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돈 없어 옆건물 화장실 쓴다, 보일러도 못 트는 인사검증단 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생지원금 포기를 시사하며 추경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모습. 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생지원금 포기를 시사하며 추경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모습. 뉴스1

 
“수도·전기요금 체납은 물론이고, 화장실도 폐쇄해 주변 관청을 찾아 이용 중인 것으로 안다.”

더불어민주당이 올해 예산을 일방적으로 삭감하면서 부서 경비가 ‘0원’이 된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의 최근 모습을 전한 한 검찰 인사의 말이다. 인사정보관리단은 윤석열 정부 출범 뒤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을 위해 법무부 내에 신설한 부서다. 임기 초반 윤석열 대통령이 출근길 도어스테핑(약식 문답)을 하면서 인사정보관리단 신설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등 관심을 두던 조직이다.

하지만 지난해 말 민주당은 “법무부 소관 업무가 아닌데 시행령에 근거해 운영되고 있다”며 정부안에 편성됐던 인사정보관리단 운영 경비 3억3000만원을 전액 삭감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윤석열 표 예산이라 콕 찍어 날려버린 것 아니냐”며 반발했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 뒤였다. 올해 인사정보관리단 예산은 직원 20여명의 인건비만 배정됐다. 이 때문에 검증 업무는 사실상 마비됐다. 

2022년 5월 27일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법무부 산하 '인사정보관리단' 신설과 관련한 질문에 설치 필요성을 강조하던 윤석열 대통령의 모습. 대통령실사진기자단

2022년 5월 27일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법무부 산하 '인사정보관리단' 신설과 관련한 질문에 설치 필요성을 강조하던 윤석열 대통령의 모습.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법무부 등 복수의 정부 인사에 따르면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인근 정부 건물에 위치한 인사정보관리단은 올해 1월부터 전기요금과 수도요금을 내지 못하고 있다. 청소 용역비도 없어 직원들이 집에서 각자 쓰레기봉투를 갖고 와 쓰레기를 버릴 정도다. 청소를 하지 못해 청결하게 관리가 어려운 사무실 화장실을 쓰는 대신 인근 관청의 화장실 등을 찾아 이용 중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삼청동 공원이나 주변 감사원 건물의 화장실을 이용한다. 기본 인권조차 박탈된 것”이라며 “다행히 아직 단전·단수는 안 된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역대급 한파에도 고장난 보일러를 고치지 못해 뜨거운 물을 쓰지도 못하고 있고, 전기요금을 못 내니 개인 난방 기구를 쓰는 건 언감생심이다. 


검증 업무를 위해선 인사 관련 서류 인쇄도 필수다. 다행히도 A4용지는 지난해에 조금 사둔 것이 남아있지만, 남은 용지와 프린터 토너가 떨어지면 다른 부처에서 빌려와야 할 판국이다. 검증을 위한 외부 출장비와 점심 및 야근 식대도 모두 직원들 개인 돈으로 지출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농지법 위반 등 공직 후보자의 투기 의혹을 살펴보려면 현장을 가야하는데, 그 조차도 쉽지 않다”고 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머리발언을 마친 뒤 안경을 만지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머리발언을 마친 뒤 안경을 만지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여권 관계자는 “최상목 권한대행 체제에서도 공무원·공공기관 인사는 해야 한다”며 “민주당에서 대선을 염두에 두고 공공기관 인사를 막으려 관리단 예산을 날린 것은 아닌지 의구심도 든다”고 했다. 법무부 내에선 인사정보관리단을 법무부 청사 내로 들여오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이사 비용과 통신망 설치 비용 등의 예산이 필요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달 23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으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업무에 복귀했지만, 방통위도 예산 삭감으로 업무가 일부 마비됐다. 민주당이 방통위의 소송 업무 관련 예산 전액을 삭감하면서 방통위는 ‘외상 변호사’를 구하고 있다. 이진숙 위원장은 지난달 31일 탄핵 기각 뒤 참석한 첫 국무회의에서 “예산 삭감 규모를 예상했지만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방통위 고위관계자는 “추경 편성을 통해 예산이 복구될 수 있으니, 일단 외상으로라도 소송을 맡아달라며 사람을 찾는 중”이라며 “외국 빅테크 기업이 소송을 걸면 대응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 고위 관계자는 “우선 변호사가 구해지기 전까진, 소송 경험이 부족하더라도 사내 변호사 등 내부 직원끼리 팀을 꾸려 대응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