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리통 관련 이미지. 중앙포토
이화여자대학교가 올 1학기 ‘생리 공결제’를 시범 운영한다. 생리 공결제는 여학생이 생리 기간 건강상의 이유로 수업에 오지 못했을 때 출석을 인정해주는 제도다. 지난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여성의 건강권과 모성 보호 측면에서 적절한 사회적 배려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권고하면서 일선 학교에 도입됐다.
3일 이화여대가 지난달 25일 올린 공지사항을 보면 학부생은 채플과 시험 등을 제외한 학부 교과목에서 한 학기에 최대 4회 생리 공결을 신청할 수 있다. 다른 질병이나 경조사 등과 달리 별도의 증빙 서류를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1회당 하루, 직전 신청 건으로부터 21일이 지나야 신청할 수 있다는 조건을 뒀다.
이화여대 재학생들은 학교 측 결정을 반기는 분위기다. 앞서 2000년대부터 여러 총학생회가 생리 공결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었을 만큼 학생들의 수요가 큰 제도이기 때문이다. 23학번 재학생 이모(21)씨는 “사람마다, 달마다 (생리통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이런 제도가 시범 운영된다는 건 좋은 변화”라며 “악용 사례가 있다고 하지만, 수업을 안 듣는 건 본인의 손해이자 책임”이라고 말했다.

이화여대 홈페이지에 지난달 25일 게시된 생리 공결제 관련 안내. 홈페이지 캡처
대학의 생리 공결제 운용은 각 학교 자율에 맡겨져 있다. 중앙대가 2006년 2학기 전국 최초로 제도를 도입했고, 서울대·연세대·고려대와 한양대·경희대 등이 뒤따랐다. 성균관대의 경우 공식적인 생리 공결제는 없지만, 진단서와 ‘출석 인정 신청서’를 제출하면 교수·강사의 재량으로 출석을 인정받을 수 있다. 거점 국립대 중엔 강원대·제주대·전남대 등이 시행 중이다. 숙명·성신·동덕·덕성 등 서울에 있는 다른 여대도 이미 생리 공결제를 시행하고 있다. 학기당 허용 횟수 및 증빙 방식 등은 학교마다 다르다.
다만 생리 공결제는 지난 20년간 대학가의 ‘뜨거운 감자’였다. “여학생은 생리 공결을 남용하고, 남학생은 역차별을 당한다”는 시각에서다. 지난 2019년 카이스트(KAIST) 학부 총학생회는 “생리 공결제가 오남용되고 있다”며 생리 공결제 현황 통계를 공개했다가 “근거 없는 수치로 편견을 조장한다”, “여학생 눈치 주기”라는 지적에 결국 사과문을 올렸다. 지난 2023년엔 조선대의 한 교수가 “여학생들이 생리 공결을 쓰면 태도 점수를 깎겠다. 국가의 부름(예비군)이나 3촌 이내 사망만 공결로 인정한다”고 발언한 내용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지난해 서울예대는 '소변 검사 진단서와 진료 확인서가 있어야 생리 공결을 인정할 수 있다'고 공지했다가 논란이 커지면서 철회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대학 측이 엄격한 증빙을 요구해 비판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지난 2018년 생리 공결제를 도입한 서울예대는 지난해 “생리 공결을 사용할 때 ‘소변 검사’ 후 발급받은 서류를 제출하라”고 공지했다. 당시 학교 측은 “2019년 681건이었던 생리 공결 건수가 지난해 2773건으로 폭증했다”는 근거를 들었다. 그러나 학생들의 거센 반발이 이어지면서 서울예대는 “학생들과의 지속적 소통을 통해 제도의 목적과 수업의 운영에 맞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강구하겠다”며 방침을 철회했다.
생리 공결제에 대해 건강권 측면에서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안소영 여성환경연대 상임대표는 “여성이 생리통 등으로 몸이 아프거나 불편한 상황에 처했을 때 이를 도와줄 수 있도록 제도를 운용하는 건 필요하다”며 “제도가 도입된 취지가 퇴색되지 않게끔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월경 기간에 생길 수 있는 불편함과 고통에 대해서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 문화와 사회적 인식이 조성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생리 공결제를 지나치게 비판하는 주장엔 ‘나는 학점·취업 때문에 힘든데 (타인이) 이익을 보는 게 싫다’는 상대적 박탈감 또는 젠더 갈등 기제가 깔렸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