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는 트럼프, 우크라 무기지원까지 끊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파행 이후 우크라이나에 대한 모든 군사 지원을 중단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무기 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우크라이나는 전쟁 수행 능력의 상당 부분을 상실할 위기에 처한 셈이다. 일각에선 향후 한국과 방위비 협상에서도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이 같은 접근법으로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 카드를 들이밀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일(현지시간) 미 백악관 관계자는 CNN에 “트럼프 대통령은 평화를 추구하고 있고, 우방국도 그에 따라야 한다”며 “우리의 (무기) 원조가 평화에 도움이 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4일 오전 3시30분(우크라이나 현지시간)을 기해 미국의 군사원조 물자 수송이 중단됐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은 지난달 28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 당시 젤렌스키 대통령의 태도 때문인 것으로 파악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익명의 미 정부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트럼프는 ‘종전은 아직 멀었다’는 젤렌스키의 말에 분노했다”며 “(젤렌스키는) 미국이 심각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트럼프 입장에선) 그래서 ‘시위’를 할 필요가 있었다”고 전했다.

미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추가 지원할 무기만 동결한 게 아니다. 현재 항공기·선박으로 운송 중인 무기는 물론 폴란드 등 제3국에서 인도를 기다리고 있던 물자의 지원도 일시에 중단시켰다. 뉴욕타임스는 “10억 달러(약 1조4608억원) 상당의 무기와 탄약 지원에 바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추산했다.

이 같은 조치가 일시적인 것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블룸버그통신은 익명의 미 국방부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우크라이나의 지도자들이 ‘평화를 위한 성실한 약속’을 입증할 때까지 모든 군사원조를 중단키로 했다”고 이날 전했다.  


스타링크 끊기면 우크라 드론 고철신세…“올여름이 고비”

4일(현지시간) 드론 공격으로 파괴된 우크라이나 남부 오데사의 한 건물 앞에 작업자들이 모여 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중단한 가운데, 이날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유럽 방위를 위해 약 8000억 유로(약 1228조원)를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AFP=연합뉴스]

4일(현지시간) 드론 공격으로 파괴된 우크라이나 남부 오데사의 한 건물 앞에 작업자들이 모여 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중단한 가운데, 이날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유럽 방위를 위해 약 8000억 유로(약 1228조원)를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AFP=연합뉴스]

‘평화를 위한 성실한 약속’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선 미 당국의 추가 설명이 없는 상황이다. 다만 이 관계자는 “젤렌스키가 광물협정에 서명하는 것만으로 무기 지원 조건이 충족될지는 불확실하다”고 했다.

킬 세계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2022년 1월 24일~지난해 12월 31일) 중 미국의 비중은 52%에 이른다. 유럽연합(EU)의 경우 회원국들의 지원액을 다 합쳐도 29% 수준에 그쳤다.

일각에선 미국이 중단한 무기 지원의 일정 부분을 유럽이 메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유럽이 미국을 대신해 각종 첨단 무기를 제공하긴 어려울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지상전에서 위력이 큰 에이태큼스(ATACMS) 전술 지대지 미사일, 다연장 로켓인 고속기동포병로켓체계(HIMARS) 등은 미국만 지원할 수 있는 무기다. 패트리엇과 같은 핵심 대공 방어 체계도 미국의 지원 없이는 사실상 가동이 불가능하다.

유럽의 무기 재고 상황도 걸림돌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전쟁이 3년 넘게 장기화되면서 유럽의 무기 생산 능력이 전장에서의 소비를 못 따라가고 있다”며 “당장은 문제가 없더라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치명적인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일론 머스크가 운영하는 인공위성 기반 인터넷 서비스 ‘스타링크’의 우크라이나군 지원 중단을 검토하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만일 스타링크 지원이 중단되면 우크라이나군은 각종 작전에서 치명타를 입게 된다. 우크라이나군의 드론(무인기) 공격 및 포격전에서 적의 위치(좌표)를 확보하는 데 필수이기 때문이다. 특히 스타링크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장 상황을 파악하며 진행하는 드론 작전은 북한군을 몰살시킬 정도로 위력이 대단하다.

이에 유럽도 고심하고 있다. 폴리티코 유럽판은 “유럽은 스타링크를 대신할 통신체계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현재 유럽에서 스타링크 체계를 대체할 수 있는 건 영국계 저궤도 광대역 위성 서비스인 ‘원웹(One Web)’이 유력하다.

하지만 스타링크가 7086기의 위성을 운용하는 것에 반해 원웹은 648기의 위성을 띄운 상황이어서 우크라이나가 군사적으로 활용하기엔 제약이 크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실운용 위성 수 차이가 너무 커서 우크라이나군이 필요로 하는 만큼 촘촘한 서비스를 기대하기가 힘들다”며 “음영 구간이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어서 드론 및 포격 공격이 제한된다”고 말했다.

양 위원은 또 “미국의 군사지원 중단이 길어질 경우 무기도 무기지만 탄약 부족으로 전선에서 밀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결국 종전 협상에서 불리해질 게 명확하다 보니 우크라이나도 양보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데니스 슈미할 우크라이나 총리는 4일 기자회견에서 “미국과 협력을 계속하기로 굳게 결심했다”며 “미국은 중요한 파트너고 우리는 이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미국의 결정을 적극 환영했다. 이날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평화에 대한 최고의 기여가 될 것”이라며 “(우크라이나를) 평화 프로세스로 밀어붙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