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3년을 맞이해 신속한 전쟁 종결을 촉구한 미국 주도의 결의안을 채택했다. AFP=연합뉴스
美 주도 결의안 결국 채택
이는 미국이 결의안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에 대해 책임을 묻는 대목을 뺐기 때문에 가능했다. 러시아와 직접 협상을 통해 조기 종전을 추진하는 트럼프 행정부가 사실상 러시아의 입장을 십분 고려해준 결과다.
유럽 국가들은 반발했다.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이사국들은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독립, 영토보전을 지지한다'는 내용이 추가된 수정안을 제출했다. 한국도 이에 찬성했지만,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부결됐다.
결국 러시아의 침략을 묵인하는 내용의 미국이 제출한 결의안이 최종 채택되자 영국 대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동일 선상에서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반발했다. 프랑스 대표도 "침략당한 국가(우크라이나)가 항복을 하는 것과 평화가 동일시돼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찬성표를 던진 한국 대표도 발언 기회를 빌려 유감을 표했다. 황준국 주유엔 대사는 "한국은 미국이 제안한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지만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주권국가를 상대로 한 침공을 반영하지 않은 것은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결의 채택을 통해 관련 당사국이 정의롭고 포괄적으로 평화와 안정을 이루기 위한 외교적 노력에 더욱 속도를 내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해당 결의안이 러시아의 침략을 묵인한 건 유감이지만, 조기 종전 등 '평화'라는 대의를 위해 찬성표를 던졌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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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준국 주유엔 대사가 지난해 1월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안보리 공식 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유엔 웹티비 캡처
'北 남침' 공인했던 유엔 안보리
실제 1950년 6·25전쟁 발발 직후 유엔 안보리는 결의 82호, 83호, 84호 등을 통해 북한의 무력 공격을 "평화에 대한 파괴 행위"로 규정했다. 동시에 북한을 향한 즉각적인 적대 행위 중단과 북한군의 38선 이북 철수를 촉구했다. 당시 유엔 안보리를 비롯한 국제사회가 6·25 전쟁이 북한의 불법적 '남침'으로 발발했다는 걸 공인하지 않았다면 유엔군 조직, 다국적 군사 개입 등 국제적 지원이 이어지기는 어려웠을 수 있다.
지난해 한국이 11년 만에 재진입한 안보리에서 보다 책임 있는 목소리를 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안보리 결의안이 가결되려면 9표가 필요한데, 이번 결의안이 10표 찬성으로 통과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을 비롯한 각 이사국은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수도 있었다.
또한 한국은 북한의 대러 무기 지원과 파병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의 준 당사국이 됐다. 러시아의 침략 전쟁이 한국에 대한 직접적인 안보 위협으로 돌아오는 격인데도 이에 대한 책임 추궁을 도외시한 거란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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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9일 우크라이나군에 의해 생포된 북한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엑스 캡처
北 문제 공조 위해서라지만…
그러나 북한 문제를 고려할 경우 한국이 이번 기회에 더욱 외교적 일관성을 기했어야 한다는 반론도 나온다.
취임 직후부터 북한에 관심을 보여온 트럼프는 향후 북·미 관계의 추이에 따라 유엔 무대에서 북한의 불법 도발에 대해서도 유화적인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 원칙보다는 실리에 따라 '불량 국가'에 면죄부를 주는 트럼프식 외교에 보조를 맞추는 데 방점을 둔다면 한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북한의 불법 행위를 미국이 눈감을 때도 스스로 방어할 논리가 빈약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비록 권한대행 체제이긴 하지만 한국이 현 정부가 앞세운 가치 외교 기조에 어긋나는 '갈지자 행보'를 보이는 데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이날 유엔 총회에선 러시아의 침략 책임을 묻는 결의안 두 건이 채택됐는데 한국은 여기에는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 한국이 총회에서 견지했던 입장을 안보리에서는 피력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제기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