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비전포럼] 트럼프 관심은 미국 산업 강화…한국도 경쟁력 높여야 생존

한·일 관계 연속 진단〈36〉

지난달 7일 트럼프 대통령은 이시바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한·미·일 안보협력을 확인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7일 트럼프 대통령은 이시바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한·미·일 안보협력을 확인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바이든 행정부에서 기틀을 닦은 한·미·일 협력 체제가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7일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와의 미·일 정상회담에서 한·미·일 안보 협력을 재차 확인했다. 이는 북핵 억제에 있어 한·미·일 3국 협력의 중요성을 트럼프 2기 행정부도 이해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다만 강력해진 트럼프의 자국 우선주의 정책으로 국제 정세의 예측 가능성은 한층 낮아졌다. 지난달 28일 한·일 비전 포럼 참석자들은 “한국이 자체적인 경쟁력을 키우고 미·일과의 협력 범위를 넓히는 것만이 생존 방법”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미국 이익 앞에 동맹도 예외 없어
일본 ‘안전보장’ 확보하며 기술강화
미·중·일 모두 산업정책에 적극적
한국도 자력생존 위해 인재 키워야
 

한·일, 외교와 경제 공동 대처 필요

이종원 와세다대 명예교수

이종원 와세다대 명예교수

▶이종원 와세다대 명예교수(발제)=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함께 1기를 뛰어넘는 수준의 공격적인 국익 중심주의 정책이 노골화하고 있다. 이런 국익 중심주의는 미국의 동맹에도 예외 없이 무차별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미국의 신고립주의는 미국 내 당파를 막론하고 사회 전반의 추세가 됐다. 한편 미국은 러시아와 연대해 중국을 견제하는 이른바 ‘역(逆) 키신저 전략’에 입각해 미·러 접근을 통한 중·러 분단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트럼프 2기 대응에 선제적으로 나서 최근 미·일 정상회담에서 ‘안전 보장’의 확보에 주력하며 1조 달러 규모의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다만 관세 압박 속에서 일본이 얻을 경제적 성과는 아직 불확실하다.

이런 가운데 미국이 추진하는 ‘부담 공유’ 차원의 한·미·일 협력은 현실적 추세다. 한·미·일의 ‘동맹화’는 미국의 오랜 과제였다. 한국 외교·안보의 기반은 한·미 동맹이며 한·일 양국 또한 지정학적, 경제적 측면에서 공동 대처가 필요한 부분이 많다. 이뿐 아니라 한·미 동맹과 한·미·일 협력 강화는 한국의 대중국 외교에 있어 발판이 된다. 미국과의 동맹을 축으로 하되 미·중 사이를 오가며 상호 관계를 강화해 가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방식을 벤치마킹할 필요도 있다.


한국은 외교적 위상 제고를 위해 한·미·일, 한·중·일 협력에 더해 쿼드(Quad)와 G7(주요 7개국) 확대론에 적극적으로 연계해야 한다. 동시에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의 역외중견국 구상에도 참여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한국은 다양한 소다자 관계를 통해 외교적 지평을 넓힐 수 있다.

한·미 협력 위해 한·일 관계 좋아야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원덕 국민대 교수, 이석배 전 주러시아 대사,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 원장,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중앙홀딩스 회장),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서석숭 한일경제협회 상근부회장, 신현호 해울 대표변호사,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 신각수 전 주일본 대사, 이종원 와세다대 명예교수, 이창민 한국외국어대 교수, 이재승 고려대 원장, 박홍규 고려대 교수,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 김진표 전 국회의장, 최상용 고려대 명예교수, 이혁 전 주베트남 대사, 이하경 중앙일보 대기자, 이근관 서울대 교수. 김성룡 기자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원덕 국민대 교수, 이석배 전 주러시아 대사,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 원장,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중앙홀딩스 회장),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서석숭 한일경제협회 상근부회장, 신현호 해울 대표변호사,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 신각수 전 주일본 대사, 이종원 와세다대 명예교수, 이창민 한국외국어대 교수, 이재승 고려대 원장, 박홍규 고려대 교수,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 김진표 전 국회의장, 최상용 고려대 명예교수, 이혁 전 주베트남 대사, 이하경 중앙일보 대기자, 이근관 서울대 교수. 김성룡 기자

▶신각수 전 주일대사=트럼프 2기 행정부는 ‘예측 가능한 예측 불가능성’이란 표현으로 설명할 수 있다. 다만 트럼프 1기 당시 행보를 보면 2기에서도 불확실하지만 나름의 원칙과 원리가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트럼프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시기는 길어야 내년 중간선거까지일 것이다.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한·미·일 협력을 위해선 한·일 관계가 탄탄해야 하는데 늘 한계가 있었다. 이는 미국이 매번 골치 아파했던 부분이다. 한·미·일 간 미래 청사진을 공유함으로써 역사 인식으로 인한 갈등 요인을 줄여야 한다.

▶박홍규 고려대 교수=한국에 비교적 우호적인 이시바 정부에서 한·일이 안정적인 역사 화해의 시대로 진입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한국이 포용적 철학을 기반으로 일본을 대해야 한다.

트럼프, 중·러 갈라놓기 어려울 듯
▶이석배 전 주러시아 대사=이른바 ‘역 키신저’론이 현실화할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중국과의 전통적인 신뢰 관계를 희생하면서 향후 3년여 동안만 지속할 트럼프와의 불투명한 관계에 국익을 걸지는 의문이기 때문이다.

