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영모 한교총 전 대표회장 특별기고
민심은 천심(天心)이다. 늘 국민의 선택은 신비롭기까지 했다. AI가 하루가 다르게 똑똑해지고 있듯이, 이번 국가적 위기 앞에서 국민은 더 똑똑해지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헌법재판소는 탄핵 심판 접수 후 무려 111일 만에 8대0 만장일치로 2025년 4월 4일 오전 11시 22분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을 파면했다. 국민 통합과 치유의 과정도 없이 나라는 곧장 대선 정국으로 들어갔다. 버나드 쇼(G. B. Shaw)의 묘비엔 “어영부영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라고 되어 있단다. 지금은 정부나 정당이나 국민 모두는 어영부영할 때가 아니다. 승리에 도취하여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쪽도, 상실감에 빠져 분노의 함성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쪽도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
우리나라는 강성 보수 대 강성 진보로 나누어져 정치, 사회, 종교 등 모든 분야에서 아령 사회를 만들어 싸우고 있을 때, 국제 사회는 미국과 중국의 투키디데스의 함정(강대국과 신흥 강대국 간의 패권 교체가 전쟁을 수반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빠져들고 있다. 미국은 지금 세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 80여 년을 지켜온 세계화 개입주의 노선을 버리고 100여 년 전의 고립주의를 선택하고 있다. 자국 우선주의, 보호 무역 앞에 친구도 우방도 없이 전방위적 관세 전쟁을 선포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대한민국 국민은 더 똑똑해져야 할 때다.
지금 이 시각에도 대선 시계는 달리고 있다. 그동안 광장에서 그토록 간절하게 외치던 정당이나 진영의 목표도 정권을 잡아 국가와 국민을 섬기는 데 있지 않겠는가
헌법재판소는 전 대통령의 위헌적 요소를 심판한 것이지, 어느 한 편의 잘잘못의 손을 들어준 것은 아니었다. 절대다수 의석을 가진 당시 야당의 입법 독주, 탄핵 남발, 국정 협력 부족, 정당하지 못한 예산 삭감 등 정부 기능을 마비시킨 잘못을 짧지만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승리에 도취하여 잘못을 돌이키지 않는다면 역시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할 것이다.
또 한편 보수 진영과 국민의힘에서는 국민이 뽑아준 대통령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자책과 상실감에 몹시 화가 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서로를 비난하고 다시 배신자 프레임까지 등장하고 있다. 지금은 보수 정당도 똑똑해져야 할 때이다. 같은 진영 안에서 서로를 비난하고 어느 광고 문구처럼 씹고, 물고, 뜯는다면 희망이 없는 진영으로 생각하고 중도 국민의 마음은 떠나갈 것이다. NASA가 유인 아폴로 실험에서 실패하고 국민에게 약속했던 것처럼 “엄격함과 치열함”을 기억할 때이다. 엄격한 반성과 뼛속, 핏속까지 개혁하는 치열하게 새로워지려는 노력이 보여야 할 때이다.
아쉽고 억울하다고 느낄지라도 지금은 너그러이 수용하고 헌재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내란 수준의 언동이 있어서도, 목숨을 담보로 분노를 표현해서도 안 된다. 지금은 미래로 나아갈 때이다.
마틴 루서 킹의 “내겐 꿈이 있다”라는 유명한 연설이 있다. 100만 흑인 군중이 손에 손에 연장을 들고 몽고메리 시가로 밀려 나왔을 때 했던 연설이다. “내겐 꿈이 있다. 백인의 소년 소녀와 흑인의 소년 소녀가 손을 잡고 이 거리를 웃으며 뛰어노는 그 날을 꿈꾼다. 미국은 위대한 나라다. 그 위대한 나라는 그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아름다운 나라다.” 자기들을 무시하고 짓밟던 백인들에 대한 분노나 비난은 없었다. 이 연설에 100만 군중은 “우리는 승리하리라. 우리는 약하지 않다. 우리는 손에 손을 잡는다.” 노래를 부르며 목 놓아 울었고, 백인들도 더 큰 감동으로 울었다.
◇류영모 목사=1954년 경남 거창 출생. 서울 마포구 망원동 자신의 집에서 개척목회를 시작해 교인 1만6000명의 한소망교회를 일구었다. 지난해 은퇴하며 세습 논란 없이 후임 목사에게 깔끔하게 담임직을 물려줘 교계의 화제가 됐다. 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