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미국 공군의 6세대 전투기 F-47 개발을 발표하고 있다. AP=연합
제국의 역습(The Empire Strikes Back)이었다.
지난 21일(이하 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Oval Office)에서 보잉이 미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는 잔뜩 신난 얼굴로 “새 전투기들은 전례 없는 힘을 가질 것”이라며 “미국의 적들은 결코 새 전투기들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보잉의 차세대 전투기는 F-47로 불린다며 “군이 이름을 지었다. 47은 정말 아름다운 숫자”라고 덧붙였다.
이날 자리를 함께한 데이비드 올빈 미 공군참모총장은 X에서 “47은 제2차 세계대전 때 하늘을 지배했던 P-47 (선더볼트)를 기리며, 공군의 창설이 1947년이었고, 전 세계 첫 6세대 전투기 개발을 지지한 트럼프 대통령이 47대라는 사실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상의 어떤 전투기도 속도(Speed)와 기동성(Maneuverability), 무장량(Payload)에서 F-47과 견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로이터는 미 해군도 조만간 6세대 전투기 개발을 발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기사회생한 6세대 전투기
미국은 2014년부터 6세대 전투기 개발에 나섰다. 미 공군의 6세대 전투기 사업은 NGAD(차세대 공중 지배), 미 해군은 F/A-XX라 각각 불렸다. 그런데 바이든 정부였던 지난해 7월 30일 프랭크 켄덜 미 공군장관이 NGAD 사업을 잠시 멈추고 재검토에 들어가면서, 새 정부가 결정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치솟는 개발 비용 때문이었다.

중국의 6세대 전투기로 추정하는 전투기들. 왼쪽 나뭇잎 모양이 청두 J-36, 오른쪽 새 모양이 선양 J-50이다. aviationa2z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한 뒤 훼방꾼이 나타났다. 미 정부효율부(DOGE) 장관으로 임명된 일론 머스크다. 그는 5세대 스텔스 전투기인 F-35 라이트닝Ⅱ를 “멍청이(Idiots)나 만드는 전투기”라고 흉보거나, “미국은 장거리 드론이나 극초음속 미사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NGAD 사업은 끝났다는 전망도 나오던 참이었다.
막판 뒤집기 끝에 F-47이 나온 셈이었다. 미 국방부와 공군이 F-47이 꼭 있어야 한다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강조했겠지만, 중국을 견제하려 하는 의도가 숨어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12월 26일 중국 청두(成都)와 선양(沈阳)에서 새로운 전투기가 불쑥 나타났다. 청두의 전투기는 나뭇잎을 닮았고, 선양의 전투기는 새와 비슷했다. 중국 밀리터리 매니어는 이들 전투기가 6세대 전투기며, 각각 J-36과 J-50이라고 불렀다. 청두엔 청두항공기공업그룹(CAC)이, 선양엔 선양항공기공사(SAC)가 각각 자리 잡고 있다.
12월 26일은 마오쩌둥(毛澤東)의 생일이다. 미국이 머뭇거리는 사이 중국이 6세대 전투기에서 치고 나간다는 사실을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날 대놓고 알렸다.
폼 내기 좋아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가만 지켜보기는 힘들지 않았겠나.
AI로 무인기 지휘하는 6세대 전투기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F-47의 비행 상상도를 공개했는데 희미하게 처리해 잘 보이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미국의 6세대 전투기에 대한 내용은 꽁꽁 감춰져 있다.

영국·이탈리아·일본의 6세대 전투기 공동 개발 사업인 GCAP 로이터=연합
일단 6세대부터 설명한다. 전투기도 세대로 나눈다. 제트기가 처음 나왔을 때가 1세대(1940~50년대), 초음속(마하 1.0(시속 1225㎞) 이상)의 2세대(1950~60년대), 레이더와 공대공 미사일로 가시거리 너머의 전투(BVR)가 가능한 3세대(1960~70년대) 등이다.
1970년대 이후 컴퓨터가 작아지고 빨라지면서 플라이바이와이어(FBW) 비행 제어 시스템 등이 등장했는데, 이 같은 기술의 전투기를 4세대라 부른다. 1990년대 능동 전자주사식 위상배열(AESA) 레이더ㆍIRST(적외선 탐지·추적 장비)ㆍ복합소재 등을 적용한 전투기가 4.5세대다. 국산 전투기인 KF-21 보라매가 4.5세대다.
스텔스 전투기는 5세대다. 5세대 전투기는 기술 난이도와 개발 비용이 많이 들어 미국ㆍ러시아ㆍ중국만 성공했다.
6세대는 아직 정의가 분분하지만, 인공지능(AI)과 무인 전투기 통합 기능을 갖출 것이다. 레이저 무기도 6세대 전투기에 달 수 있을 것이란 예상도 있다.

