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핵무장론, 美서도 분출…‘핵 잠재력만 확보’도 대가는 따른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정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미국 에너지부가 한국을 ' 민감국가'로 지정한 것과 관련해 합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정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미국 에너지부가 한국을 ' 민감국가'로 지정한 것과 관련해 합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미 측이 한국을 에너지 안보상 주의를 요하는 민감국가로 지정한 이유는 연구소 보안 문제 때문이라고 확인한 뒤에도 야당을 중심으로 국내 핵무장론이 원인이라는 주장이 반복해서 나오고 있다. 여당은 또 공개적으로 핵 잠재력 보유를 주장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정쟁의 소재로 활용하는 정치권의 행태가 오히려 정부의 민감국가 해제 노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각 주장과 관련한 사실관계를 짚어봤다.   

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는 법안 처리를 위해 소집됐지만, 여야 질의는 민감국가 문제에 집중됐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핵무장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미국이 보면 미국 정책에 반대하는 반미 인사들”이라며 “또 윤석열 대통령이 자체 핵무장을 하려는 듯한 발언 등이 다 모아져서 이번에 민감국가로 지정됐다”고 주장했다.

이재정 민주당 의원은 전날 “윤 대통령의 (핵 보유)발언 6개월 뒤인 2023년 6월부터 미국은 한국의 자체 핵무장 동향을 축적해 나름의 입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며 “이 모든 것이 상황 악화에 일조했다는 게 미 상원을 통해서 확인한 정보”라고 주장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3회 국회(임시회) 법제사법위원회 제2차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3회 국회(임시회) 법제사법위원회 제2차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스1

국내에서 핵무장 관련 논의가 다시 활발해진 건 지난해 6월 북·러가 군사동맹에 준하는 조약을 체결한 게 계기가 됐다. 불법적 핵개발국인 북한이 합법적 핵보유국인 러시아의 핵우산까지 쓸 수 있다는 우려가 ‘공포의 균형’에 대한 지지를 키웠다.  


다만 이는 한국에서만 포착된 기류가 아니라는 게 이전과는 다른 점이었다. 미 의회 상원 군사위원회 공화당 간사인 로저 위커 의원(미시시피)이 한국 등과의 핵 공유 협정 체결 등을 논의하자고 공개 촉구하는 등 워싱턴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실제 조셉 윤 주한 미 대사대리는 지난 11일 “다수의 의견은 아니지만, 북한이 핵 포기를 완전히 거부한다면 한국도 준비를 해야 되지 않느냐는 이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게 워싱턴의 기류”(7차 세종열린포럼)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본인도 과거 “한국과 일본이 핵을 갖고 스스로 방어한다면 상황이 더 나아질 것”(2016년 4월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 중)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국방부 정책차관이 된 엘브리지 콜비는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까지 고려한 모든 카드를 테이블 위에 올려야 한다”(지난해 5월 중앙일보 인터뷰)고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조셉 윤 주한미국대사 대리가 18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암참 초청 특별 간담회에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조셉 윤 주한미국대사 대리가 18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암참 초청 특별 간담회에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이처럼 한·미 양쪽에서 한국의 자체적인 핵 능력 강화 요구가 나오는 건 결국 러시아의 지원까지 등에 업은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가 근본적 원인이다. 이런 본질을 지적하지 않은 채 민감국가 문제로 “허장성세, 현실성 없는 핵무장론”(이재명 민주당 대표, 17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이라며 이를 비난의 소재로만 삼는 건 반쪽짜리 논리로 비칠 여지가 있다.  

미 측이 민감국가 지정은 정책상 문제가 아닌 연구소 보안 문제라고 확인한 뒤 여권은 면죄부라도 받은 듯 또 핵 개발을 언급하고 있다.  

조배숙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법사위 회의에서 “트럼프가 사실상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메시지를 던지는 상황에서 핵을 개발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추는 것은 안보를 생각하면 이럴 수 있다”고 말했다. “당장 핵을 개발하겠다는 게 아니지 않느냐. 정치권에서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이야기”라면서다.  

친한동훈계 인사인 신지호 전 국민의힘 전략기획부총장도 전날 라디오에 출연해 야권의 비판에 대해 “(한동훈 전 대표의 주장은)핵 잠재력 보유이고, 이를 위해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이 필수라는 것”이라며 “그런데 그걸 가지고 이렇게 이야기하면(비판하면) 좀 이상하다”고 말했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가운데)이 지난해 7월 1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안보의 새로운 비전 핵무장 3원칙 세미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가운데)이 지난해 7월 1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안보의 새로운 비전 핵무장 3원칙 세미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와 관련, 북·러 조약 체결 직후인 지난해 7월 전당대회 당시 핵무장은 선명성 경쟁의 소재로 소비됐다. 당시 “이제는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나경원 의원) “핵무장의 잠재적 역량을 갖추자”(한동훈 전 대표) 등 다양한 의견이 표출됐다. 

최근에는 잠재적 대권 주자로 분류되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우리도 자체 핵무장을 하고, 북한이 비핵화를 하면 자체 핵무장했던 것을 폐지하는”(지난 11일 국회 토론회) 협상전략을 언급했다.  

하지만 핵확산금지조약(NPT)상 5개국(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만 합법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현 비확산 체제에서 한국의 무단 핵 무장은 불법이다. 이재명 대표 말대로 “국제 경제 제재를 받아서 북한과 같은 삶을 각오해야” 한다.  

핵 잠재력 확보는 기술적으로 가능할 수 있다. 일본은 미국과의 원자력 협정을 통해 우라늄을 무기급인 20% 수준으로 농축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앞서 한국은 지난 2014년 한·미 원자력협정을 개정하면서 기존에 적용되던 ‘골드 스탠더드’(농축·재처리 원천 금지)를 42년 만에 깨고, 미국산 우라늄을 저농축할 수 있도록 협정에 명기했다. 양국이 합의하기만 하면 기존의 규제를 느슨하게 조정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핵무장과 한·미 동맹, 둘 다 갖는 건 불가능. [일러스트=김지윤]

핵무장과 한·미 동맹, 둘 다 갖는 건 불가능. [일러스트=김지윤]

다만 이는 이런 기술을 보유해도 핵을 무기화하지 않는다는 신뢰가 전제다. 연구소 보안 문제를 이유로 들었지만, 민감국가 지정은 그런 신뢰가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방증일 수 있다. 핵 잠재력 확보가 핵무장으로 가는 사실상의 마지막 핵심 단계라는 점까지 고려하면 ‘핵무장이 아닌 핵 잠재력 보유는 괜찮다’는 식의 논리는 본말전도일 수 있는 셈이다.  

또 합법적 핵 능력 강화에도 대가는 따른다는 게 다수의 견해다. 미국은 한국의 자체 핵 방어 수준이 높아지면 전략자산 등을 동원하는 확장억제를 지금처럼 제공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주한미군의 역할이나 규모 조정도 뒤따를 수 있다.  

한국 핵 무장을 거론한 콜비 국방 차관도 전제는 “대중국 핵균형을 위해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주한미군의 역할을 대북 방어에서 대중국 억제에 초점을 맞추는 쪽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무엇보다 이런 국내정치적 논의가 향후 민감국가 지정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협상력에 지장을 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조태열 장관도 이날 법사위에서 “외교에서는 국내 정치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외교부가 열심히 하겠다. 정치권에서도 열심히 해 주셨으면 좋겠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