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것도 아니고, 아주 작은 한 마디, 지친 나를 안아주면서~ 사랑한다♬” (노사연 「바램」)
“너의 침묵에 메마른 나의 입술, 차가운 네 눈길에 얼어붙은 내 발자욱~♪” (양희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설 연휴를 일주일 정도 앞둔 지난 20일 경남 창원한마음병원 인터벤션(영상중재시술)센터 시술실에서 울려 퍼진 노랫말이다. 라디오에서 나온 소리가 아니었다. 조준희(58) 영상의학과 교수와 서윤혜(28) 간호사가 병상에 누운 김모(50)씨를 위해 불렀다. 김씨는 최근 직장암 판정을 받았다.
병상서 떨던 암 환자…의료진 “노래 불러드릴게요”
지난 20일 경남 창원한마음병원에서 암 환자가 병상에 누워 '케모포트' 시술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 창원한마음병원
이날 김씨는 본격적인 항암치료에 앞서 ‘케모포트’ 시술을 받았다. 목 경정맥에서 심장까지 이어지는 혈관에 길이 20㎝, 굵기 2.4㎜의 관을 삽입하는 시술이었다. 시술 시간은 10~15분으로 오래 걸리지 않지만, 시술 중 통증이 상당하다고 한다. 그렇지만 주기적으로 항암제를 맞아야 하는 암 환자에겐, 매번 주사로 팔의 혈관을 찌르는 불편을 덜어주는 유용한 조치다.
시술 전 김씨는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침을 꿀꺽 삼키며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이때 시술을 맡은 조 교수가 김씨에게 말했다. “간호사 선생님이 노래 한 곡 불러드릴게요. 노래 들으시면서 편안하게 계세요.”
지난 20일 경남 창원한마음병원에서 영상의학과 조준희(사진 왼쪽) 교수와 서윤혜 간호사가 암 환자에게 '케모포트' 시술을 진행하며 노래를 불러주고 있다. 서 간호사가 왼손으로 환자를 토닥이며 긴장을 풀어주고 있다. 사진 창원한마음병원
곧이어 서 간호사는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에 맞춰 노사연의 ‘바램’을 불렀다. 그러면서 한 손으로는 환자를 토닥였다. 그 사이 조 교수는 수천번 반복해온 이 시술을 물 흐르듯 진행했다. 조 교수도 서 간호사 바통을 이어받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완창했다.
두 곡이 끝나자, 시술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조 교수는 “많이 아픈 부분은 끝났다. 고생하셨다”고 말했다. ‘언제 떨었냐’는 듯, 김씨는 작은 목소리로 “앵콜(앙코르)”을 청했다. 서 간호사는 이선희의 ‘나 항상 그대를’이란 곡으로 화답했다. 김씨는 “너무 편안했다”며 의료진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죽는 날까지 못 잊어…용기와 감동 줘 고마워”
지난 15일 경남 창원한마음병원에서 서윤혜 간호사가 '케모포트' 시술 중인 한 암 환자를 손으로 토닥이며 노래를 불러주고 있다. 사진 창원한마음병원
창원한마음병원의 ‘시술실 라이브(Live)’가 화제다. 병원 홈페이지에는 조 교수와 서 간호사의 감성적인 의료서비스에 감동했다는 환자 글이 이어지고 있다. “노래를 불러 긴장을 풀어주고 행복하게 해줘 오늘 이 순간을 잊을 수 없이 행복하다” “삭막한 병원이 아닌, 환우들에게 용기와 감동을 선사해줘서 너무나 고맙습니다” “제가 죽는 날까지 (잊지 못할 것 같다) 너무 행복해서 두 분께 감사의 글을 전한다” 등이다.
조 교수는 “살면서 처음 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시작하는 단계다. 엄청 두려우실 것”이라며 “심적 안정과 위로를 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서 간호사도 “울컥해서 우시는 분들도 있다”며 “환자 분 손 위에 제 손을 얹고, 노래에 맞춰 토닥이다 보면 안정을 되찾으시는 것 같았다”고 했다.
지난 15일 경남 창원한마음병원에서 조준희 영상의학과 교수가 '케모포트' 시술을 마친 환자에게 '고생하셨다'고 말하고 있다. 사진 창원한마음병원
조 교수는 이런 라이브 서비스를 “정말 우연히 시작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28일 시술실 스피커에서 나온 가요를 자기도 모르게 흥얼거렸는데, 환자 반응이 좋았다고 했다. 그는 “환자분이 ‘교수님 노래 소리에 굉장히 편안해졌다’고 했다”며 “평소 환자분이 얼마나 힘드신지 아니까 ‘이거다’ 싶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조 교수는 반년 넘게 이 서비스를 하고 있다. 하루 한 번 이상, 매달 서른 번 넘게 환자를 위한 노래를 부르고 있다. 다만, 모든 시술 중엔 어렵고 케모포트 시술 때만 가능하다고 했다. 33년 의사 경력의 조 교수는 “저에게 케모포트는 너무 쉽고 간단한 시술이다. 마치 ‘젓가락으로 밥 먹는 일’처럼 여유가 있기에 노래도 할 수 있다”며 “보다 신경 쓸 게 많은 다른 시술 중에는 어렵다”고 했다.
조 교수는 “부담스러울 수 있는데, 선뜻 나서준 동료 덕분에 시작할 수 있었다”고 했다. 앞서, 평소 회식 자리에서 노래 잘하기로 정평이 난 서 간호사에게 ‘한 번 해볼래?’라며 조심스레 물었는데, 서 간호사가 흔쾌히 ‘하겠다’고 답한 것이다. 조 교수는 “서 간호사가 너무 고마웠다”고 말했다.
지난 20일 경남 창원한마음병원에서 영상의학과 조준희(사진 왼쪽) 교수와 서윤혜 간호사가 암 환자에게 '케모포트' 시술을 진행하며 노래를 불러주고 있다. 사진 창원한마음병원
서 간호사는 “좋아하는 가수(오왠) 콘서트 때 현장 지명으로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고등학교 축제 때도 나선 적 있다 보니,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게 별로 부담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노사연 ‘바램’과 이선희 ‘나 항상 그대를’ 곡도, 시술받는 환자분과 연배가 비슷한 저의 부모님이 좋아하셔서 자주 불러드렸던 노래라 편했다”며 “평소 교수님이 시술 대기실에도 스피커를 설치해 음악·라디오를 트는 등 환자 분이 편안할 수 있게 노력하시던 것을 알기에 동참하게 됐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다른 동료 직원들 모두 동참하고 싶은데, 실제 환자분들 앞에서 서면 너무 떨려서 못 부르시더라”며 “앞으로 기량이 갖춰지면, 한 시술 방에 저 포함 5명이 들어가니 환자분들께 ‘중창’ 정도 해드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창원=안대훈 기자 an.daeh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