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극장 올해는 다르다 … 매화·목련·벚꽃 동시 상영

산사의 봄

지난 1일 새벽 전남 구례 화엄사에서 사진가들 앞에 화엄매가 활짝 피었다. 김홍준 기자

지난 1일 새벽 전남 구례 화엄사에서 사진가들 앞에 화엄매가 활짝 피었다. 김홍준 기자

매화는 봄을 연다. 벚꽃은 봄을 닫는다. 매화·목련·개나리·진달래·벚꽃 순. 대체로 이런데, 도대체 올해는 좀 엇나가는 분위기. ‘봄보다’ 마음이 앞서 매화를 찾았던 사람들은 탄식했다. “아쉽다.”

매화가 늦게 터졌다. 벚꽃과는 대략 한 달 차이로 먼저 핀다. 하지만 목련까지 더해 세 꽃은 현재 ‘동시상영’ 중이다. 패딩 껴입다가 갑작스레 반소매 행색을 만드는 기온이 매화 개화를 미루고 벚꽃은 당겨왔기 때문.

남도에서 올라오는 봄소식은 꽃보다 불이 앞섰다. 불길이 할퀴고 간 상처에 새살을 틔우려면 여기저기 발길이 가야 한다. 그래서 ‘산사(山寺)의 봄’은 절찬 상영 중이다.

통도사 홍매화는 창건 조사(祖師)인 신라시대 자장율사(慈藏律師, 590~658)의 법명을 따와 자장매(慈藏梅)로 부른다. 올해 자장매는 예년보다 2주 이상 늦게 개화했다. 우연히 만난 한복크리에이터 진현(35)씨가 영각 앞에 핀 자장매의 즉석 모델이 돼줬다. 사진은 지난달 19일 촬영한 것으로, 4월 5일 현재 자장매는 많이 떨어진 상태다. 김홍준 기자

통도사 홍매화는 창건 조사(祖師)인 신라시대 자장율사(慈藏律師, 590~658)의 법명을 따와 자장매(慈藏梅)로 부른다. 올해 자장매는 예년보다 2주 이상 늦게 개화했다. 우연히 만난 한복크리에이터 진현(35)씨가 영각 앞에 핀 자장매의 즉석 모델이 돼줬다. 사진은 지난달 19일 촬영한 것으로, 4월 5일 현재 자장매는 많이 떨어진 상태다. 김홍준 기자

 
화엄매 촬영, 절 개·폐문 무렵이 최적기
암향(暗香). 매화는 은연중 향을 흘리며 고매한 건지도. 봄을 가장 먼저 알려 보춘화(報春化)라고 했다. 매화를 일컫는 말은 얼마나 많은가. 지난달 18일 경남 양산 통도사에는 눈이 내렸다. 해서 이번엔 설중매(雪中梅).

통도사 자장매는 절정이 지났다. 통도사를 일으킨 자장율사의 법명을 가져온 이 매화는 예년보다 2주나 늦게 피었다. 전남 구례 화엄사의 화엄매, 순천 선암사의 선암매, 장성 백양사의 고불매와 함께 ‘남도 사찰 매화 4대 천황’으로 부르기도 한다.  


새벽 공기를 가르고 풀풀 도포 자락 휘날리며 올라온 선비 한 명. 한복크리에이터 진현(35)씨의 등장에 사진가들은 술렁였고, 바빠졌다. 부산에서 양산으로, 다시 부산으로 등굣길을 길게 잡고 온 김지원(10)양도 예기치 않은 모델이었다. 진씨와 김양. 왜 하필 새벽을 택했을까. 

