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안보의존국' 먼저 협상…中과 전쟁 앞둔 레버리지 전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과의 통화에서 관세와 무역은 물론 안보 문제를 한꺼번에 다루겠다고 밝히면서 한국 측이 ‘패키지딜’의 방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외교가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안보를 레버리지로 삼아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려 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국립건축박물관에서 열린 전미공화당 의회위원회(NRCC) 만찬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국립건축박물관에서 열린 전미공화당 의회위원회(NRCC) 만찬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한국 입장에서 관세 협상에 주한미군 철수나 감축 또는 전략자산 전개와 같은 확장억제 관련 사안이 테이블에 함께 올라올 경우 협상 카드가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정상회담 이은 일본·한국 통화

이런 우려는 정상 통화 전날 이뤄진 미·이스라엘 정상회담에서도 확인됐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회담을 마친 뒤 성과를 과시하면서도, 자국에 부과된 17%의 상호관세에 대해선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국가에 대미 무역흑자를 '0(제로)'로 만들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고 그렇게 하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도착을 직접 환영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도착을 직접 환영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그러면서 “이스라엘은 많은 국가들이 같은 일을 하게 될 모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날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와 통화한 뒤 미·일 고위급 회담을 하기로 합의했다. 한 권한대행과의 통화는 이스라엘, 일본 정상과의 대화 다음날 이어졌다.


그리고 한 대행과의 통화가 이뤄질 무렵 케빈 해셋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폭스뉴스에 “협상은 가장 긴밀한 동맹이자 교역 파트너인 일본과 한국을 우선시하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고 말했다.

우선순위 3국의 공통점은 안보 ‘의존’

해셋 위원장의 말처럼 이스라엘을 포함한 3국은 미국의 핵심 교역 파트너다. 동시에 대미 안보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지난 1월 20일(현지시간) 취임행사로 열린 군장병과의 무도회에서 주한미군인 캠프 험프리스 장병들과 영상통화를 하고 있다. 뉴스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지난 1월 20일(현지시간) 취임행사로 열린 군장병과의 무도회에서 주한미군인 캠프 험프리스 장병들과 영상통화를 하고 있다. 뉴스1

이와 관련, 외교 소식통은 “트럼프 측은 방위비 인상, 주한미군 철수나 역할 조정과 관련한 논의가 있을 때마다 민감하게 반응해온 한국의 여론을 잘 알고 있다”며 “안보가 관세 협상에 함께 오를 경우 한국은 중요한 패(牌)를 버린 상태에서 협상에 임하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이런 전략을 사용할 뜻을 시사한 상태다. 그는 지난 3일 기내 간담회에서 유럽연합(EU) 동맹국에 대한 무역 적자를 거론하며 “유럽은 미국으로부터 많은 돈을 벌고도 미국을 나쁘게 대우한다”며 “우리는 그렇게 하면서 유럽을 보호하기 위해 많은 돈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쓸 수 없다”고 말했다.

“상대가 그것 없이 살 수 없는 게 레버리지”

트럼프 대통령은 저서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에서 거래를 성사시키는 핵심 요소로 ‘레버지리’를 꼽으며 “협상에선 상대가 원하는 것이나 상대가 필요로 하는 것, 더 나아가 상대가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협상 전문가’인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의 위협에 노출된 EU 국가들에게 ‘미국이 안보에서 손을 뗄 수 있다’고 위협하는 것 역시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 가장 ‘약한 고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일·이스라엘 역시 마찬가지 입장이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한 가지 레버리지를 공개했다. 그는 상호관세를 발표하며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좋은 시장이고, 우리는 다른 곳에서도 물건을 살 수 있지만 그들은 미국이 없으면 안 된다”고 했다. 

실제 한국의 전체 수출 중 대미 수출 비중은 18.7%(지난해 2월 기준)에 달한다. 이중 자동차·반도체·철강·알루미늄·의약품이 차지하는 비율이 41%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 모두를 상호관세와 별개로 한 품목별 관세 대상으로 지정한 상태다.

“트럼프의 두번째 레버리지는 안보”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언급한 ‘원스톱 쇼핑’ 형태의 협상이 진행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또 하나의 안보 레버리지를 손에 넣게 된다. 안보 레버리지는 이미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행정명령 서명식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이날 오전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과 전화 통화를 한 뒤 한국과 '원스톱쇼핑' 방식의 협상을 하겠다고 밝혔다.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행정명령 서명식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이날 오전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과 전화 통화를 한 뒤 한국과 '원스톱쇼핑' 방식의 협상을 하겠다고 밝혔다. EPA=연합뉴스

EU는 상호관세 발표 이후 맞대응 방침을 밝혔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나토 지원 중단’을 시사한 직후인 지난 7일 “모든 미국산 공산품에 대한 관세를 철폐하고, 기존에 발표된 철강 등에 대한 보복관세도 시행일을 미루거나 대상을 좁히겠다”며 사실상 백기투항했다.

이와 관련,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아시아태평양 안보석좌는 중앙일보에 “트럼프 정부는 군을 해군과 공군에 초점을 맞추고 핵무기의 현대화로 뒷받침하는 형태로 재편하고 있다”며 “이는 필연적으로 한국과 일본, 유럽에 배치된 지상군 감축 논의와 연결되는 구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군의 재편과 무관하게 철통 같은 동맹을 확인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왜 현장에 군대가 배치되는 것이 중요한지 이해하도록 경고하고 싶다”고 했다.

“관세전쟁의 최종 목적지는 중국”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동맹국에 대한 우선협상 방침을 밝히면서 중국에 대해선 총 104%의 관세를 물리겠다며 압박 수위를 더 높였다. 그러면서도 “중국이 협상을 위해 연락하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관대하게 대하겠다”며 협상의 여지를 열어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9년 6월 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양자 회담을 마친 뒤 돌아서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9년 6월 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양자 회담을 마친 뒤 돌아서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러나 중국은 물러서지 않을 태세다. 당장 위안화를 평가절하해 관세를 물게 된 기업을 지원 사격하기 시작했다. 한국 정부 관계자는 “중국은 대미 수출 의존도가 13~14%로 상대적으로 낮고, 내수 시장을 비롯해 제3국 등 수출 다변화 루트도 갖고 있다”며 “특히 중국공산당의 지령에 따라 환율까지 인위적으로 변경하면서 트럼프의 레버리지가 잘 먹히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백악관은 중국이 미국 수출 의존도를 낮출 여지가 있다는 점을 알기 때문에 지난달 30일 서울에서 열린 한·중·일 경제통상장관회의를 매우 불편하게 여겼다”며 “동맹과의 우선 협상 방침은 중국과의 전면전을 앞두고 주변의 반발을 먼저 진압해 전선을 중국에 집중하는 동시에, 중국에 제시할 통상 가이드라인을 만들기 위한 조치일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8일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국무총리실 제공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8일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국무총리실 제공

이와 관련, 한 권한대행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 직후 공개된 CNN 인터뷰에서 “당시 회의(3국 경제통상장관회의)는 일상적인 회의였고, 그 회의는 미국에 반격하기 위한 연합이 아니다”라며 직접 미국을 향해 중국과 연합할 의사가 없다고 해명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