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일 확정에 "청와대 빨리 구경하자"…관람객 2배 늘었다

5일 시위대와 천막으로 가득했던 서울 종로구 경복궁 앞이 8일 오후에는 한적한 모습을 되찾았다. 외국인 관광객과 직장인들이 간간이 오갔다. 서지원·이아미 기자

5일 시위대와 천막으로 가득했던 서울 종로구 경복궁 앞이 8일 오후에는 한적한 모습을 되찾았다. 외국인 관광객과 직장인들이 간간이 오갔다. 서지원·이아미 기자

 

아이가 아직 어려서 계엄과 탄핵에 대해선 나중에 설명해 주려고 경복궁 나들이를 자제했는데, 오늘 와보니 확실히 정리된 느낌이네요.
 
8일 경기 동두천시에서 유치원생 딸을 데리고 경복궁 나들이를 나온 고모(41)씨는 주변을 둘러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난주 탄핵 선고가 나지 않았다면 봄나들이 장소로 다른 곳을 택했을 것”이라며 “시위가 마무리됐을 거라 생각해서 오랜만에 경복궁으로 나왔는데, 날씨도 화창해서 딱 좋다”고 말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선고로부터 나흘이 지난 이 날, 경복궁 앞은 천막과 시위대 대신 밝은 표정의 관광객과 직장인들이 오가며 일상을 되찾은 모습이었다. 애인과 주황색 커플 티셔츠를 맞춰 입고 기념사진을 찍던 러시아인 관광객 막스(28)는 “유튜브를 통해 접한 한국의 정치 상황이 조금 걱정됐지만, 러시아보단 훨씬 안전할 거라 생각했다”며 “막상 경복궁에 와보니 너무 아름답고 조용한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경복궁 관리소에 따르면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이전인 3월 마지막 주 주말(29, 30일) 3만5839명 수준이던 입장객 수는 선고 이후인 지난 주말(5, 6일) 4만9806명으로 약 39% 늘었다. 경복궁 관리소 관계자는 “월요일(7일)에도 하루 3만 명 이상 입장했고, 이번 주말에는 하루 5만 명까지도 예상한다”며 “경복궁 앞 집회 상황이 정리됐고 꽃도 피기 시작하면서 관람 인원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8일 오전 11시쯤 서울 종로구 경복궁 앞 한복을 입은 외국인 관광객들의 모습. 이아미 기자

8일 오전 11시쯤 서울 종로구 경복궁 앞 한복을 입은 외국인 관광객들의 모습. 이아미 기자

 
청와대도 관람객이 늘면서 활기를 띠었다. 차기 대통령 선거일이 오는 6월 3일로 확정되면서 ‘대통령실 재이전’ 논의에 불이 붙고 있기 때문이다. 인천 남동구에서 남편과 함께 청와대 앞길로 나들이를 나온 김모(75)씨는 “정권이 바뀌고 청와대로 대통령이 들어오게 되면 일반인 관람이 제한될 테니, 빨리 둘러봐야겠다 싶어 왔다”며 “인터넷으로 관람 예약을 하고 곧 다시 방문할 예정”이라고 했다.


청와대 재단에 따르면, 탄핵 선고 이후 주말 이틀간(5, 6일) 청와대에는 약 1만6000명의 관람객이 몰렸다고 한다. 지난달 관람객 수가 일평균 4000명 내외였던 것과 비교하면 2배가량 늘어난 셈이다.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정문 앞에 있던 화환 1200여 개가 모두 치워진 모습. 이아미 기자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정문 앞에 있던 화환 1200여 개가 모두 치워진 모습. 이아미 기자

 
연일 탄핵 반대 지지자들의 집회가 열리던 안국역 일대와 헌법재판소 앞은 여전히 경찰 버스와 투명 차벽이 세워져 있었지만, 통행이 자유롭고 경비도 완화된 상태였다. 확성기를 들고 구호를 외치던 집회 참여자들은 자취를 감췄고 근처 상점들 앞엔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섰다. 헌법재판소 앞 겹겹이 누워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던 화환 1200여 개도 말끔히 치워졌다.

안국역 1번 출구 앞 건물 경비원 김모(70)씨는 “야간에 시위대가 들어와 다짜고짜 화장실을 찾거나 건물 안에서 싸움이 붙는 등 피해가 컸다”며 “이번 주부터 부쩍 조용해지니 드디어 일상으로 돌아온 것 같다”고 말했다.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동 한 베이커리 카페 앞에 긴 대기 줄이 늘어서 있다. 이아미 기자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동 한 베이커리 카페 앞에 긴 대기 줄이 늘어서 있다. 이아미 기자

 
헌법재판소 인근인 재동초등학교 앞도 아이들이 웃으며 뛰노는 소리가 들리는 등 평화를 되찾은 모습이었다. 재동초 후문에서 만난 학교 보안관 A씨는 “지난주만 해도 시위대가 북을 치고 부부젤라를 불어대서 완전히 전쟁터였다”며 “월요일부터는 태풍이 지나가고 난 뒤처럼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져서, 학부모와 등교하는 아이들과 표정이 아주 밝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