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은 가족 잔치다. 부모·자식·형제·친척이 모인다. 흩어진 식구들이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운다. 그래도 이 자리에서 되도록 삼가야 할 말이 있다. 친근함의 표시로 무심코 하는 말이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의료 현장 전문가의 조언을 토대로 정리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해선 안될 말
장 원장은 "부모는 오랜만에 자식이 찾아오면 팔·다리·무릎 등 아픈 데를 낱낱이 얘기한다. 마치 어리광부리듯 쏟아낸다. 자식은 이런 얘기를 듣고 나서 속으로 마음 아파하면서도 그러려니 하고 넘기거나 짜증을 내게 된다"고 설명했다. 자식 입장에서 아버지·어머니가 건강하길 바라는데, 아프다는 말을 들으니 '걱정 반 짜증 반'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사위는 상대적으로 그런 반응이 적다고 한다.
진료실로 찾아온 고령의 환자가 장 원장에게 푸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러면 장 원장은 "자식 앞에서 아프다는 얘기를 하지 말고 나한테 와서 하시라. 내가 치료하거나, 안 되면 적합한 다른 병원으로 연결해 주겠다고 달랜다"고 말했다. 장 원장은 이런 환자가 오면 자녀와 통화해서 병세를 알려주고 치료법을 알려준다고 한다.
조심해야 할 말이 또 있다. 아들·딸이나 며느리·사위 등의 외모와 관련된 얘기다. "왜 이리 살쪘어?" "뚱뚱해졌다" "얼굴이 커졌다" "살 좀 빼야겠다" 등등. 반대도 있다. "왜 그리 살이 빠졌어?" 오상우 동국대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이런 질문은 싸움을 부르는 지름길"이라고 말한다.
더 조심할 표현이 있다. "왜 이리 늙었냐"이다. 또 결혼·출산·취직 등의 계획을 묻지 않는 게 상식이다.
오 교수는 "부모가 자식에게 이런 부류의 말을 가장 많이 하는데, 그러면 자식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된다"고 말한다. 오 교수는 "부모 입장에서 자식이 걱정돼서 이 소리 저 소리 한다. 그렇다 해도 외모 관련 잔소리로 인해 얼굴 붉히며 다투게 된다"고 설명했다. 오 교수는 "형제나 친척 사이에도 이런 말을 안 하는 게 좋다"고 말한다.
자녀가 부모에게 해선 안될 말
노부모 본인도 그렇지만 자녀가 가장 걱정하는 질환은 치매이다. 부모의 상태를 시험 보듯 물어보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어제 먹은 음식이 뭔지, 최근 외출한 데가 어딘지 등의 질문을 하면서 단기 기억을 테스트하는 걸 피하라는 뜻이다. 박건우 고려대 안암병원 신경과 교수는 "이런 걸 테스트하면 부모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박 교수는 직접적으로 질문하기 보다 간접적으로 체크할 것을 권한다. 집안이나 장롱·냉장고 정리 상태, 청소 상태가 달라졌는지 살핀다. 어머니가 내놓은 음식의 간이 달라졌는지 따지는 것도 방법이다.
오상우 교수는 "자식이 부모에게 '도대체 뭘 하셨기에 이리 살이 빠졌느냐' '왜 약을 제대로 챙겨 먹지 않느냐' '음식 맛이 왜 이러냐' 등의 잔소리를 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부모·자녀의 슬기로운 대화
장현재 원장은 "부모가 아프다는 말을 늘어놓아도 핀잔을 주면 안 된다. 귀담아듣고 치료 계획을 짜야 한다. 부모를 '1차 진료' 한다고 생각하고 일상적인 패턴에서 벗어난 게 뭔지 파악해서 문제가 있으면 병원으로 데려가는 게 좋다"고 말한다.
오 교수는 '열린 질문'을 강조한다. "살쪘네" 대신 "건강하게 잘 지내나" "도와줄 게 없나"는 식으로 질문을 바꿔보자고 권고한다.
"약봉지를 체크하라"
장 원장은 "노부모 집을 방문했는데, 그간 약봉지가 늘지 않았는지 유심히 체크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약이 많으면 약 성분이 충돌해 부작용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심하면 섬망(의식이 흐려져 헛소리하는 것) 증세가 올 수도 있다. 장 원장은 "약봉지를 들고 노부모가 다니는 동네의원에 가서 의사와 상의해 약을 정리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