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1일 서귀포시 서귀진지에서 열린 남극노인성제 장면. 남극노인성제는 남반구에 뜨는 별 남극노인성에 드리는 제례다. 우리나라에서는 한라산 남쪽, 서귀포 일대에서만 남극노인성이 보인다.
서귀포 사람이 봄은 맞이하는 방법은 육지에서 건너온 관광객과 사뭇 다르다. 몸국 끓이고 빙떡 부쳐 나눠 먹고, 남쪽 하늘의 별을 향해 제를 올린다. 꽃놀이도 나간다. 백서향꽃을 ‘보러’가 아니라 ‘맡으러’ 간다. 백서향은 꽃이 피면 향이 만 리가 간다는 꽃나무다. 지난 21∼23일 서귀포 일대에서 ‘서귀포 봄맞이 축제’가 열렸다. 작고 소박한 마을 잔치를 굳이 찾아간 건 올해로 14년째인 행사를 오롯이 서귀포 주민이 꾸려왔다는 얘기를 들어서다.
역시 축제는 여느 지역축제와 달랐다. 관광객 불러 장사 좀 해보겠다는 상술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모양 꾸며 얼굴 내미는 행사가 아니어서, 동네 사람이 서로 어울려 웃고 떠드는 잔치여서 좋았다. 축제는 본디 만드는 자가 즐기는 행사다.

서귀포 봄맞이 축제 장면. 서귀포 주민이 화전을 부쳐 나눠 먹고 있다.
남극노인성군 신위
남극노인성은 남반구의 별이다. 하늘의 별은 북반구와 남반구에서 보이는 게 다르다. 저마다 다른 하늘을 이고 사는 셈인데, 북반구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남반구 별이 남극노인성, 즉 ‘카노푸스(Canopus)’다. 우리나라에서는 한라산 남쪽, 다시 말해 서귀포 일대에서만 볼 수 있다. 카노푸스는 시리우스 다음으로 밝은 별이라고 한다.
남극노인성이 제주도 하늘에서 하고한 날 보이는 건 아니다. 추분에서 춘분 사이에만 관찰이 가능하다. 하여 서귀포에서 남극노인성이 보인다는 건 날이 추워진다는 뜻이고, 남극노인성이 안 보인다는 건 따뜻한 계절이 시작한다는 의미다. 오래전부터 서귀포에서는 추분과 춘분 즈음에 남극노인성에 제를 올렸다.

서귀포 봄맞이 축제에서 부친 화전과 전기떡에 들어가는 월동무.

서귀포 봄맞이 축제에서 부친 빙떡. 제주에서는 '전기떡'이라고 한다. 전기떡을 받친 접시가 뻥튀기다. 플라스틱 접시를 쓰지 않으려고 생각해낸 아이디어다.
일제 강점기 중단됐던 남극노인성제는 서귀포 봄맞이 축제를 시작하고 5년 뒤 재개됐다. 올해로 9번째 제를 올렸다. 제사상에는 옥돔과 돼지고기를 올리고, 술과 함께 갖은 나물도 올린다. 여성 차별이 심했던 제주도이지만, 올해로 3년째 여성도 제관으로 참여한다.
백서향 향에 취하다

백서향꽃은 향기가 만 리 간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활짝 핀 백서향꽃에서 향기가 진동했다.
천막 아래에서는 빙떡과 화전을 부쳐 나눠 먹는다. 빙떡에도 ‘전기떡’이란 다른 이름이 있다. 그래도 메밀을 반죽한 피에 채 썬 무를 넣은 건 똑같다. 서귀포에서는 이맘때 전기떡을 부쳐 먹었다고 한다. 전기떡에 넣는 무를 겨울에 심은 월동무를 써서다. 월동무 맛이 제일 올랐을 때가 요즘이다. 제주도에서도 진달래꽃으로 전을 부친다. 음력 3월 3일 서귀포시 성읍 마을에서 화전놀이를 했다는 기록이 내려온다.

서귀포 봄맞이 축제에서 3000원에 판 몰방국 밥상. 몰망은 모자반의 제주 방언이다.
이제 서귀포 봄맞이 축제의 하이라이트 행사를 소개할 차례다. 이 정겨운 마을 잔치는 꽃나무 묘목을 나눠주는 이벤트로 마무리된다. 23일에는 서복공원에서, 24일에는 가시리 농장에서 모두 2500여 주의 꽃나무 묘목을 공짜로 준다. 1주에 100만원이 넘는 비싼 묘목도 많단다. 팔도의 숱한 축제 현장을 가봤지만, 이렇게 막무가내로 퍼주는 축제는 처음 봤다.

서귀포문화사업회 이석창 회장이 가시리 농장에서 활짝 핀 수선화를 설명하고 있다.
서귀포 봄맞이 축제는 서귀포문화사업회 주최로 2011년 처음 열렸다. 서귀포문화사업회는 서귀포에 거주하는 각계 인사 15명이 모인 단체로, 가시리 농장을 운영하는 이석창(69) 회장이 이끌고 있다. 이 대표의 강고한 고집 또는 후한 인심으로 십수 년째 묘목 나눔 행사가 이어져 왔다. 이 대표는 왜 애지중지 키운 꽃나무를 나눠줄까.
꽃나무를 나누는 건 봄을 나누는 것과 같아서입니다. 서귀포 사람들과 서귀포의 봄을 함께 맞고 싶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