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 통계를 분석해 보니, 지난해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 한국 배터리 제조 3사의 유럽 시장 점유율은 총 45.1%로, 중국 업체들(합계 49.7%)에 처음으로 역전당했다. 유럽은 미국·중국과 함께 3대 전기차 시장으로 꼽힌다. 미국에서는 한국이, 중국에선 중국이 유리하니 유럽에서 이기는 쪽이 배터리 시장의 주도권을 쥐는 상황인데 유럽 시장을 중국이 장악한 것이다.
K배터리의 유럽 점유율은 2021년 70.9%로 압도적이었지만 2022년 63.6%→2023년 54.9%로 점차 줄었다. 같은 기간 중국 배터리의 점유율은 18.4%→32.1%→41.5%로 급등했다. 기업별로 보면 세계 최대 배터리 업체인 중국 CATL이 지난해 점유율 38.2%로 1위를 차지했다. 2023년 1위였던 LG에너지솔루션은 2위(27.3%)로 밀렸다.
올해 들어 유럽 차들의 값싼 중국 배터리 선호 현상이 두드러지며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 올 1월 한국 배터리 3사의 유럽 점유율은 35.6%로 1년 전(51%) 대비 15.4%포인트 주저앉았다. 반면에 CATL, BYD, 파라시스, CALB 등 중국 배터리사 점유율은 43%에서 56.3%로 뛰었다. 올 1월 유럽 전기차 판매가 전년 동기 대비 20.5% 증가하며 시장이 회복될 조짐을 보였는데, 중국 배터리만 이 혜택을 입었다.
유럽연합(EU)의 탄소배출 규제가 중국 배터리에 호재로 작용한 영향이 크다. 김현수 하나증권 연구원은 “유럽 완성차 업체들의 전기차 부문은 여전히 적자지만, 기업들은 막대한 탄소배출 규제 벌금이 더 큰 부담이라 전기차로 전환할 수밖에 없다”며 “적자 폭을 줄이기 위해 저가의 중국 배터리 구매가 늘어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이 그동안 에너지 밀도가 높은 삼원계(NCM) 배터리에 주력할 동안 중국은 저렴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앞세워 유럽 시장을 공략해 왔다. 중국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바탕으로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을 동시에 갖췄다. 한국 업체들도 최근 LFP 배터리 제조에 뛰어들었지만, 양산은 올 연말 이후에나 가능할 전망이라 올해가 고비다.
한·중 ‘배터리 격전지’ 유럽…중국 기업들 공장 더 늘린다
![유럽 최대 배터리 업체인 스웨덴의 노스볼트는 최근 파산 신청을 했다. 사진은 노스볼트 생산공장의 모습. [AP=연합뉴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03/19/c3e6f629-e341-49cb-9425-f36055d5401e.jpg)
유럽 최대 배터리 업체인 스웨덴의 노스볼트는 최근 파산 신청을 했다. 사진은 노스볼트 생산공장의 모습. [AP=연합뉴스]
최근 유럽 최대 배터리 업체 노스볼트가 스웨덴에서 파산을 신청한 영향으로 한·중 경쟁은 더 심화할 전망이다. EU의 배터리 자급자족 계획이 사실상 무산된 것이라, 한·중 업체들이 그 빈자리를 노리고 있다. 현재 노스볼트의 점유율은 미미하지만, 이 회사에 투자했던 독일 폭스바겐·BMW 등은 대안을 찾아야 한다. 노스볼트의 파산은 배터리 제조업에 신규 진입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사례로, 한·중 양강 구도가 고착화될 가능성이 크다.

정근영 디자이너
국내 배터리 3사는 유럽 현지 생산을 강화해 중국과 더 치열하게 경쟁할 예정이다. 삼성SDI는 유상증자로 조달할 자금 가운데 6413억원을 헝가리 공장 각형 배터리 생산능력 확대, LFP 배터리 라인 투자에 사용할 계획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르노 암페어에 공급하는 LFP 배터리를 폴란드 공장에서 생산하고, SK온은 지난해 헝가리 이반차에 유럽 세 번째 공장을 설립해 역내 생산능력을 기존(17.5GWh) 대비 2.5배 이상 확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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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두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 2차전지PD는 “중국 업체들은 해외 생산 경험이 적은 만큼 한국이 현지 공장 선점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며 “노스볼트 공장 활용 방안 등도 계산기를 두드려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중국 업체들이 유럽 현지 공장에서 수율을 끌어올리는 건 ‘시간문제’라는 우려의 시각도 있다 .
배터리 업계는 경쟁력을 키울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한국판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불리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등 정부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투자 세액공제를 직접 현금 환급이나 제3자 양도 방식으로 보완해 적자가 지속되는 배터리 업체도 혜택을 볼 수 있게 하자는 주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개정안이 소급 적용되면 기술력 향상을 위한 연구개발(R&D) 투자 등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