프랑스·독일·스페인의 6세대 전투기 공동 개발 사업인 FCAS. 에어버스
F-47과 F/A-XX의 미국 말고도 여러 나라가 6세대 전투기를 개발하고 있다. 중국의 J-36과 J-50, 영국·이탈리아·일본의 GCAP(세계 공중 전투 프로그램), 프랑스·독일·스페인의 FCAS(미래 공중 전투 체계)가 대표적이다. 미국과 중국은 5세대에서 6세대로 진화하고 있으며, 유럽과 일본은 4.5세대에서 6세대로 건너뛰고 있다.
F-22보다 더 싸고 더 많이 만들겠다지만
F-47의 단편적인 정보로 엮어보면 다음과 같다.

미국 공군의 6세대 전투기인 보잉 F-47. 스페이드 모양의 레이돔과 카나드가 보인다. 미 공군
F-47은 수출 가능
미국은 첫 5세대 스텔스 전투기인 F-22 랩터를 동맹국인 일본·호주·이스라엘이 조르는 데도 미국의 공중 지배력을 놓지 않으려고 수출하지 않았다. 그래서 6세대 전투기도 수출금지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들 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뒤집었다. 그는 지난 21일 “미국의 동맹국이 계속 전화면서 F-47을 사고 싶다고 한다”면서도 “미국은 10% 성능을 낮춘(tone-down) F-47을 수출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언젠가 더는 동맹국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덧붙였다.
역시 트럼프 대통령다웠다. 그가 진짜 수출을 풀지는 나중에 드러날 가능성이 있다.
개발 비용은 200억 달러
올빈 총장은 성명에서 “F-47은 F-22와 비교해 더 싸고, 더 많이 보유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월 13일 켄들 전 공군장관은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NGAD의 개발(EMD) 계약금이 200억 달러(약 29조원)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의 군사 전문 매체인 워존은 수천억 달러로 오를 가능성이 높고, 1대당 가격은 3억 달러(약 4400억원) 이상으로 예상했다. F-22는 1대당 3억 5000만 달러(약 5100억원)다.
미국 무기값은 늘 예상을 뛰어넘었고, 물가가 더 오를 경우 치솟을 가능성이 있다.
F-22는 당초 생산 목표가 750대였다. 그러나 냉전이 끝나면서 너무 비싸고 성능이 과도하다는 지적에 따라 195대만 생산됐고, 현재 183대가 날아다니고 있다.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와 신냉전을 벌이고 있기 때문에 F-47을 200대를 넘어 300대 이상 뽑아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비용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 F-47도 F-22처럼 생산 대수가 급감할 수 있다.
이미 개발이 진행 중
올빈 총장은 “지난 5년간 시험기(X-planes)가 조용히 F-47의 기반을 닦고 있었다”며 “수백 시간 이상 비행하면서 첨단 개념을 시험했다”고 설명했다. 미 공군의 NGAD 사업엔 보잉과 록히드 마틴이 경쟁했다. 미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에 따르면 보잉의 시험기는 2019년, 록히드 마틴은 2022년에 첫 비행을 마쳤다.
4년 안에 완성 예정
올빈 총장은 “F-47은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안에 날 것”이라고 장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두번 째 임기는 2029년 1월 21일 끝난다. 4년 안에 개발을 끝내고 생산에 들어갔다는 뜻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잘 보이려고 47이란 숫자를 붙이고,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안에 완성하겠다는 미 공군이다. 에비에이션위크의 한국통신원 김민석씨는 “미 공군이 이미 많은 것을 검증했다고 하나 기술적 난이도가 있어 쉽지는 않을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비위를 맞추려고 설익은 상태서 개발 완수를 선언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압도적 성능을 지닌 전투기
적응형 사이클 엔진과 광대역 스텔스
올빈 총장은 F-47의 “더 긴 항속거리(Longer Range)”와 “더 발전한 스텔스(More Advanced Stealth)”를 언급했다. 비교 대상은 물론 F-22다. 
미국 공군의 6세대 전투기인 보잉 F-47. 미 공군
에어쇼에서 F-22의 비행을 보면 다들 입이 딱 벌어진다. 엄청난 기동성 때문이다. 그런데 F-47은 F-22를 압도할 듯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동성뿐만 아니라 속도와 무장량을 내세웠다.
F-22의 최고 속도는 마하 2.25(시속 2414㎞)다. 전투 행동반경은 850㎞이고, 무장량은 각각 내부 8.2t, 외부 12t이다. 2만 6000파운드포스(lbf) 출력의 프랫&휘트니 F119-PW-100 엔진 2개를 달아 마하 1.76(시속 1870㎞)으로 초음속 순항으로 날 수 있다. 다른 전투기들은 애프터 버너를 켜야 초음속 비행이 가능하다.
F-47의 엔진은 차세대 적응형 사이클 엔진(NACE)을 탑재한다. 연료효율을 높여 전투 행동반경과 체공시간을 늘리는 엔진이다. 제너럴일렉트릭(GE)의 XA-102, 프랫&휘트니의 XA-103이 NACE를 놓고 경쟁 중이다.
5세대의 스텔스는 한계가 있다. VHF와 같은 장파에 취약하며, 정면이 아닌 곳에선 피탐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나온 게 광대역 스텔스다. 넓은 주파수 대역에서 저피탐을 보장하면서, 전 방향에서 레이더 전파를 흡수하는 성능을 뜻한다.
카나드, 레이돔, 꼬리날개
미 공군이 공개한 상상도에 따르면 F-47은 카나드(Canard)가 달렸다. 주날개 앞쪽에 있는 작은 날개가 카나드다. 카나드는 항공기의 양력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프랑스의 라팔 카나드. 원래는 평형이지만, 여기선 꺾어 놨다. 로이터-연합
카나드는 프랑스의 라팔, 스웨덴의 그리펜, 영국·독일·이탈리아·스페인의 유로파이터 타이푼 등 유럽 전투기에서 자주 보인다. 중국의 J-20도 카나드가 있다. 미 공군 전투기에선 카나드가 없었고, F-47이 첫 카나드 전투기가 될 전망이다.
기수의 레이돔(레이더 공간)이 스페이드(♠) 모양처럼 넓은 편이다. 대개 전투기는 속도를 내려고 레이돔을 뾰족하게 만들었다. 신형 레이더를 장비할 가능성이 엿보인다.
그리고 스텔스 설계에 따라 수직 꼬리날개와 수평 꼬리날개가 없다. 주날개가 전부인 구조다.

