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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5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금리 결정에 대한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이번 결정은 금통위원 6명의 만장일치로 이뤄졌다. 경기 부양의 필요성이 그만큼 크다고 봤다. 금통위는 이날 통화정책방향 회의 의결문에서 인하 배경에 관해 “외환시장의 경계감이 여전하지만, 물가 상승률 안정세와 가계부채 둔화 흐름이 지속하는 가운데 성장률은 크게 낮아질 것”이라며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해 경기 하방 압력을 완화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한은은 지난해 3분기 성장률(0.1%)이 예상에 크게 못 미치자 같은 해 10월과 11월 두 차례 연속으로 금리 인하에 나섰다. 12월 비상계엄 여파로 경기가 얼어붙었지만, 올해 1월에는 달러당 1460~70원대 고환율에 발목 잡혀 한 차례 동결해야 했다. 2월 중순 들어선 달러당 원화값이 1430원대 부근에서 움직이는 등 변동성이 줄어들어 다소 인하 여력이 생겼다.
고금리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지만 웃을 수 없다. 경기 상황이 더 심각해져서다. 한은은 이날 수정 경제 전망을 통해 올해와 내년 성장률을 각각 1.5%, 1.8%로 예상했다. 특히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 11월 1.9%에서 크게 낮췄다. 우선 비상계엄 여파에 소비가 위축되는 등 내수 부진이 심화한 게 성장률을 0.2%포인트 정도 끌어내린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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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디자이너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폭탄’에 중국ㆍ캐나다가 보복 관세로 맞서는 등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성장률(2%) 중 순수출(수입-수출)의 기여도가 1.8%포인트였는데 올해 성장률(1.5%)에선 기여도가 0%에 가깝다고 한은은 설명했다.
한은은 또 이날 발간한 ‘미국 신정부 관세 정책의 글로벌 및 우리 경제 영향’ 보고서에서 비관적 시나리오가 현실이 된다면 올해와 내년 한국의 성장률이 기본 시나리오보다 0.1%포인트, 0.4%포인트 각각 낮아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이 적자를 보고 있는 중국 등 주요국에 높은 관세를 부과한 뒤 이를 2026년까지 유지하고, 상대국이 높은 강도로 관세 보복에 나선다는 시나리오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작한 관세전쟁이 최악으로 치닫는다면 올해와 내년 한국 성장률이 1.5%, 1.8%가 아닌 1.4%로 나란히 추락할 수 있다는 암울한 진단이다.
1%대 중반 성장률이라도 지키려면 내수 진작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얘기다. 한은도 이 때문에 올해 추가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금통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시장에선 2월을 포함해 올해 2~3회 정도 인하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데, 한은이 가정하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금통위원 6명 중 2명이 향후 3개월 내 추가 인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봤다. 나머지 4명도 워낙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추가 인하 여력이 빠르게 소진되는 데 대한 우려를 표한 것일 뿐, 현재 금리 인하 국면이라는 점에는 모두 공감했다고 한다. 다만 추가 인하 시기는 환율ㆍ물가ㆍ가계부채 등 여러 여건을 종합적으로 보고 판단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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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윤 기자
문제는 금리만으로 경기 추락을 방어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규모와 조건을 둘러싼 여야 입장 차가 여전하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기업들은 트럼프 무역정책 등에 따라 대체 수출시장 확보 혹은 생산기지 이전 등으로 추가적인 비용을 지불해야 할 가능성이 매우 크고, 이로 인해 투자 및 고용이 위축될 수 있다”며 “여전히 높은 대출금리, 고환율 등을 고려하면 올해 성장률은 한은 전망치보다 더 낮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제 상황에 따라 한은의 금리 인하 여력이 더 줄어들 우려도 있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의 금리 인하 시기가 늦어지면서 한은도 올해 한 번 정도 더 내리는 수준에 그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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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홍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