▶이재승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원장=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과 관련해 트럼프는 강대국 우월주의 관점에서 러시아는 파트너가 될 수 있지만, 우크라이나는 그렇지 않다고 보는 듯하다. 가치·동맹·도덕·원칙이 모두 없어졌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 원장=자국 산업 보호주의를 앞세우는 트럼프 2기 행정부를 맞아 한국도 무엇보다 산업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우리의 강점인 제조업 분야에서 미·일과 협력할 방안을 구체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이창민 한국외국어대 교수=일본 정부는 인공지능(AI) 생태계 구축과 반도체 생산에 보조금과 재정 지출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한국도 기업 간 형평성에만 얽매이지 말고 기업의 혁신을 적극 지원해 일본처럼 AI 생태계 조성에 나설 때다.

과거사 잘 관리하고 미래 협력할 때
▶서석숭 한일경제협회 상근부회장=최근 일본이 라피더스, TSMC 쿠마모토 공장 등을 속도전으로 짓는 것을 보면 두려움마저 느낀다. 한국은 상법개정안과 주 52시간제로 있는 경쟁력도 날려버리고 있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한·미·일 협력을 논하기에 앞서 한·일 관계가 먼저 잘 돌아가야 한다.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이라는 모멘텀이 있는 올해 김대중-오부치 선언 2.0 시대를 열기 위한 상징적인 액션을 취할 필요가 있다. 한편 과거사 문제는 관리의 대상이며 완벽히 해결하겠다고 하면 난관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윤석열 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을 적극 추진하던 당시에도 일본 내에선 ‘한국에서 정부가 바뀌면 대일 정책은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가 상당했다고 한다. 한국의 대일 정책 변동성에 대한 일본의 불신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해야 한다.

▶신현호 법률사무소 해울 대표변호사=갈등의 불씨가 여전히 남아있기는 하지만 한·일 간 강제징용 소송전은 어느 정도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이제 한·일 협력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는 시점이다.

한국 ‘대북 억지력 담당’ 제시해야
▶이혁 전 주베트남 대사=미국은 경제·전략·이념적으로 유럽과 충돌하고 있다. 또한 한·일에 대해서도 미국은 한국과 일본을 등가로 놓고 있지 않다. 한·미·일 협력 구도에서는 일본의 존재가 훨씬 중요해졌다. 우리는 한·일 관계를 더욱 긴밀히 해나가야 한다.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북핵·미사일이 고도화됐고 미·중 군사 경쟁이 심화했으며, 한국의 국방력에 대한 국제적 기대도 높아졌다. 이에 따라 한·미·일 협력에서 한국의 역할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한국은 대북 억지력을 담당한다는 것을 미국, 일본에 제시해야 한다.

▶권태환 한국국방외교협회 회장=한·미·일이 군사적 필요성을 바탕으로 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캠프 데이비드’ 체제의 명칭이 바뀌더라도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도 3국 간의 강력한 실질적 협력 구조는 유지돼야 한다.

▶이근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한·일 관계의 특수성에만 집중하지 말고 과거 일본을 경계했던 호주 등 다른 국가의 대일 협력 사례를 참고하며 더 넓은 시각에서 살펴야 한다. 또 1998년 ‘21세기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선언) 2.0 버전도 고려해야 한다.

▶이하경 중앙일보 대기자=국제 정세의 예측 가능성은 한층 낮아졌다. 그러나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한국과

일본을 “버리지(abandon)않겠다”고 했다. 일본이 트럼프 재집권에 대비해 1년 전부터 정상회담 대응팀을 구성한 것은 배워야 한다. 미·일과 협력을 강화하고, 강력한 제조업 경쟁력을 무기로 창의적 외교 공간을 만들어야 약소국을 무시하는 트럼프 2기에 대비할 수 있다.

조선·방산, 미국과 협력 모색 필요
▶김진표 전 국회의장=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 한국의 목소리가 트럼프 본인에게 얼마나 전달될지가 중요하다. 여야가 협력해 미국과 접촉하고 트럼프의 관심사인 조선과 방산 산업에서의 협력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최상용 고려대 명예교수=이시바 총리는 역사 문제에 있어 진보적인 편이지만 그가 ‘탈(脫) 아베’를 표방한다고 해서 과거사 문제에 있어 장애 요인이 없어졌다고 낙관하면 안 된다. 일본이 실제 향하고 있는 방향성을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홍석현 재단법인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규범에 의한 세계 질서가 무시되고 힘에 의한 양자 외교가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의 최대 관심사가 트럼프 1기 때 제기했고 바이든이 이어받았던 제조업 등 산업 강화와 중국 견제라는 점에서 우리는 실력을 갖춰야 한다. 한국은 반도체의 경우 일본보다는 앞서 있다. 미국과 중국은 산업정책에 열심인데 한국도 반기업 정서를 극복하고 핵심 인재를 양성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또한 북·미 대화가 시작될 때 우리의 입장이 배제되지 않도록 전략을 잘 마련해야 한다. 트럼프 체제가 영원하지 않지만, 북한 김정은과의 브로맨스를 무시할 수는 없다. 코리아 패싱이 안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평화만들기=한반도 평화 정착에 기여하기 위해 2017년 11월 출범했다. 산하의 한일비전포럼은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실질적이고 전략적인 해법을 찾고 있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가 위원장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