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30일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이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를 면담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동남중국해까지 주한미군 작전 영역 확대되나
전구는 육상·해상·공중전이 전개될 수 있는 지리적 범위를 의미한다. 나카타니 방위상이 언급한 원 시어터 구상의 지리적 범위가 명확하진 않지만, 한반도와 동중국해·남중국해를 묶은 하나의 통합 전구를 도입하자는 취지로 읽힌다. 이는 곧 남중국해나 대만해협 유사시에도 주한미군이 투입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 통합 전구의 주적(主敵)은 중국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이를 통해 동아시아 지역에 미국의 전력을 묶어두는 한편 대중 견제 부담을 한국·호주·필리핀 등과 함께 나눠 지자는 생각으로 보인다. 설 익은 제안이란 얘기가 일본 내에서도 나오지만, 큰 틀에선 대중 견제를 위한 미 측의 동아시아 전력 효율화 기조와 일치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익명을 요구한 군 소식통은 “전구 개편에서는 지휘부의 통일이 핵심이기 때문에 원 시어터 하에선 주일미군사령부와 주한미군사령부 간 위계 문제가 나올 수 밖에 없다”면서 “미측이 아시아 배치 전력의 최적화 문제를 검토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제안이 주한미군의 지위나 성격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한국이 미 측에 주지시킬 필요는 있다”고 지적했다.
주일미군사령관이 한반도 작전 총괄?
특히 미국은 주일미군사령관을 지금의 중장(3성)에서 대장(4성)으로 승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데, 이는 중국 견제를 위한 사실상의 후방 기지화 차원에서 주일미군의 위상을 강화하려는 의도다. 여기다 미 트럼프 정부의 해외 사령부 통합과 주둔군 규모 축소 기조 등이 맞물릴 경우 주일미군사령관의 4성 장군 자리를 하나 늘리기 보단 주한미군 등 다른 곳에서 정원을 빼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트럼프 행정부의 이런 전력 효율화에 중점을 둘 원 시어터 구상이 한국의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과도 연동돼 연합사의 지위를 흔드는 것이다. 이상규 한국국방연구원(KIDA) 박사는 “중국 견제를 위해선 전구를 통합하는 게 미국 입장에서 효율적”이라며 “이런 미국의 방침이 한국 차기 정부의 전작권 전환과 맞물리면 주한미군사령부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축소될 우려는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간 한·미가 진행한 전작권 전환 논의의 핵심은 한국 측이 한·미 연합사령관을 맡고, 미 측이 연합부사령관을 맡는 지휘 체계 개편이다. 전작권 전환이 이뤄지면 현재 육군 대장(4성)이 맡고 있는 주한미군사령관의 급을 낮추면서 연합부사령관을 겸하게 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건 그래서다. 이럴 경우 주일미군사령관이 보다 큰 권한을 갖게 될 우려는 더 커지는 셈이다.
전작권 전환 맞물릴 땐 우려 증폭
수직적이고 일체형인 한·미 연합사령부와 달리 일본 자위대와 주일미군사령부의 관계는 수평적이고 상대적으로 느슨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주한미군은 한·미 간 연합 작전계획에 따라 부대 별로 세밀하게 임무가 부여돼 있기 때문에 주한미군의 역할을 달리 하려면 최소 수 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임기 내에 원 시어터 구상이 성사되기는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 건 그래서다. 일본 방위성 내에서도 “내용도 채우지 않았는데 ‘전역(전구)’라는 강한 단어를 외부에 써선 안된다”(아사히신문 15일 보도)는 목소리가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국은 한국이 자신들 전략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지 않는다면 일본 쪽에 힘을 실을 수 밖에 없다”며 “주일미군의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확대 가능성은 결국 한국 정부에 달려있다는 얘기”라고 짚었다. 그는 이어 “‘원 시어터’가 현실화하더라도 한반도 유사시 인도·태평양 전력을 더 많이 끌어올 수 있게끔 대북 억제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유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