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끄는 공무원 전국에 100여명 뿐, 진화 골든타임 놓친다

경남 산청군 지역 산불 발생 나흘째인 24일 오후 산불 진화에 나선 산림청 헬기가 시커멓게 그을려 있다. [연합뉴스]

경남 산청군 지역 산불 발생 나흘째인 24일 오후 산불 진화에 나선 산림청 헬기가 시커멓게 그을려 있다. [연합뉴스]

전국에서 발생한 5개의 중·대형 산불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24일 기준 13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이 중 9명이 산불진화대원이다. 특히 4명의 사망자 중 3명이 산불진화대원이었다.  

이들의 피해가 컸던 건 산에서 불이 나면 가장 먼저 달려가는 이들이 산불진화대원이라서다. 통상 화재가 발생하면 소방관이 불을 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산에서 불이 나면 다르다. 소방관은 주로 민가 주변으로 산불 확산을 막기 위해 방어선을 구축한다. 물론 산불 진압 과정에서 사람이 고립되거나 다치면 119구조대가 출동한다.

산불진화대원 9명 사상

21일 오후 산림청 항공본부 공중진화대원들이 경남 산청군 시천면에서 발생한 산불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밤샘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산림청]

21일 오후 산림청 항공본부 공중진화대원들이 경남 산청군 시천면에서 발생한 산불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밤샘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산림청]

전국 1만여 산불진화대원의 절대다수는 지방자치단체(지자체)가 선발한다. 산림청도 진화대원을 선발하지만, 규모는 5개 지방산림청별로 각각 수백명 수준에 그친다.  

이들은 산불이 나면 가장 먼저 방염복을 챙겨 입고 조별로 전국 약 1000여대의 산불진화차를 타고 화재 지점으로 향한다. 산불진화차는 현대차 포터, 기아 봉고 등 1t 트럭이나 KG모빌리티의 렉스턴스포츠 등 픽업트럭을 개조한 경우가 많다. 여기엔 일반적으로 800~1000L 물탱크와 호스릴, 갈퀴 등 소화 장비와 발전기 등 펌프 가동 설비가 실려 있다.  


산불진화대원은 이 차량에 호스를 연결한 뒤 발화 지점에 관창을 들이댄다. 산림청 관계자는 “산불진화차는 물탱크 용량은 적지만 작고 기동성·오프로드 주행 성능이 뛰어나 산악 지형을 오르내리며 초기 산불을 진화할 때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전남 장성 옐로우시티 스타디움에서 산불 전문진화대 지원자들이 등짐펌프를 매고 경보로 트랙 1바퀴 돌기에 앞서 몸을 풀고 있다. [연합뉴스]

전남 장성 옐로우시티 스타디움에서 산불 전문진화대 지원자들이 등짐펌프를 매고 경보로 트랙 1바퀴 돌기에 앞서 몸을 풀고 있다. [연합뉴스]

산불진화대원은 공무원이 아니라 산림청이 ‘공공일자리 사업’의 일환으로 모집한 일용직 근로자다. 지역마다 다르지만, 농한기에 주민들이 용돈 벌이를 겸해서 산불진화대원에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자리 지원사업인 만큼 저소득 고령층을 선발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의 평균 연령이 60대인 배경이다.

고령이다 보니 산불 현장에서 역할도 제한적이다. 이영주 경일대 소방방재학부 교수는 “정식 진화대가 도착하기 전까지 산불진화대는 잔불 진화, 방화벽 구축 등 보조적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선발 기준도 천차만별이다. 일부 지역에선 면접만으로 선발하고, 일부 지역에선 체력 시험을 본다. 지난 1월 전남 장성군에선 산불진화대원에 응시한 70대 남성이 체력검정 시험을 치르다가 쓰려져 사망하기도 했다.

김성준 건국대 사회안전공학과 교수는 “산불진화대원 고령화 문제는 농촌·산촌 고령화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며 “일손 부족으로 도입 중인 외국인 인력 제도를 접목해, 외국인 근로자를 산불진화대원으로 투입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전남 장성 옐로우시티 스타디움에서 산불 전문진화대 지원자들이 등짐펌프를 매고 경보로 트랙 1바퀴를 돌고 있다. [연합뉴스]

전남 장성 옐로우시티 스타디움에서 산불 전문진화대 지원자들이 등짐펌프를 매고 경보로 트랙 1바퀴를 돌고 있다. [연합뉴스]

“골든타임 출동 사실상 어려워”

전남 장성 옐로우시티 스타디움에서 산불 전문진화대 지원자들이 등짐펌프를 매고 경보로 트랙 1바퀴를 돌고 있다. [연합뉴스]

전남 장성 옐로우시티 스타디움에서 산불 전문진화대 지원자들이 등짐펌프를 매고 경보로 트랙 1바퀴를 돌고 있다. [연합뉴스]

산불진화대가 초기 대응을 하는 동안 특수진화대가 도착한다. 특수진화대도 공무원은 아니지만, 정년이 보장되는 산림청 소속 공무직 근로자다. 달리기·팔굽혀펴기·모래나르기 등 체력 시험을 격년으로 진행하고 정기적으로 훈련도 받기 때문에 아무래도 산불 진화에 상대적으로 전문성을 보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장비도 더 전문적이다. 이들이 탑승하는 고성능 산불 진화 차량은 물탱크 용량(3500L)도 크고, 차량에 연결하는 호스 지름도 크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보다 많은 물을 방사한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460여명이 전부다. 근무지도 전국 5개 지방산림청과 27개 국유림관리소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국유림이 아닌 지방림에서 불나면 출동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이들이 보유한 고성능 산불 진화 차량도 전국적으로 수십 대 수준에 불과하다.

소방관처럼 정식 5~9급 공무원 신분인 산불 진화 인력은 공중진화대다. 전문성이나 장비 수준에서 가장 뛰어나다. 헬기를 타고 공중에서 발화지점으로 바로 하강해 등에 짊어진 등짐펌프로 화재를 진압한다. 산림청 소속으로 매년 100시간 이상 교육을 이수한다. 

하지만 역시 100여명에 불과하다는 점이 한계다. 전국 12개 산림항공관리소에 근무하는데, 광역자치단체별로 따지면 각각 6~15명 수준이다. 이번처럼 전국에 동시다발적으로 불이 나면 사각지대 발생이 불가피하다. 산림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출동 소요 시간은 평균 3시간이다. 

산림청 산림항공본부 공중진화대원들이 헬기 급속로프로 투입되고 있다. [사진 산림청]

산림청 산림항공본부 공중진화대원들이 헬기 급속로프로 투입되고 있다. [사진 산림청]

이번 화재로 산불 진압 시스템의 취약점이 드러나자 체계를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화재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소방 등과 조직·장비를 융합하는 방안이다. 산림청에 비해 소방청이 전국적으로 조직을 구축하고 있고, 화재 진화에 특화한 장비도 많아서다. 경북소방본부 등 일부 소방 조직은 119 산불특수대응단처럼 산불에 대응하는 조직도 운영한다.

이상대 코리아재난안전연구소 박사는 “화재는 ‘골든타임’에 진압이 중요한데 산발적으로 근무하는 전문 인력이 전국 각지에서 발생하는 화재에 대응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측면도 있다”이라며 “합참이 육·해·공군을 통제하듯, 산불이 나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유관기관의 모든 유관 인력·자원을 통합·지휘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창우 숭실대 소방방재안전학과 교수는 “과거 소방방재청 출범 당시 정부 조직을 재편하면서 산불 대응 기능을 통합하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무산했다”며 “현실적 장벽이 크지만, 재난 방지 관점에서 고민해볼 만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