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있다. 뉴스1
미국 에너지부(DOE)가 자국의 안보와 관련해 한국을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 목록’(SCL)에 추가하자 여야가 책임 공방을 넘어 핵무장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SCL 포함 이유는) 1년 안에 핵무장 할 수 있다느니, 또 핵무장을 해야 한다느니, 이런 허장성세, 현실성 없는 핵무장론 (때문)”이라며 “핵무장을 하려면 미국과의 원자력 협정을 깨야 하고, 국제원자력기구에서 탈퇴해야 하고, 국제 경제 제재를 받아서 북한과 같은 삶을 각오해야 비로소 핵무장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불가능한 이야기다. 선동적 허장성세였을 뿐”이라며 “지금도 국민의힘 주요 지도자급 의원들, 정치인들이 핵무장을 운운하고 있다. 실현 가능하다고 실제로 믿고 하는 소리인지, 제가 묻고 싶다”고 했다.
역대 정부와 마찬가지로 윤석열 정부는 자체 핵무장에 선을 그어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미국 주간지 ‘뉴스위크(Newsweek)’와의 인터뷰에서 “저는 핵 비확산 조약(NPT) 체제를 아주 철저하게 존중·준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밝히는 등 자체 핵무장론을 부인해왔다.
그런데도 야권이 문제삼는 건 2023년 1월 국방부·외교부 업무보고 때의 윤 대통령 발언이다. 당시 윤 대통령은 “북핵 문제가 심각해지면 전술핵 배치나,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현 대통령 비서실장) 등 여권 주요 인사들은 핵무장 필요성을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6월 25일 부산 해군작전기지에서 미 해군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즈벨트함에 승선해 비행 갑판을 시찰하고 있다. 당시 윤 대통령은 “한·미 동맹은 그 어떠한 적도 물리칠 수 있다”고 말하며 여당에서 나오는 핵무장론에 대한 미국 정부의 부정적 반응을 진화하려 했다. 사진 대통령실
외교관 출신 위성락 민주당 의원은 통화에서 “바이든 행정부 때 미국 고위 관료를 만나 ‘나는 윤 대통령이 핵무장론자라고 생각한다’고 했더니 그 사람도 동의한다고 했다. 그게 미국 정부의 인식”이라고 주장했다. 위 의원은 “정부·여당이 핵무장론을 주장하는 나라를 미국이 그대로 놔둔다? 그런 일은 없다”며 “미국이 윤석열 정부를 쭉 봐오다가 핵 비확산을 담당하는 에너지부(DOE)에서 움직인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지정 철회를 촉구하는 국회 결의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 ‘핵잠재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당내 일부 목소리도 꺾이는 분위기다. 지난달 이런 주장을 했던 박선원 의원은 미국의 민감국가 지정 소식이 전해진 뒤 자신의 기존 주장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고, 재고해야 한다”고 후퇴했다.
국민의힘 “친중·반미 노선 이재명 대표가 큰 원인”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뉴스1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도 이날 조계사를 방문해 기자들과 만나 “제가 주장한 건 일본과 같이 농축·재처리 기술을 확보해서 핵무장 직전까지인 핵 잠재력을 확보하는 것”이라며 “그건 허장성세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지키고 국민을 안전하게 하는 것이다. (이 대표가) 뭘 잘못 알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소추안을 일방 처리한 것과 이번 사태가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민감국가로 지정된 지난 1월은 한 총리가 직무 정지된 시기여서 대미 외교력이 약화했다는 주장이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가 퇴임을 앞두고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만나러 왔을 때 ‘한 총리를 절대 탄핵하면 안 된다’는 말을 했다. 골드버그 대사가 이재명 대표를 만나서도 똑같이 말했다고 한다. 미국의 전조 신호가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