화엄사 홍매화는 지난 3월 21일 개화했다. 지난해 기준이면 만개했을 시기다. 올해는 예년보다 열흘 가량 늦은 4월 첫 주에 만개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화엄사 홍매화는 지난 3월 21일 개화했다. 지난해 기준이면 만개했을 시기다. 올해는 예년보다 열흘 가량 늦은 4월 첫 주에 만개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매화 터지는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았을까요. 기온이 내려가면 매화도 살짝 움츠렸다가 다시 트지요. 가장 고요해서 소리도 잘 들리고, 빛이 살짝 들면서 가장 아름답고요.” 성기홍 화엄사 홍보기획위원장의 말이다. 남도 매화는 자장매·화엄매·선암매·고불매 순으로 핀다고 한다. 자장매와 화엄매 간격은 열흘 정도. 성 위원장은 “화엄매는 이제 절정”이라며 “꽃이 일주일 정도 가는 편이라 다음 주 중반까지도 여전히 만개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절정 기준’을 고려해 화엄사를 찾은 이선아(65·서울)씨. 떨어지는 화엄매를 보려고 왔더니 절정에 놀랐고, 새벽부터 몰려든 사진가들에 다시 놀랐단다. 

지난 1일 오전 6시. 육중한 카메라를 들고 포토라인에서도 명당을 찾으려는 사진가들은 100여 명에 이르렀다. 매화 피기를 기다리다 아침 햇살을 기다리는 이들. 빛이 지리산 자락을 넘어오자 소리 없는 아우성. 셔터를 누르기만 할 뿐이었다. 당분간은 화엄매의 시간이다.

화엄사 홍매화는 지난 3월 21일 개화했다. 지난해 기준이면 만개했을 시기다. 올해는 예년보다 열흘 가량 늦은 4월 첫 주에 절정에 이르고 있다. 지난 4월 1일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모델이 화엄매에 다가서고 있다. 김홍준 기자

화엄사 홍매화는 지난 3월 21일 개화했다. 지난해 기준이면 만개했을 시기다. 올해는 예년보다 열흘 가량 늦은 4월 첫 주에 절정에 이르고 있다. 지난 4월 1일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모델이 화엄매에 다가서고 있다. 김홍준 기자

떨어지는 홍매화도 시리도록 가슴을 후벼 판다. 이씨가 한창 때를 지난 화엄매를 보려 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오히려 절정이 지나 더 고즈넉해진 새벽, 그때 만나는 홍매화는 온전히 내 마음에 들어앉는다”고 했다. 절정이 지나도 화엄사 홍매화·들매화 사진 콘테스트가 오는 12일까지 열리는 이유다. 콘테스트 중 산문 개방 시간을 눈여겨보자. 오전 5시30분~오후 8시30분. 양쪽 끝의 새벽과 저녁이 좋은 사진을 건질 수 있다는 암시다. 

비교하는 건 꽃에 대한 결례다. 그런데도 화엄매는 가장 인기 있는 매화다. “우뚝, 혼자서 아름답게 트잖아요. 고고하기도 하고, 처연하기도 하고, 장엄하기도 하고. 하나로만 말할 수 없는 느낌을 불러요. 그래서 화엄매입니다.” 충남 서산에서 온 최정숙(67)씨의 말이다. 고고, 처연, 장엄의 한 몸. 검붉은 색도 들어 ‘흑매’라고도 하는 화엄매를 보러, 화엄사에는 발길이 많아질 것 같다. 지난해 개화와 절정을 보낸 3월에만 30만 명이 찾았다.

전남 순천 조계산 자락의 선암사에는 홍매, 청매, 백매 등 여러 종류의 매화를 선암매로 부르고 있다. 선암매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각황전과 진영당 사이에 난 길 양쪽으로 매화가 절정에 이르고 있다. 선암매 안내판에느 '사찰보다 매화를 보러 오는 이들이 많다'고 고백했을 정도다. 김홍준 기자

전남 순천 조계산 자락의 선암사에는 홍매, 청매, 백매 등 여러 종류의 매화를 선암매로 부르고 있다. 선암매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각황전과 진영당 사이에 난 길 양쪽으로 매화가 절정에 이르고 있다. 선암매 안내판에느 '사찰보다 매화를 보러 오는 이들이 많다'고 고백했을 정도다. 김홍준 기자

