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뉴스1]](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03/11/f3cc7758-c180-4c45-b3a1-85c26b5765f1.jpg)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뉴스1]
회사는 ‘미래 신사업의 핵심 연구 인력’이라며 지난 2019년 이들을 야심차게 영입했지만 끝내 품지 못했다. 반복되는 ‘영입 인재 잔혹사(史)’에, 삼성의 조직 문화와 콘트롤타워에 대한 문제 제기가 나온다.
AI 석학, 삼성 떠나 엔비디아와 협력
위 교수는 현재 엔비디아의 ‘협력 교수’(academic partner)로 컴퓨터 구조와 초고밀도 집적회로(VLSI) 분야 연구에 협업하고 있다. 2019~2022년 그와 함께 삼성리서치에서 AI 모델 및 프로세서 연구를 하던 핵심 연구자들은 현재 네이버와 메타에서 AI 반도체를 개발하고 있다.

정근영 디자이너
힘줬던 ‘빅데이터’ 조직, 마케팅 산하 흡수
장 전 부사장은 아마존의 공급망 최적화 기술 담당 머신러닝 전문가로 일하다가 2019년 삼성전자에 합류했다. 2020년말 신설된 빅데이터센터 수장을 맡아 사내 임직원이 손쉽게 데이터를 조회·분석하는 ‘DX 빅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했다. 해당 업무를 지켜봤던 전직 임원은 “사내 흩어진 데이터를 수집·통합하고 보안 체계를 갖추기까지 각 사업부의 협조를 얻어내는 게 어려웠다”라고 말했다.
‘로봇 전문가’인 KIST 의료로봇연구단장 출신 강성철 부사장도 지난해 말 사임했다. 2019년 영입된 강 전 부사장은 직전까지 삼성전자 제조로봇팀장을 맡아왔다. 장·강 전 부사장은 얼마간 삼성 고문직을 유지한다.
삼성전자 측은 “이들 3명의 영입 임원은 모두 5년 이상 재직하며 회사에 기여한 뒤 최근 개인적인 사정 등으로 퇴임했다”고 밝혔다.
삼성 ‘영입 인재’ 왜 오래 못 가나
중앙일보가 최근 5년 내 삼성전자를 떠난 외부 출신 연구개발 임원급 8명과 접촉했다. 이들은 대부분 말을 아끼면서도 ‘믿고 기다려주지 않는 문화’와 ‘개별 사업부를 넘어선 전사적 의사결정의 부재’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외부 영입 인사에 대한 사내 견제가 심한데, 이를 넘어설 권한을 부여하지도 보호하지도 않다 보니 버티다가 포기했다는 거다. 한 전직 임원은 “삼성은 기술을 굉장히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기술 말고 생각해야 하는 게 너무 많은 회사”라고 했다.
2020년대 초반 삼성에 근무했던 또 다른 전직 임원은 “돈 버는 사업부와 선행 연구를 하는 부서 간 갈등은 어느 기술 회사에나 있지만, 삼성의 문제는 최종 의사결정과 추진의 속도”라고 말했다. 외부 인재에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은데 투자·결정 속도는 느리니, ‘여기 더 있어봐야 할 수 있는 일이 없겠다’는 결론에 회사를 떠나게 된다는 거다.
연구개발 직무에도 노동 경직성이 심한 한국 산업계 전반의 문제도 지적된다. 실리콘밸리는 ‘상시 해고’ 가능성과 ‘파격적인 보상’이 공존하는데, 한국은 안정적이지만 능력에 따른 차등 대우를 하면 내부 반발이 심하다는 것. 글로벌 최고급 인재들이 ‘굳이 한국 기업 삼성’에 남을 이유가 부족해지는 배경이다.
문제는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S급 인재’ 영입은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거다. 삼성전자의 AI 지휘관 격인 삼성리서치장은 지난 2023년 승현준 프린스턴대 교수 퇴임 후 새 인물을 찾지 못하고 있다. 승 교수는 2018년 삼성에 ‘최고 과학자’로 영입돼 2020년부터 삼성리서치장을 맡았으나, 2023년 초 ‘글로벌 R&D 협력담당’으로 역할이 축소되고 그해 말 퇴임했다. 현재는 통신기술 전문가인 전경훈 DX부문 최고기술책임자(CTO·사장)가 겸직하고 있다.
‘이종결합’ 시대에 ‘순혈’로만은 안 돼
삼성은 LG반도체 출신 전영현 부회장이 DS부문장을 맡고 퀄컴 출신 최원준 MX개발실장이 최근 사장 승진하는 등 변화 조짐이 있지만, 아직 느리다는 평이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는 “매년 퇴사하는 영입임원보다 훨씬 많은 임원을 새로 영입한다”며 “인재제일이란 경영철학에 따라 영입 인재들이 맘껏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