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방위비 압박에 자체무장 나선 유럽…'K방산' 기회도 열린다

유럽연합(EU)이 회원국 방위 지원에 8000억 유로(약 1260조원)을 투입한다. 사진은 9일(현지시간)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오른쪽)이 벨기에 브뤼셀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유럽연합(EU)이 회원국 방위 지원에 8000억 유로(약 1260조원)을 투입한다. 사진은 9일(현지시간)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오른쪽)이 벨기에 브뤼셀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위비 압박에 유럽연합(EU)이 독자 안보 노선으로 돌아설 움직임을 보이면서 K방산에도 기회의 문이 열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8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EU 내에서는 미국산 무기의 대안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앞서 16일(현지시간) 폴리티코 유럽판에 따르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현지 매체 인터뷰에서 “미국산 무기에 길든 EU 회원국을 찾아 유럽산 무기를 사도록 설득할 것”이라며 “(미국의) F-35 전투기를 사는 이들에게 (프랑스의) 라팔을 제안하면 유럽의 생산을 늘릴 수 있다”라고 말했다. 자체 무장을 강화하는 동시에 유럽의 방위 자금이 미국으로 흘러가게 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6일 백악관에서 취재진에게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들이 돈을 내지 않으면 나는 그들을 방어하지 않겠다"며 유럽 안보에서 발을 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13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이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회담을 진행하는 모습. AP=연합뉴스

13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이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회담을 진행하는 모습. AP=연합뉴스

유럽은 자체 무장을 강화해 독자 안보 체계를 구축하겠단 계획이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4일 ‘유럽 재무장 계획’을 발표하며 회원국 방위에 8000억 유로(약 1260조)의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유럽의 재무장 자금이 해외로 흘러간다면 그건 좋지 않은 일”이라며 “1500억 유로(약 240조원)는 유럽산 무기 지원에 한정된다”라고 말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지난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의 무기 중 미국산 비율은 64%에 달했다. 한국과 프랑스 무기 비중은 각각 6.5%를 차지했고, 독일(4.7%)·이스라엘(3.9%) 등이 뒤를 이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EU가 유럽산 무기 우선 구매 원칙을 천명했지만, 미국과 유럽의 안보 균열은 국내 방산업계에도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전망이다. 특히 러시아의 안보 위협에 노출된 동유럽을 중심으로 한국 무기에 대한 수요가 높아질 거란 기대가 나온다. 박영욱 명지대 방산안보학과 교수는 “독일·프랑스 등에선 유럽산 무기 사용을 강조하고 있지만, 당장 전력 증강이 시급한 동유럽에선 납기가 빠른 한국산 무기를 찾을 것”이라며 “이미 현지에서 우수성이 입증된 자주포나 유도 무기체계는 주문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방산업계는 폴란드·루마니아 등 동유럽을 중심으로 K-9 자주포, K2 전차 등을 수출해왔다.

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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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의 문이 열렸지만 우려도 있다. 무기 수출을 주도할 정부가 컨트롤타워 기능을 못 하는 상황에서 유럽 방산 기업의 견제가 심화할 수 있다는 것. 지난 1월 스웨덴이 한국의 K2 전차 대신 독일의 레오파르트 전차를 구매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는 지난해 12월 한국을 찾아 경제 협력 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었지만, 비상계엄 여파로 모든 일정이 취소됐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유럽 시장에선 독일 전차의 영향력이 막강한 건 사실”이라면서도 “정상회담이 정상적으로 진행됐다면 기대를 걸어볼 수 있었을 텐데, 시도하기도 전에 무산돼서 아쉬움이 남는다”라고 말했다.


현대로템이 개발한 K2 전차. 현대로템은 2022년 폴란드와 K2전차 1000대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사진 현대로템

현대로템이 개발한 K2 전차. 현대로템은 2022년 폴란드와 K2전차 1000대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사진 현대로템

 
방위사업청장을 지낸 강은호 전북대 방위산업연구소장은 “무기 수출에선 정부 당국 간 협상이 가장 중요한데, 정치적 상황으로 관련 기능이 모두 멈춰버린 상황”이라며 “정치적 불확실성이 조속히 해소돼야 커지는 유럽 방산 시장에서 기회도 잡을 수 있고, 견제 움직임에 맞설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