통도사 자장매, 화엄사 화엄매, 선암사 선암매, 백양사 고불매는 남도 사찰 4대 매화로 부른다. 이 중 고불매는 가장 늦게 피지만 향기가 가장 강하다. 1947년 부처님의 원래의 가르침을 기리자는 뜻으로 백양사 고불총림(古佛叢林)을 결성하면서 고불매(古佛梅)라고 부르게 됐다. 김홍준 기자

통도사 자장매, 화엄사 화엄매, 선암사 선암매, 백양사 고불매는 남도 사찰 4대 매화로 부른다. 이 중 고불매는 가장 늦게 피지만 향기가 가장 강하다. 1947년 부처님의 원래의 가르침을 기리자는 뜻으로 백양사 고불총림(古佛叢林)을 결성하면서 고불매(古佛梅)라고 부르게 됐다. 김홍준 기자

최씨와 덩달아 왔다는 순천 남성에게 물어봤다. “순천 선암사 선암매는 좀 피었습니까”라고 묻자 “그럼요.” 선암매도 이번 주말 절정을 예고하고 있다. 50여 그루의 선암매는 조계산에 내린 어둠을 쫓을 정도로 밝았다. 

매년 남도 매화 4대 천황을 찾는다는 배우향(66·광주)씨는 고불매를 가장 까다롭다고 꼽았다. “대체 속을 알 수 없어요. 필 것 같은데, 안 피고요. 그래서 더 궁금해집니다.” 답은 어느새 절정. 고불매 선·매·향(禪·梅·香) 축제를 한 주 연기할 정도로 감감무소식이었다가 문득 트였다. 사실 문득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늦다고 난리지만, 때가 오면 어김없이 트기 위한 준비를 했고, 어느 대가를 바라지 않고 봄날을 보낸다. 선암매는 가장 까다롭지만, 가장 향기롭다. 조선 문장가 신흠이 썼다. ‘매화는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고.

전북 고창 선운사 종각 옆에 핀 목련. 선운사는 현재 공사 중인 곳이 많지만, 4월 첫 주 이 목련은 절정을 맞이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전북 고창 선운사 종각 옆에 핀 목련. 선운사는 현재 공사 중인 곳이 많지만, 4월 첫 주 이 목련은 절정을 맞이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뽀드득. 아닌 봄에 눈 밟는 소리인 듯. 혹은 입맛 다시듯 쩝. 목련의 개화 소리는 이럴 거다. ‘… 저 미친 년, 백주에/낯이 환해 어쩔거나/오살 맞은 년 ….’ 걸걸한 표현에 화들짝 놀라지 마시라. 정병근 시인은 백목련을 보고 눈이 부셨나 보다. 반가움의 반어다. 산사의 목련은 매화와 거의 동시에 화들짝 피었다.

전북 고창 선운사 종각 옆 담장 어귀. 목련이 만개했다. 사찰에서는 ‘나무에 피는 연꽃’이라고 해서 전각 문살에도 새겨 넣을 정도의 대접을 받는다. 구석진 곳에 있지만, 공사 중인 사찰을 전등처럼 환히 비추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산 아미타사 앞 목련이 흐드러지고 있다. 4월 첫 주를 지나면 이처럼 절정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김홍준 기자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산 아미타사 앞 목련이 흐드러지고 있다. 4월 첫 주를 지나면 이처럼 절정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김홍준 기자

경기도 고양 북한산 아미타사 입구에는 거대한 목련이 있다. 높이가 무려 20m에 달한다. 북한산 주 등산로와는 떨어져 있어 절에 가지 않는 이상 보기 힘들다. 지금 흐드러지고 있다. 수백 송이 목련이 만든 그늘에 있다가 꽃내음에 취할 수 있으니 주의. 취했다면 바로 앞의 계곡물 소리가 씻겨줄 것이다. 

