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 車에 관세 때려라" 트럼프 부추기는 美포드

짐 팔리(Jim Farley) 포드 CEO가 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2025 디트로이트 오토쇼에 앞서 신차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짐 팔리(Jim Farley) 포드 CEO가 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2025 디트로이트 오토쇼에 앞서 신차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자국 우선주의 정책에 미국 완성차 업계가 편승하며 한국의 고립이 심화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 10~20% 부과를 검토 중인데 미국 완성차 업계가 이를 연일 부추기면서다.

미국 빅3 자동차 업체 중 하나인 포드의 짐 팔리(Jim Farley)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울프 리서치 주최 자동차산업 콘퍼런스에서 “멕시코·캐나다에 대한 관세는 150만~200만대의 차를 미국으로 들여오는 한국·일본·유럽 자동차 기업에 무제한적인 자유를 줄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멕시코·캐나다에 대한 25% 관세 조치에 “미국 자동차 산업의 구멍이 될 것”이라며 “한국·일본산에도 관세를 부과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그는 13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관세 정책을 입안하는 로저 마셜 상원 의원 등을 만나 이같은 의견을 전달한다.

그는 지난 7일(현지시간) 열린 지난해 4분기 실적발표 현장에서도 “연간 수십만 대의 차를 수출하는 토요타와 현대차·기아는 사실상 관세 없이 차를 팔고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가 멕시코·캐나다에 대한 관세를 시행하려면 모든 국가를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 전문가들은 “한국으로 관세의 화살을 돌린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1조 달러(1450조원)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며 관세 면제가 전망되는 일본과 달리 한국은 대응이 전무한 상태여서다. 이항구 전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은 “국내 일각에선 포드가 트럼프 관세 전반을 때린 걸로 오해하는데, 뭣 하러 그들이 한국 기업 편을 들겠나”라며 “오히려 한국산에 관세가 부과되면 미국 자동차 업체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한국이 타깃이 된 건 최근 확 늘어난 미국에서의 자동차 판매량과 관련이 깊다. 각 사가 밝힌 지난해 미국 자동차 판매량을 종합하면 순위는 1위 제너럴모터스(268만9346대), 2위 토요타(233만2623대), 3위 포드(206만5161대), 4위 현대차·기아(170만8293대) 순이었다. 현대차·기아의 판매량은 2020년 120만8374대(5위)에서 4년 만에 41.4% 증가했다. 같은 기간 포드 판매량은 6.9%만 증가했고 순위도 1위에서 3위로 내려앉은 것과 대조적이다.


현대차·기아는 미국 판매량 중 절반 이상을 한국에서 생산해 공급한다. 지난해 미국 판매량 중 58.3%(99만5477만대)가 한국에서 생산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무관세로 수출됐다. 멕시코에 완성차 2곳 공장을 둔 포드는 연간 36만대(지난해 기준)를 미국으로 들여와 판매하는데 멕시코 관세가 다음 달부터 부과되면 피해가 불가피하다. 국내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포드와 현대차·기아는 미국 시장에서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세단을 놓고 경합 중”이라며 “미국 완성차 업계는 트럼프 행정부에 멕시코·캐나다 관세에 품목별 예외를 인정해달라거나, 한국산에 대한 고율 관세를 정부에 요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으로 회귀하는 美자동차업계

자국 내 일자리 창출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침에 미국 자동차 업계는 미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GM의 메리 바라(Mary Barra) CEO는 지난 11일(현지시간) 울프 리서치 콘퍼런스에서 “멕시코· 관세가 부과될 경우 자본을 투입하지 않고 추가비용을 30~50%를 줄일 대책을 마련했다”고 했다. 함께 참석한 폴 제이콥슨 GM 최고재무책임자(CFO)는 “관세가 장기화하면 완성차·부품 생산을 (미국 내로) 전환하는 추가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실제로 GM은 멕시코에서 생산되던 대형 픽업트럭을 미국 인디애나주 포트웨인 공장에서 생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지난해 GM은 멕시코 공장에서 생산된 자동차 71만대를 미국으로 들여와 판매했는데, 생산기지 이전으로 관세에 대응하겠단 것이다.

메리 바라 제너럴모터스(GM) CEO가 2023년 12월 13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워싱턴 경제클럽 토론회에서 토론하고 있다. 연합뉴스

메리 바라 제너럴모터스(GM) CEO가 2023년 12월 13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워싱턴 경제클럽 토론회에서 토론하고 있다. 연합뉴스

 
크라이슬러, 지프, 램 등 미국 전통 브랜드를 보유한 다국적 자동차 기업 스텔란티스도 대규모 대미 투자계획을 지난달 발표했다. 파이낸셜타임즈(FT)에 따르면 존 앨칸(John Elkann) 스텔란티스 회장은 지난달 20일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50억 달러(7조2500억원)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을 밝혔다. 일리노이주 벨비디어 공장을 재가동하고, 닷지의 SUV ‘듀랑고’를 생산하는 디트로이트 공장을 신설하기로 하면서다.

일각에서는 테슬라가 미국 내 생산에 집중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중국 상하이 기가팩토리를 해외 완성차 업계에 매각한 뒤 테슬라 전기차를 위탁 생산하는 방식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원한 국내 한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테슬라가 중국 상하이 기가팩토리를 매각하기 위해 대상을 찾는 것으로 안다”며 “중국 전기차와 경쟁이 심해지자 우주산업과 미국에 집중하려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