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릴수록 더 잘팔린다?…트럼프 104% 관세, 中반도체 웃는 이유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전쟁이 기술 수출 제재에 이어 관세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전쟁이 기술 수출 제재에 이어 관세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이 던진 104% 관세 폭탄은 중국에 위기일까 기회일까. 중국 반도체 업계는 반사이익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미·중이 보복 관세를 서로 주고 받다 보면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값 오른 미국산 장비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자국 제품을 택하는 대체 수요로 몰릴 수 있어서다. 그동안 미국의 수출 통제로 반도체 자립 기반을 다져온 중국이 이번 관세 전쟁을 ‘제2의 반도체 굴기’ 기회로 삼을 수 있단 분석이 나온다.  

시장 반응은 이미 긍정적이다. 8일(현지시간)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상하이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들의 공시 자료와 주가 변화를 토대로 이번 미·중 관세 전쟁이 일부 기술 기업에 호재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중국 선전에 본사를 둔 칩시테크놀로지스는 이번 관세 갈등으로 중국 내 시장 점유율 확대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가전제품과 자동차용 반도체칩을 생산하는 이 회사의 주가는 전날 대비 4.38% 상승했다. 레이더 센서용 칩 제조업체인 쑤저우 에버브라이트 포토닉스도 미국산 수입품에 대한 보복 관세가 매출에 긍정적이라고 내다봤다. 주가가 5.4% 오른 회사 측은 “수입 칩 비용이 더 오르고 국내 고객들이 공급망 불확실성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제재→관세, 내성 강해진 中반도체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중국 반도체 장비업체들의 수혜도 주목된다. 무역안보관리원에 따르면 중국의 반도체 제조 장비 수입액은 2022년 31억달러에서 2024년 39억6000만달러로 27.5% 증가했다. 2022년부터 시작된 미국의 수출 통제로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AMAT), 램리서치, KLA 등 미국 기업들의 첨단 장비 수출은 차단됐지만, 레거시 공정용 장비는 계속 중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보복 관세로 미국산 장비 수입 가격이 오르면 기존 수요가 중국 장비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 최대 반도체 장비업체인 ‘나우라’(북방화창)는 미국의 기술 규제에도 식각·증착 부문에서 경쟁력을 갖춰 미국 장비 대체재로 급부상하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장비 시장 6위인 나우라는 중국 기업으론 유일하게 세계 10위 이내에 든다. 올해 1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51%, 순이익은 53% 증가하는 등 3년 연속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의 수출 제재에도 7나노(㎚·1㎚=10억 분의 1m) 공정을 구현한 것으로 알려진 ‘사이캐리어’(SiCarrier)는 지난 3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세미콘 차이나’에서 처음으로 자사 장비를 외부에 공개해 이목을 끌었다.

삼성·SK ‘딜레마’

문제는 이러한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가속화될수록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입지가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이다. CXMT(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 YMTC(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 SMIC(중신궈지) 등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각각 D램·낸드·파운드리 분야에서 국내 업체들과의 기술 격차를 빠르게 좁히고 있다.

김혁중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중국 장비사들이 미국 수준에 도달한 것은 아니지만 식각이나 에칭 등 일부 분야에서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며 “현지 수요 증가와 집중적인 투자가 이어질수록 장비사 뿐만 아니라 반도체 제조 업체 등 산업 전반이 동반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