언젠가 오늘처럼 만개를 앞둔 이 목련 아래서 힘겹게 발을 떼고 있는 검은 옷차림의 남자를 봤다. 문득 생각난 노래. ‘…하얀 목련이 필 때면/다시 생각나는 사람/봄비 내린 거리마다 슬픈 그대 뒷모습….’(양희은 작사 ‘하얀 목련’ 일부) 주말에 봄비가 내린다. 목련은 비에 약하다. 우수수 떨어질 수도 있겠다. 그래도 지저분하다고 욕하지 말자. ‘순백의 눈도 녹으면 질척거리는 것을.’(복효근 시인)

개나리·벚꽃 개화 간격 절반으로 줄어

경남 하동 쌍계사로 향하는 길의 섬진강 벚꽃은 4월 첫 주말이 절정이다. 김홍준 기자

경남 하동 쌍계사로 향하는 길의 섬진강 벚꽃은 4월 첫 주말이 절정이다. 김홍준 기자

잠시 발길을 되돌려 2014년. 한국농림기상학회는 그해 봄 개나리와 벚꽃 개화 시기의 간격이 7일로 급격히 줄어들었다고 분석했다. 1951~1980년은 평균 14일이었다. 초봄의 기온상승이 완만했던 데 비해 늦봄에는 급격했기 때문이었다. 올해도 3월 초순 서울 평균기온이 5.8도에서 하순 10.5도로 수직 상승했다. 기상 관계자들은 “매화와 벚꽃이 피어있는 시기가 같아질 것”이라고 전망한 이유다. 봄꽃이 겹치면 마냥 좋지는 않다. 곤충도 수분을 나눠서 해야 하는데, ‘일감’이 몰리면서 생태계가 뒤죽박죽된다는 우려가 있다.

충남 서산 부석사 운거루(雲居樓)에서 내려다보는 벚꽃은 정말 구름이다. 스님들이 널어놓은 빨래 뒤로는 들매화가 피었다. 서산 부석사에 갈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왜구에게 약탈당한 금동관음보살좌상이 다시 모셔져 있다. 650여 년 만이다. 절도범 손에 국내로 들어왔으나 일본 소유권이 인정돼 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올해 부처님오신날인 5월 5일까지 공개된다. 

충남 서산 부석사 운거루 앞에 핀 벚꽃. 4월 첫 주 경남 하동 쌍계사 십리벚꽃길이 만개했으니, 한 주 뒤에는 개화할 것으로 보인다. 김홍준 기자

충남 서산 부석사 운거루 앞에 핀 벚꽃. 4월 첫 주 경남 하동 쌍계사 십리벚꽃길이 만개했으니, 한 주 뒤에는 개화할 것으로 보인다. 김홍준 기자

경남 하동 쌍계사 십리벚꽃길의 벚꽃이 4월 첫 주말에 만개했다. 벚꽃 절정 전선은 1주일도 안 돼 수도권에 도착할 것으로 보인다.  김홍준 기자

경남 하동 쌍계사 십리벚꽃길의 벚꽃이 4월 첫 주말에 만개했다. 벚꽃 절정 전선은 1주일도 안 돼 수도권에 도착할 것으로 보인다. 김홍준 기자

 
경남 하동 쌍계사 십리벚꽃길은 이번 주말 절정이다. 쌍계사에서 충남 서산의 부석사와 개심사까지 벚꽃 전선 이동은 일주일이 채 안 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4년 부산~서울은 단 6일이었다. 강진범(80)씨는 선암사 선암매, 선운사 목련, 쌍계사 십리벚꽃에 잠깐 취해 있다가 경기도 파주로 돌아갔다. 거기서 또 다른 ‘매·목·벚’을 기다릴지도.

이렇게 봄은 어김없이 다시 왔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빨리 갈 것이다. ‘폭싹 속았수다’ 대사처럼, ‘호로록’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