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셴룽이 픽한 "다음 中지도자"…천지닝 당서기, 세계 거물 줄선다 [후후월드]

지난달 28일 상하이에서 천지닝(오른쪽) 중앙정치국 위원 겸 상하이 당 서기가 리셴룽(왼쪽) 싱가포르 선임장관이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리 선임장관이 천지닝과 회담 후 “중국 차세대 지도자와 새로운 연계를 맺었다”라는 싱가포르 연합조보와 가진 인터뷰 발언이 자막에 보인다. 연합조보 유튜브 캡처

지난달 28일 상하이에서 천지닝(오른쪽) 중앙정치국 위원 겸 상하이 당 서기가 리셴룽(왼쪽) 싱가포르 선임장관이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리 선임장관이 천지닝과 회담 후 “중국 차세대 지도자와 새로운 연계를 맺었다”라는 싱가포르 연합조보와 가진 인터뷰 발언이 자막에 보인다. 연합조보 유튜브 캡처

“다음 세대 중국 지도자와 새로운 관계 맺기를 희망했다.”
리셴룽 싱가포르 선임장관이 지난해 11월 말 중국 상하이에서 천지닝(陳吉寧·61) 당서기를 만난 뒤에 한 말이다. 천지닝을 중국의 차세대 지도자로 공인한다는 뉘앙스였다.

지난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 기간 천지닝 중앙정치국 위원 겸 상하이 당 서기가 깊은 생각에 빠져있다. AP=연합뉴스

지난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 기간 천지닝 중앙정치국 위원 겸 상하이 당 서기가 깊은 생각에 빠져있다. AP=연합뉴스

싱가포르 총리에 재직한 20년 동안 14차례 중국을 방문했던 리 선임장관은 중국 정치에 해박하다. 그런 그가 도널드 트럼프 당선 직후 5박 6일 일정으로 방중하자, 중국은 시진핑(72) 국가주석, 왕후닝(70) 전국정치협상회의 주석, 허리펑(70) 국무원 부총리, 천지닝 4명이 회담자로 나섰다. 미·중 사이에서 다리 역할로 이름난 싱가포르의 실력자를 초청했기 때문이었다.

리 선임장관은 가장 젊은 천 서기와 만남을 위해 쑤저우에서 베이징을 거쳐 다시 상하이를 찾았다. 이를 두고 전문가 사이에선 "2년 뒤인 2027년 중국공산당 21차 당대회에서 예상되는 리더십 개편까지 고려한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천지닝은 지난 한 해 세계 정·재계 VIP 68명을 만났다. 중앙일보가 상하이 당 기관지 해방일보의 천 서기 동정 기사를 전수 분석한 결과, 지난해 1월 2일 로렌스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을 시작으로 한 해 동안 글로벌 정치인 22명, 다국적 기업 총수 46명과 회담을 가졌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이어 지난해에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4월),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4월),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7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9월)과 스페인·노르웨이 총리(9월), 핀란드 대통령(10월)까지 국가 수반급 22명이 베이징과 별도로 상하이를 거쳐 천 서기를 만났다.


경제인 명단은 더욱 화려하다. 지난해 1월 10일 컴 켈러허 스위스 UBS 의장을 시작으로,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창업자(3월), 영국 스탠다드차타드 CEO(4월), 나이키(6월),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 총재 겸 아람코 회장(7월), 메르세데스 벤츠 CEO(9월), 푸르덴셜, 노바티스 회장(9월), 몽클레어 회장(10월), 월마트 CEO(10월), 제너럴일렉트릭스(GE) 헬스케어 CEO(11월), 폭스바겐 회장(11월) 등 금융·자동차·제약·부동산 등 세계 굴지의 기업 총수들이 천 서기를 만나 중국 사업을 협의했다.

천 서기가 접견한 외빈 명단은 같은 정치국위원이 다스리는 베이징·광둥·충칭·톈진에서는 볼 수 없는 현상이다. 천지닝의 독주에 덩위원 미국 시사평론가는 “중국 정부가 베이징보다 상하이에 더 중요한 정치적 지위를 부여했을 수 있다”며 “천지닝은 향후 한 단계 더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지난 4월 25일 토니 블링컨(왼쪽) 미 국무장관이 천지닝(오른쪽) 상하이 서기를 만나 악수하고 있다. 로이터

지난 4월 25일 토니 블링컨(왼쪽) 미 국무장관이 천지닝(오른쪽) 상하이 서기를 만나 악수하고 있다. 로이터

천 서기의 부상에는 세 가지 배경이 작용했다. 첫째 천 서기와 시진핑 주석과의 관계다. 1964년생인 천지닝은 시 주석의 모교인 칭화대 학부를 졸업했다. 시 주석, 천시(72) 현 중앙당교 교장과 함께 칭화방의 ‘철의 삼각형’으로 꼽힌다. 게다가 시 주석이 중시하는 환경 전문가다. 학부에서 환경공학을 전공했고 칭화대 총장, 환경부장, 베이징 시장을 역임했다. 1988년부터 1998년까지 10년간 영국 브루넬 대학과 임페리얼칼리지에서 유학했다. 20기 정치국 24명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국제적 배경까지 갖춘 시 주석의 적자(適子)로 꼽힌다.

둘째, 상하이 당 서기가 갖는 정치적 프리미엄이다. 상하이 서기는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올라서는 디딤돌로 평가받는다. 역대 총서기나 총리 중 장쩌민·주룽지·시진핑·리창이 모두 상하이 서기를 거쳤다. 2006년 후진타오 주석과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천량위를 제외하고 예외는 없었다.

셋째, 중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상하이의 위상이다. 반대로 보면 대망론이 시기상조일 수도 있다. 이와 관련, 양갑용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글로벌 기업 총수와 천지닝의 잦은 만남은 다국적 기업의 중국 본사가 상하이에 있다는 점도 반영됐을 것”이라며 “일각에서 나오는 천지닝이 차기 상무위원 앞순위를 차지할 것이라는 대망론은 예단하기 어렵다”고 짚었다.

천 서기가 지난해 접견한 외빈 명단에 한국 인사는 보이지 않는다. 접견 인물 68명 중 절반이 넘는 38명이 유럽 출신이었다. 미·중 사이에서 유럽을 견인하려는 의도가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아시아권은 10명에 불과하다. 한국은 물론 일본도 없다. 양 연구위원은 “천지닝 측의 의도적 배제 여부까지는 알 수 없지만, 중국의 차세대 정치인과 네트워킹을 등한시하는 한국 정치·경제계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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