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의 한 대학가 인근 게시판에 원룸 세입자를 구하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부동산 플랫폼 다방이 3월 신학기 개강을 앞두고 서울 주요 10개 대학 인근의 1월 원룸 시세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화여대 인근이 월세(74만 1000원)와 관리비(10만 5000원)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뉴스1
대학생 아들을 둔 자영업자 박모씨는 아들이 거주하는 원룸의 월세와 관리비로 월 90만원가량을 낸다. 용돈과 책값 등을 더하면 200만원이 훌쩍 넘는다. 올해 들어 학기당 500만원을 넘어선 등록금도 큰 부담이다. 박씨는 “아들이 요즘 물가가 너무 올랐다며 용돈을 올려달라는데, ‘아껴 쓰라’고 타이를 때마다 미안하다”고 말했다.
고금리·고물가의 장기화로 등록금·월세·밥값(생활비) 등 오르지 않는 게 없는 ‘캠퍼스플레이션(대학가 인플레이션을 의미)’이 대학가를 덮쳤다. 특히 살던 곳을 떠나 다른 지역 대학으로 간 학생들은 ▶쉬지 않고 오르는 월세에 ▶16년 만에 일제히 인상한 등록금 ▶1만원이 훌쩍 넘는 한 끼 밥값 등으로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부모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 아르바이트에 나서고 생활비를 최대한 아껴보려고 노력하지만, 눈앞엔 ‘취업난’이란 장벽이 가로막고 있다.

한국사립대학총연합회 제공.
대학들이 연이어 등록금 인상에 나서면서 ‘캠퍼스플레이션’을 가중하고 있다. 등록금 상한제가 도입되기 직전인 2009년(708만원)부터 지난해(763만원)까지 사립대 등록금은 7.8% 올랐다. 이 기간 소비자물가지수가 36.1%(83.9→114.2, 2020년 100) 올랐으니 등록금 실질 부담은 오히려 줄고 있었다.
하지만 올해 전국 4년제 대학 190개교 중 131개교(68.9%)가 등록금 인상을 결정했다(2월 21일 기준). 특히 5.00%~5.49% 수준의 인상률을 정한 곳이 54개교(41.0%)나 됐다. 지난해 사립대 1년 평균 등록금이 763만원인데, 올해 5% 수준으로 오른 것을 고려하면 연간 40만원가량의 부담이 늘었다. 국가장학금(Ⅱ유형)은 등록금을 동결하거나 인하하는 대학에만 지급하게 돼 있기 때문에, 이 경우 등록금 부담이 더 크게 늘어날 수 있다.

신재민 기자
대학가 인근 월세도 꾸준히 오르고 있다. 부동산 정보플랫폼 다방에 따르면 지난 1월 전용면적 33㎡ 이하 원룸의 평균 월세(보증금 1000만원 기준)는 1년 전(57만4000원)보다 6.1% 오른 60만9000원으로 집계됐다. 평균 관리비도 1년 전(7만2000원)보다 8.1% 올라 7만8000원을 기록했다. 1년 기준으로 월세는 42만원, 관리비는 7만2000원을 더 부담해야 한다. 이 때문에 대학가에선 월셋집보다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한 하숙집이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식비·교통비·통신비·교육비 등 기본적인 생활비 또한 만만치 않다. 아르바이트포털 알바몬이 남녀 대학생 49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생활비(용돈)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대학생의 한 달 용돈은 평균 69만원으로 집계됐다. 자취하는 대학생은 평균 73만원을 사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올해 1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2.2%, 생활물가지수가 2.5% 상승했기 때문에 대학생들 주머니 사정은 더 나빠질 수밖에 없다.
대학 졸업반인 강모씨는 요즘 후배들의 “밥 사달라”는 얘기가 무섭게 들린다고 했다. 학교 앞 식당 점심 메뉴 1인분에 대부분 1만원이 넘다 보니 한 끼 식사 때마다 5~6만원은 써야 해서다. 월세(50만원)를 제외하고 부모님께 받는 한 달 용돈이 100만원 정도인데, 2~3년 전과 비교해 월 30~40만원은 더 받는다. 강씨는 “월세, 등록금이 올라 부모님 부담이 커졌는데, 취업난을 체감하다 보니 부모님께 죄인이 된 기분이 든다”고 밝혔다.

김영옥 기자
‘캠퍼스플레이션’ 때문에 투입 비용은 늘었는데, 만족할만한 결과(취업)를 내기는 더 어려워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비경제활동인구 중 ‘쉬었음’으로 답한 청년층(15~29세)은 50만4000명으로 집계됐다. 1년 전 같은 기간(44만3000명)보다 13.8% 늘었다. 청년 고용률은 44.3%로 1년 전보다 1.7%포인트 하락했다. 2022년 11월부터 28개월 연속 ‘마이너스’다. 경기 침체에 기업도 신규 일자리를 줄이고 있고, 경력 채용 선호 현상도 뚜렷해지면서 청년층 취업률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학 등록금이 15년간 사실상 동결되면서 이번 인상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등록금 인상과 월세 등 대학가 물가 상승으로 인한 타격은 저소득층 학생들에 집중될 텐데, 이들에 대한 장학금과 생활비 등의 지원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