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알만한 기업 쓰러진다" 올해 이런 경고등 켜졌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에 참석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에 참석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2025년은 살아남아야 하는 해입니다.”
 
29일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이같이 올해 한국 경제를 전망했다. 경제의 두 축인 내수와 수출 경기가 동반으로 침체할 전망이라면서다. 지난해엔 고금리·고물가에 따라 내수가 부진한 가운데 수출은 호조를 보였지만, 올해는 수출마저 꺾여 생존을 걱정해야 할 만큼 힘들 거라는 이야기다.

이미 징후가 포착되고 있다. 전년동월 대비 월간 수출액은 지난해 12월까지 15개월 연속 증가세를 나타낸 끝에 올해 1월 ‘마이너스’로 전환할 가능성이 커졌다. 1월1~20일 수출액이 316억 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5.1% 감소했기 때문이다. 주 실장은 “올해 충격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건설·부동산 등의 취약 분야에서 누구나 알 만한 기업이 쓰러지는 걸 볼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수출까지 먹구름이 드리운 건, 한국의 1·2위 수출 시장인 중국과 미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전년보다 둔화할 것으로 예측돼서다. 세계은행(WB)이 지난 16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 성장률은 지난해 2.8%에서 올해 2.3%로, 중국은 4.9%→4.5%로 낮아질 전망이다.

이에 더해 전례 없는 내우외환(內憂外患)까지 겹치면서 수출·내수를 전부 끌어내리고 있다. 내부 근심은 지난해 12월부터 이어지는 정국 불안이고, 외부 위험 요인은 미국에서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는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가 이달 출범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1일(현지시각) 미 워싱턴의 백악관 루즈벨트 룸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1일(현지시각) 미 워싱턴의 백악관 루즈벨트 룸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둘 중 더 위험한 건 정국 불안이다. 정국 불안은 국내 소비 심리를 떨어뜨려 내수 경기를 침체하게 한다. 한국은행이 집계하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해제 사태가 벌어진 지난해 12월 전달보다 12.3포인트 떨어진 88.4를 나타냈다. 이달 91.2로 소폭 올랐으나, 여전히 계엄 사태 이전 수준을 크게 밑돌았다. 이 지수가 100보다 작을 경우 과거 평균적인 경기보다 좋지 않음을 뜻한다.


정국 불안은 수출에도 차질을 준다. 사디르 자파로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이 한국산 헬기 ‘수리온’을 도입할지 판단하기 위해 지난달 2일 한국을 찾았다가 계엄 사태가 터지자 일정을 취소하고 돌아간 게 대표적 사례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는 “신규로 수출계약을 협상하는 기업은 불리한 조건을 감수하거나 추가적인 보증을 제공해야 할 것”이라며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일수록 어려움이 더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국 불안이 국가신용등급을 뒤흔들어 수출과 내수에 악영향을 주는 경로도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에 의해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자본이 유출되고 주가와 채권 가격을 떨어뜨린다(금리는 상승). 이는 정부와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을 높이고 각 주체의 경제 활동을 위축시킨다. 또한 원화 가치가 하락해 수입 물가와 소비자 물가를 밀어올린다.

정국 불안은 외부의 ‘트럼프 리스크’에 대응하는 걸 방해한다는 점에서도 악성이다. 영국의 경제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즈는 지난 20일 “트럼프 미국 행정부에 대한 한국정책 결정자들의 로비 시도가 국내 정치 위기로 마비됐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미국 정부는 대규모 무역적자를 완화하기 위해 한국을 포함한 주요 교역국을 대상으로 고율의 관세를 부과할 예정이다. 그럼 미국으로 수출에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한 여한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위원은 “미국이 중국에 특별히 가장 높은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큰데, 중국이 미국으로 수출했던 물량을 저가로 한국 등에 밀어낼 수 있다”며 “한국의 산업에 충격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일련의 부정적 전망 때문에 기획재정부는 지난 2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로 잠재성장률(2.0% 수준)을 밑도는 1.8%를 제시했다.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53년 이후 성장률이 2% 아래로 내려갔던 건 6차례뿐이다. 더 심각한 건 실제 성장률이 정부 전망치보다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경제 심리를 부양하려는 의지를 반영해 희망적으로 수치를 제시하는 경향이 있어서다. 영국 리서치 기관 캐피털이코노믹스(CE)는 기재부보다 0.7%포인트 낮은 1.1%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송인호 KDI 경제정보센터 소장은 “올해 한국 경제는 일본식 장기 불황에 빠질지 기로에 섰다”고 경고했다.

이를 막기 위한 ‘골든타임’(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제한된 시간)은 올해 상반기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한 기재부 간부는 “정국 불안을 올 상반기 안에 해소하지 않으면 국가신용등급이 떨어질 위험이 있다”며 “등급이 한번 떨어지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낙인효과에 따라 다시 등급이 떨어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늦어도 올 상반기까지 정국 불안을 해소해 트럼프와 관세 협상 등을 할 구심점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은행은 지난 20일 올 상반기까지 정국 불안이 해소되지 않을 경우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1.6~1.7%)를 하향 조정할 수 있다는 여지를 열어두기도 했다.

기재부는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올해 예산을 상반기에 조기 집행 중이다. 올해 지출 한도를 늘릴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추경은 불가피해 보이지만, 자영업자 같은 취약 계층에 집중적으로 예산이 쓰일 수 있도록 신경 써야 한다”고 주문했다. 재원이 한정된 가운데 대규모 나랏돈을 비효율적으로 썼다가 특별한 경기 부양 효과를 거두지 못 하고 재정건전성 악화→국가신용등급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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