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사라질 수 있는데…GM노조, 국회의원 불러 "해법 내놔라"

지난 24일 인천 부평구 제너럴모터스(GM) 한국사업장 부평공장 정문 외벽에 전국금속노조의 현수막이 걸려있는 모습. 오삼권 기자

지난 24일 인천 부평구 제너럴모터스(GM) 한국사업장 부평공장 정문 외벽에 전국금속노조의 현수막이 걸려있는 모습. 오삼권 기자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한국GM 지부는 10일과 13일 각각 경남 창원과 인천 지역구 국회의원을 불러 간담회를 연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수입산 자동차 관세(25%) 부과로 대미 수출물량이 생산되는 부평·창원공장의 인력감축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위기 탓이다. 익명을 원한 한 국회의원은 “조직표를 가진 노조가 ‘해법을 내놔라’며 정치권을 압박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25일 방문한 충남 당진시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냉연 2공장 정문 앞은 점심시간에도 오가는 사람이나 차량 없이 한산했다. 금속노조 소속 현대제철 당진하이스코지회의 ‘게릴라 파업’으로 생산 차질을 빚자 회사 측이 지난달 24일 초유의 직장폐쇄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노조 관계자는 “끝까지 가겠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수입산 자동차·철강에 대한 관세 부과(3월 말~4월 초)가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국내 노조의 움직임이 거칠어지고 있다. 파업을 벌이거나 정치권에 줄을 대는 등 소위 ‘힘자랑’에 나서며 사측을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은 기업의 해외 이탈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3년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51.0달러로 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27위에 그쳤다. 반면에 미국은 83.6달러로 한국의 1.6배였다. 같은 노동시간을 투입했을 때 한국보다 미국이 더 많은 부가가치를 생산한다는 뜻이다. 이철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 제조업은 노조 존재에 따른 고임금으로 노동생산성이 OECD 국가 중 낮은 축에 속한다”며 “트럼프 관세까지 부과되면 노조로선 일자리불안 등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조기 대선 가능성 커지자 정치권에 줄 대는 노조

한국자동차모빌리티협회(KAMA)에 따르면 한국GM이 지난해 생산·판매한 차량 49만9559대 중 미국 수출분은 41만8792대로 83.8%에 달했다. 트럼프 관세로 인한 가격경쟁력 저하가 우려되자 GM은 미국 현지 생산을 검토 중이다. 자칫 한국GM 부평·창원공장 현장직 약 1만1000명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것이다. 부평공장 현장직 A씨(58)는 “2018년 폐쇄된 군산공장의 전철을 밟을 수 있어 불안하다”고 했다.


한국GM 노조가 꺼낸 해법은 자구책보단 정치권을 압박하는 일이다. 한국GM 노조를 비롯한 금속노조 소속 완성차업체 각 지부는 지난달 중순 충북 단양에서 워크숍을 열고 5월 1일 노동자의 날을 기점으로 여의도 국회 앞 등에서 대규모 분규를 열기로 했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완성차업계 인사는 “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지자 정치권에 실력행사를 하려는 것”이라며 “사실상 ‘안 들어주면 안 뽑겠다’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현대제철의 경우 지난해부터 시작돼 지금까지 타결되지 않은 2023년 임금·단체협상 난항이 파국의 원인이다. 노조는 “2023년 영업이익이 7983억원이었던 만큼 그에 맞는 성과급을 달라”고 요구하고, 회사 측은 “2024년 영업이익이 1595억원으로 크게 감소하는 등 경영이 어렵다”며 지급에 난색을 보이면서다. 사측의 ‘기본급 450%+1000만원’ 제안을 거부해온 노조는 지난 2일 부분파업을 8일까지 연장했다.

만약 직장폐쇄 국면이 수습된다고 하더라도 쟁점은 남아있다. 현대제철은 트럼프 관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미국 남부에 10조원을 들여 제철소 건립을 추진하는데 이에 노조가 제동을 걸면서다. 명희승 금속노조 현대제철 당진하이스코지회장은 “노동자를 착취한 돈으로 트럼프에게 선물을 주겠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미국 제철소도 노조의 투쟁 대상”이라고 반발했다.

지난달 25일 방문한 충남 당진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냉연2공장 정문 전경. 오가는 인파나 차량 없이 한산했다. 오삼권 기자

지난달 25일 방문한 충남 당진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냉연2공장 정문 전경. 오가는 인파나 차량 없이 한산했다. 오삼권 기자

 
자동차·철강 노조의 이같은 움직임에 전문가들은 “노조도 장기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과급 같은 단기적 이익에 급급할수록 노동생산성을 저하해 기업의 해외 이전의 촉매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을 압박하는 일 역시 성과가 적을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치인은 선거철에만 보여주기식으로 움직일 뿐 장기 대책엔 관심이 덜하다”고 말했다.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본부장은 “한국GM의 경우, 노조가 협력적인 노사관계를 보여주면서, 높은 노동생산성을 본사에 충분히 어필해야 철수 가능성을 낮출 수 있을 것”이라며 “현대제철 노조는 제철업의 불황이 장기화하는 만큼 성과급보다는 고용 안정에 무게를 두고 사측과 협상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제조업 구조조정 필요성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노조도 산업 변화의 연착륙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며 “대내외 여건이 어려운 상황에서 단기적 이익에만 집중하면 훗날 노조로선 교섭할 상대가 사라지는 일을 맞이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