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졸정원. 바이두

문징명. 바이두
문징명은 물과 문화의 도시 쑤저우에서 태어났다. 부친 문림(文林)은 지방 정부의 관료였다. 문진명은 사교성과 교육열이 남달랐던 부친 덕에 일찍부터 문인의 교양이 몸에 뱄다.
우선 그는 서예 분야에서 일가를 이뤘다. 21세에 대가 이응정(李應禎)으로부터 서예를 배웠다. 문징명은 중년기에 이미 자신만의 글씨를 쓰는 경지에 도달한다.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 등 여러 서체에 능했다. 왕희지, 구양순, 조맹부, 소식, 황정견, 미불 등 선인들의 서체를 빠짐없이 연습한 덕분이었다.

문징명의 작품. 바이두
문징명이 이처럼 일가를 이루고 후세까지 이름을 알렸으나, 평생에 걸쳐 시련도 적지 않았다. 그는 6살에 모친을 잃었다. 가뜩이나 말문이 늦게 트이는 아이라고 염려했는데, 이 충격 때문인지 그는 더 입을 꾹 닫고 벙어리처럼 유년 시절을 보냈다. 11세에 비로소 말문이 트였다.
그의 관료 이력도 꽤 이색적이다. 25세에 참가한 향시에서 첫 낙방한 것을 시작으로 과거 시험에 10차례 연속 불합격했다. 54세가 되어서야 추천을 통해 겨우 관직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수도 베이징에서 근무하며 무종(武宗)실록 편찬 등에 참여했다. 하지만 58세에 사직하고 고향 쑤저우로 귀향했다. 베이징에 머무는 동안, 그는 작품을 탐내는 동료 관원들의 이런저런 압박에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그는 시, 문장, 서예, 문인화 등 작품 활동에 매진하다가, 향년 89세로 세상을 떴다.

문징명의 작품. 바이두
청백리였던 부친은 그에게 아무런 재산도 남기지 않았다. 부친과 사별한 39세부터 그는 주로 서예와 문인화 작품을 판매해 생계를 유지했다.
자성일가. '일가'를 이룬 이야기를 그냥 후일담으로 들어보면 그럭저럭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러나 그 주인공의 하루하루는 결코 녹녹치 않았을 것이다. 창작의 세계에서, 문징명은 매일 수차례 천자문을 쓸 정도로 느슨하지 않은 루틴을 견지하며 테크닉을 연마했다. 80대 후반까지도 그가 아주 작은 소해(小楷) 서체까지도 쓸 수 있었던 이유다.
문징명이 말문도 늦게 트였고 타고난 천재는 아니었으나, 습관과 각오가 일반인과 달랐다. 과묵하던 젊은 시절, 그의 마음 속엔 과거 답습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 힘으로 어떤 성취를 이루겠다는 원대한 포부가 자리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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