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경민 기자
빌라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서민층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해온 빌라의 임대 수요와 공급이 모두 급감했다. 24일 부동산 정보 플랫폼 ‘다방’이 국토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바탕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의 아파트 매매량은 5171건으로 1년 전보다 91% 증가했다. 같은 기간 연립ㆍ다세대 매매는 1858건으로 2% 늘어나는 데 그쳤다. 지난해 초는 부동산 경기 침체로 부동산 ‘거래 절벽’ 현상이 극심하던 때였다.
임대 사업 유인도 줄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연립주택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금)은 69.8%로 국민은행이 2022년 11월 표본을 확대 개편한 이후 가장 낮았다. 집주인이 부족한 투자금으로 빌라를 보유하는 게 갈수록 힘들어진다는 의미다.
이모(70)씨가 38년째 보유 중인 서울 마포구 소재 빌라에는 6년 전 보증금 1억2000만원에 입주한 세입자가 계속 살고 있다. 매매 시세의 30%에 불과하지만, 새로운 세입자를 받으려면 낡은 집을 싹 수리해야 한다. 이씨는 “젊은 사람들은 빌라 포비아에 빌라 투자에 관심이 없다”며 “주변 젊은 빌라 소유주를 보면 부모에게 증여받은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박경민 기자
1인 가구 정모(35)씨는 지난해 7억4500만원에 소형 아파트를 샀다. 거래 대금의 75%를 대출로 충당했다. 정씨는 “빌라는 애초에 매수할 생각도 없었다”며 “혼자 다 갚기에는 조금 벅찬 대출 금액이지만, 아파트는 살다 보면 오를 거라는 생각으로 매수했다”고 말했다.
청년층의 아파트 선호는 뚜렷하지만, 진입 문턱은 더 높아졌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PIR(가격 대비 소득)은 2014년 4분기 8배에서 지난해 4분기 11.3배로 늘었다. 중위소득으로 중위가격 아파트를 사는 데 11년 넘게 걸린다는 의미다. 다른 지역도 비슷하다. 소득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아파트값이 오르는 속도가 더 빠르다.
빌라에 살고 싶은 사람도, 사고 싶은 사람도 없어지니 신축 공급도 자취를 감추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연립·다세대·다가구주택 인허가 건수는 2022년 7만2368가구에서 2024년 1만9949가구로 72.4% 줄었다. 수도권만 보면 지난해 인허가 물량은 1만1139가구로, 2년 전의 4분의 1 수준이다.

박경민 기자
‘빌라 소멸’의 피해는 청년과 서민층의 몫이다. 전·월세 가격이 오르고, 주거비 부담이 늘어난다. 아파트 가격이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 중저가 주택인 빌라 공급이 사라지면 주거 불안정성도 커진다. 신규 투자가 끊긴 주택 단지는 노후화가 가속돼 서민층 주거 환경이 열악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정책실장은 "빌라는 인허가·착공과 실제 공급까지 시간차가 6개월~1년뿐이라 지난해 인허가 감소는 당장 올해, 내년 공급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빌라 공급 감소는 서울의 저소득층 청년가구와 고령가구의 주거 불안정을 불러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빌라에 머물던 수요가 이미 초과 수요인 아파트로 옮겨붙으면 가격 상승 등 주거 양극화가 더 심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임대료 인상률 상한, 계약갱신 청구권 등 임대차법을 개선해 집주인들이 수익을 낼 수 있게 해줘야 빌라 공급도 정상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