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 AP=연합뉴스
미국이 다음 달 2일 세계 각국을 대상으로 부과하기로 한 ‘상호관세’의 윤곽이 드러났다. ‘선(先) 관세부과 후(後) 양자협상’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이는데, 미국이 먼저 한국의 일부 수출품목에 상호관세를 부과한 뒤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이나 새로운 무역협정 체결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마크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16일(현지시간) 미 CBS 방송에서 “공정성과 상호주의에 기반을 둔 새 기준선(baseline)을 설정한 후, 세계 각국과 양자 협상을 진행해 양측 모두에게 적절한 새 무역 방식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호관세에 대한 협상 여지를 열어뒀지만, 그 시기를 관세 부과 이후로 명확히 했다.
이날 루비오 장관은 한국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예외를 두지 않겠다”고 공언한 만큼 미국의 8대 무역 적자국 중 하나인 한국도 부과 대상에 오를 가능성이 커졌다. 박성훈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전례에 비춰볼 때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 폭이 큰 자동차·반도체·철강 등 일부 품목에 상호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상호관세를 부과할 때 기존 관세와 비관세장벽을 모두 고려하기로 했다. 미국 무역적자의 원인이라고 판단되는 정책과 규제 등을 모두 문제 삼겠다는 의미다. 특히 한미 FTA로 사실상 관세가 없는 한국에 대해서는 비관세장벽이 상호관세 부과의 빌미로 작용할 전망이다.
미국이 문제 삼는 한국의 비관세장벽에는 ▶부가가치세와 보조금 ▶구글의 정밀 지도 반출 문제 등 미국 빅테크 기업을 겨냥한 각종 규제 ▶30개월령 이상인 미국산 소고기에 대한 수입 제한 조치와 농산물에 대한 검역제도 ▶스크린쿼터 등이 있다. 아울러 한국이 중국의 ‘우회 수출로’라는 미국의 의심도 빌미가 될 수 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이 최근 미국에 방문했을 때 이에 대한 미국 측의 문제 제기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꼬투리 삼아 관련 품목에 관세를 부과하거나, 이를 통해 무역 불균형이 큰 품목에 대한 관세 부과를 정당화할 수도 있다.

정근영 디자이너
루비오 장관의 발언에 비춰볼 때 미국은 이를 근거로 상호관세를 부과한 뒤 양자 협상에서 한미 FTA 개정을 요구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트럼프 1기 때 이미 한 차례 한미 FTA 폐기를 위협하면서 재협상을 끌어냈고, 부분 개정으로 이어진 전례가 있다.
아예 기존 한미 FTA와는 별개의 새로운 협정 체결을 유도할 수도 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FTA의 경우 재협상 시 한국 국회 인준 절차를 거쳐야 하는 등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을 미국도 알고 있다”며 “일부 품목에 대한 새로운 협정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관세가 이미 낮은 수준인 한미 FTA 틀 안에서 협상하는 편이 한국에 차라리 나을 수 있다”며 “FTA 틀 안에서 협상한다면 이익의 균형을 취해야 하기 때문에 미국이 일방적으로 고율 관세를 부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미국 측과 협의 과정에서 “한미 FTA 체결로 사실상 상호 관세를 매기지 않는 특수한 양국의 상황을 반영해 상호관세를 매기지 말아 달라”고 요청해왔다.
다만 정부는 상호관세 부과가 FTA 재협상 등으로 이어질지 예상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통상당국 관계자는 “실제 미국의 무역 적자국 중 FTA를 맺은 나라는 멕시코·캐나다(이상 USMCA)·한국 정도”라며 “멕시코와 캐나다 등 다른 국가의 협상 과정을 우선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