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습격' 北무장공비 출신 김신조 목사 83세로 별세

 북한 무장공비로 우리나라에 침투했다가 귀순한 뒤 목회생활을 했던 김신조 목사가 9일 별세했다. 83세. 서울성락교회 등에 따르면 김 목사는 이날 새벽 소천한 것으로 전해졌다. 빈소는 서울 영등포구 교원예움 서서울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다. 연합뉴스

북한 무장공비로 우리나라에 침투했다가 귀순한 뒤 목회생활을 했던 김신조 목사가 9일 별세했다. 83세. 서울성락교회 등에 따르면 김 목사는 이날 새벽 소천한 것으로 전해졌다. 빈소는 서울 영등포구 교원예움 서서울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다. 연합뉴스

북한 무장공비로 우리나라에 침투했다가 귀순한 뒤 목회생활을 했던 김신조 목사가 9일 별세했다. 83세.

서울성락교회 등에 따르면 김 목사는 이날 새벽 소천한 것으로 전해졌다.

1942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나 인민군 장교가 된 김씨는 26세였던 1968년 1월 21일, 북한이 남파한 무장공비 31명 중 한 명이었다. 이들의 최종 목표는 박 대통령을 암살하는 것이었다.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산하 특수부대 '124부대' 소속이었던 무장공비들은 청와대 습격 지령을 받고 군사분계선 철조망을 절단한 뒤 남쪽으로 침투했다.

북한산 사모바위에 옷을 숨겨두고 일본제 사복으로 갈아입고 청와대로 진격한 이들은 코트 속에 무기를 숨긴 채 1월 21일 밤 자하문고개로 들어섰다가 비상근무 중이던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렸다. 청와대까지 불과 500m 거리였다.


군경이 청와대 진입을 저지하기 위한 소탕작전을 벌이자 김신조 일당은 수류탄을 던지고 기관단총을 난사하며 저항하다 흩어졌다.

당시 종로경찰서장이었던 고 최규식 경무관이 대간첩 작전 도중 순직했다.

무장공비 색출을 위한 합동 수색 작전은 경기도 일대에서 1월 말까지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124부대 소속 31명 중 29명이 사살됐으며 1명은 북한으로 도주했다.

김씨만 생포돼 귀순했다. 생포 직후 기자회견에서 임무를 묻는 질문에 그는 거칠게 "박정희 모가지 따러 왔수다"라고 답한 일화는 유명하다.

김씨는 귀순 후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사살된 동료들과 북한에 남겨진 가족들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며 한때 술과 담배, 도박에 빠지기도 했다.

그를 신앙의 길로 이끈 것은 아내였다. 김씨는 귀순 3년째이던 1970년, 자신에게 편지를 보내며 위로해주던 최정화씨와 결혼했고, 1981년 아내의 권유로 성락교회에서 침례를 받았다.

1989년에는 기독인귀순용사선교회를 창립하며 신앙 활동에 매진했고, 청와대 습격 사건이 발생한 지 꼭 29년이 지난 1997년 1월 21일 목사 안수를 받았다.

경기도 남양주 성락삼봉교회와 서울 영등포구 서울성락교회 등지에서 목회한 김씨는 최근까지도 매주 일요일 교회에 나가 신앙생활을 이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빈소는 영등포구 교원예움 서서울장례식장에 차려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