버즈 오프 프레이 실증기. 위키피디아

X-36 실증기. 위키피디아

X-45 실증기. 위키피디아
미국에선 F-47이 보잉의 X-36·X-45·버즈 오브 프레이(Birds of Prey) 등 기술 실증기의 디자인을 상당히 가져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무인기와 협동 작전
F-47은 단독 작전을 안 한다. 늘 무인 전투기가 붙어 다니는 것을 고려해 만든 전투기다. 
F-35가 CCA와 함께 작전을 펼치고 있다. 록히드 마틴
미 공군은 유인 전투기와 함께 날 무인 전투기인 협업 무인 전투기(CCA)를 개발하고 있다. 1000대 이상의 CCA를 실전배치하는 게 미 공군의 목표다. 무인기로 유명한 제너럴 아토믹스와 무인기 스타트업 회사인 안두릴 인더스트즈가 CCA 납품을 두고 싸우고 있다.
CCA는 F-47뿐만 아니라 F-35와도 협업할 예정이다. 1대의 유인기가 2대의 무인기와 협동 작전하는 방식이다.
미 공군은 보도자료에서 F-47의 시스템 계열(Family of Systems)을 명시했다. 시스템 계열은 하나의 시스템이 아닌, 여러 시스템이 서로 연관돼 하나의 가족처럼 작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시스템 개발·유지보수 비용을 줄이고, 시스템 간 호환성을 높이며, 개발 시간을 단축하는 게 시스템 계열의 장점이다.
미 공군은 F-47의 시스템 계열로 차세대 스텔스, 센서 융합, 장거리 타격 능력을 꼽았다. CCA, 최첨단 센서, 인공위성, 다른 항공기와 긴밀히 연결하면서 적진 깊숙이 침투하고, 적 스텔스 전투기를 탐지하고, 적 목표를 단숨에 타격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카더라와 뇌피셜을 빼고 공식 발표 위주로 F-47의 밑그림을 그려봤다. 아직 뭔가 안 잡힌다. 그러나 엄청난 괴물이 될 것은 틀림없다.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를 찍어 누르려고 만들 전투기라서 말이다.
한국이 가야 할 길은
미·중의 6세대 전투기 개발전이 막 올랐다. 유럽과 일본도 시동을 걸고 있다.

보잉이 제안한 미국 해군의 6세대 전투기 F/A-XX 상상도. F-47이 이와 닮았을 가능성이 있다. 보잉
그러나 한국은 4.5세대인 KF-21을 이제 막 개발한 실정이다. KF-21은 3단계로 5세대에 가까운 저피탐(LO) 성능을 갖출 것이다. 일각에선 6세대 전투기 개발을 지금부터라도 준비하자는 얘기가 있다.
김민석 특파원은 “우리는 비용 문제 때문에 당장 6세대 전투기 개발에 나설 수는 없다”면서도 “선진국의 안티 스텔스 기술을 따라잡는 응용 연구를 적극적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