을 늘릴 기회다. 한반도 문제를 넘어 동북아 지역에 대한 미국과의 협력은 동맹의 수준을 격상할 수 있다. 우리가 비용 부담을 늘리는 만큼 우리의 생각과 의지가 미국의 정책에 반영된다면 헤그세스 후보자도 언급했던 것처럼 더 건강한 동맹관계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