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46년 동안 통치한 김일성 주석이 1994년 7월 숨지자 스탠리 로스 당시 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선임보좌관은 반기문 당시 주미 대사관 공사에게 "경제난이 계속돼 (김정일은) 일정 기간 이후 많은 도전을 맞게 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28일 외교부가 공개한 '1994년 외교문서'에는 후계자로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 미국이 혹평을 했던 정황이 담겼다.

1994년 북한 김일성이 숨진 뒤 당시 주미대사가 외교부 장관에게 보낸 전문. 반기문 당시 주미대사관 공사가 에즈라 보겔 미 국가정보위원회 부위원장을 만난 뒤 보고한 언급 내용. 외교부
로스 당시 선임보좌관은 또 "김정일이 핵 문제와 관련해 강경파라는 가정이 사실"이라며 북한이 협상 테이블로 복귀하지 않을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북한이 핵 개발 계획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기문 당시 공사가 만났던 에즈라 보겔 미 국가정보위원회 부위원장도 "김정일이 정권을 완전 장악하게 되는 경우에도 얼마나 장기간 지탱할 수 있을지는 계속 주의깊게 지켜봐야 한다"며 "수년 내에 김정일 반대파가 김정일을 제거하는 시나리오도 있다"고 김정일의 장악력에 의문을 표했다고 한다.
미국 부통령을 지냈던 월터 먼데일 주일본 미국 대사도 김정일에 대해 "약간 멍청하고(GOOFY) 어린애 같아(CHILDISH) 지도자로는 부족한 것 같다"고 평하기도 했다.

1994년 북한 김일성이 숨진 뒤 당시 주일대사가 외교부 장관에게 보낸 전문. 몬테일 당시 주일 미국 대사와의 면담 내용이 담겨 있다. 외교부
김정일 체제의 정책 방향에 대해선 미국 정부 내에서도 전망이 엇갈렸던 정황도 드러났다. 한승수 당시 주미 대사의 보고를 보면 미 국무부는 "김정일이 김일성 정책의 계속성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했던 반면 중앙정보국(CIA)은 김정일의 '과격성'과 '불가측성'을 근거로 정책이 변동될 가능성도 짚었다.
러시아 측도 김정일 체제를 회의적으로 바라봤다. 당시 러시아는 개혁·개방 흐름 속에 북한과는 거리를 두는 분위기였다. 평양 근무 경험이 있는 한 러시아 학자는 "김정일 체제가 6개월 정도 지나면 군부가 본격적으로 정치에 개입할 것"이라며 "길어야 김정일은 96년 말 정도까지만 집권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정일의 건강 이상을 의심하는 반응도 있었다. 당시 주카이로 한국 총영사의 보고에 따르면 이집트 당국자가 "(김정일의) 업무 수행 능력이 의심된다"며 "그의 오른쪽 옆머리에 수술을 받은 긴 자국이 있음을 발견했다"고 언급했다.
또 당시 북한이 공식적으로 밝힌 김일성 사망 원인은 '심근경색'과 '심장 쇼크'였지만 중국 일부 당국자들은 "핵 문제 및 남북 정상회담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과로로 심장에 무리가 갔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했다.
한편 김일성이 생전에 덩샤오핑(鄧小平)에게 아들 김정일과 관련한 당부를 했던 것으로도 나타났다. 당시 북한 문제를 담당했던 한 중국 외교부 인사는 "김일성은 과거 중국 방문 시 덩샤오핑에게 아들 김정일 문제를 부탁(托孤·탁고)해 두었기 때문에, 덩샤오핑이 생존해 있는 한 중국 정부는 그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중국은 김일성 사망 직후 빠르게 김정일 체제에 지지를 표했다.
김일성이 갑자기 숨지자 각국 북한 대사관이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혼란을 겪었던 정황도 담겼다. 1994년 7월 8일 새벽 2시 김일성이 사망하고 북한 매체가 이튿날 발표했는데, 일부 공관은 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7월 9일 베트남 현지 매체가 김일성 사망 소식을 보도하자 북한 대사관은 "터무니없는 날조된 기사"라며 항의했다. 이에 베트남 측이 북한 조선중앙통신의 김일성 사망 보도를 보여주자 항의를 멈췄다. 주인도네시아 북한 대사관도 미 CNN의 보도에 대해 "허위"라고 우기다가 북한의 공식 발표를 뒤늦게 깨달았다고 한다.
한편 한국이 과거 1980~90년대 민감국가 명단에 올랐을 당시 정부는 이를 "한·미 협력에 장애 요인"으로 판단했다는 점도 드러났다. 미국은 1994년 7월 한국을 민감국가에서 해제했고 최근 다시 한국을 민감국가에 지정해 논란이 일고 있다. 다만 30년 전과 달리 최근 정부는 "민감국가 지정으로 인해 한·미 과학기술 협력에는 차질이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1993년 12월 제1차 한·미 과학기술협력 공동위원회 관련 외교문서를 보면 정부는 "한국을 북한과 같이 민감국가로 분류하는 것은 부당하며 앞으로의 양국 간 과학기술 협력에 장애 요인으로 간주된다"는 대응 논리로 미국을 설득하기로 했다. 또 정부는 "한국이 어떤 이유로 민감국가로 지정되었는지가 분명하지 않다"고 기록했다. 당시에도 미국은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았던 것으로 풀이된다.
5년 전 비공개 '임수경 문건'도 공개…우회 방북 확인
이를 통해 임 전 의원이 서울→도쿄→서베를린→동베를린→모스크바→평양 등 기존에 알려졌던 '우회 루트'를 통해 방북한 사실도 정부 문서로 확인됐다. 임 전 의원이 판문점 경로로 귀국하겠다고 하자, 유엔사(UNC)가 정전협정 조항을 근거로 들며 일방적인 판문점 통과는 도발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을 밝힌 부분도 들어 있었다.
외교부는 관련 문서 공개 시점이던 2020년 개인 정보 문제를 들어 비공개 했다. 이후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이 외교부 장관을 상대로 행정 소송을 냈고 법원은 같은 해 전체 문서 30건 가운데 개인정보 관련 내용 등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공개하라는 조정 권고 결정을 내렸다. 이번 문서 공개는 이 결정에 따른 것이다.
외교부는 생산된 지 30년이 지난 외교문서는 매해 심사를 거쳐 비밀 해제 여부를 결정한다. 올해는 1994년도 문서를 중심으로 2506권(약 38만여 쪽)의 외교문서를 일반에 공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