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車는 밥부터 달라"…20% 비싼 '고급 휘발유' 조용한 인기

지난 9일 서울의 한 주유소. 고급 휘발유 가격이 L당 1998원을 가리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9일 서울의 한 주유소. 고급 휘발유 가격이 L당 1998원을 가리키고 있다. 연합뉴스

직장인 박모(43)씨가 애지중지하는 ‘보물 1호’는 자신 소유의 승용차인 BMW M3다. 고성능차라 찻값만 1억4000만원가량 나간다. 아끼는 만큼 손 세차는 기본이다. 한 달에 1번쯤 ‘고급 휘발유’만 넣는다. 연비가 L당 7.9㎞라 기름값 부담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박씨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는 “해외 생활을 3년쯤 했는데 아끼는 차에 고급 휘발유를 넣는 사람이 많더라”며 “귀한 차라 기름밥부터 다르게 주고 싶다는 생각이 크다”고 말했다.

고급 휘발유가 조용히 인기를 끈다. HD현대오일뱅크는 16일 자사의 초(超)고급 휘발유(옥탄가 102 이상) 제품인 ‘울트라 카젠’의 누적 판매량이 20만 배럴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20만 배럴은 수퍼카 40만대를 주유할 수 있는 양이다. 2021년 국내에선 유일하게 초고급 휘발유를 출시한 지 3년 만이다.

HD현대 관계자는 “국내에서 초고급 휘발유를 넣을 수 있는 주유소가 62곳에 불과한데도 판매 증가세가 가파르다”며 “벤츠·BMW·포르쉐 같은 고급차를 넘어 수퍼카로 꼽히는 람보르기니·페라리 등 차주에게 인기를 끈다”고 설명했다.

고급 휘발유는 일반 휘발유(옥탄가 91~93)와 달리 옥탄가가 94 이상인 제품을 말한다. 옥탄가가 높을수록 ‘노킹(이상 폭발)’ 현상이 줄어든다. 연료를 완전히 연소시킬 수 있는 만큼 우수한 연료로 평가받는다. 엔진 소음이나 기름 찌꺼기가 줄고 연비가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 HD현대의 초고급 휘발유는 고급 휘발유보다 옥탄가를 더 높인 제품이다. 호텔업계로 치면 공식 인증한 5성급에 비해 한 단계 더 높다는 뜻의 ‘6성급’ 휘발유로 볼 수 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고급 휘발유는 시장이 성숙한 선진국과 달리 국내에선 여전히 ‘사치품’으로 여겨진다. 고급 휘발유가 국내 전체 휘발유 판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6%에 불과하다(2023년 기준). 일본(13%), 미국(8.4%) 등 해외 시장과 비교할 때 아직 더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국내 고급 휘발유 시장은 2020년 173만 배럴에서 지난해 392만 배럴로 약 2.3배 규모로 늘었다. 같은 기간 일반 휘발유 시장 규모가 16% 증가한 것과 비교된다. 고급 휘발유를 취급하는 주유소도 같은 기간 전국 1042곳에서 1669개소로 62.4% 늘었다.


고급 휘발유는 일반 휘발유 대비 가격이 15~20% 이상 높은 편이다. 석유공사에 따르면 15일 기준 전국 주유소에서 파는 보통 휘발유 가격은 L당 1687원이다. 반면 고급 휘발유 가격은 L당 1931원이다. 50L 주유할 경우 1만2000원가량 차이가 난다. 멀더라도 싼 주유소를 일부러 찾아가는 고물가 시대에, 어울리는 제품은 아니란 얘기다. 하지만 고급차량 소유자를 공략하는 틈새시장으로서는 성장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평가다. 

전기차 판매가 늘며 정유사마다 ‘미래 먹거리’를 찾는 상황이다. 고급 휘발유가 일반 휘발유보다 탄소 저감 효과가 크다는 점도 ‘친환경’ 추세와 걸맞다. 정유 4사는 카젠(HD현대오일뱅크), 킥스 프라임(GS칼텍스), 솔룩스(SK에너지), 에쓰 가솔린 프리미엄(에쓰오일) 등 고급 휘발유 제품에 공을 들이고 있다. 4곳 중 HD현대가 초고급 휘발유를 내걸고, 국내 최대 규모 모터스포츠 대회인 ‘슈퍼레이스 챔피언십’에 독점 공급하는 등 가장 공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