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수돗물 괴담'에 11년간 놀린 2000억 식수시설 결국…

부산 기장군에 2014년 8월 조성된 해수담수화 시설. 조성된 지 11년째 가동되지 못한 이 시설에 대해 최근 부산시가 공업용수 생산 시설로 바꾸는 안을 발표했다. 사진 부산시

부산 기장군에 2014년 8월 조성된 해수담수화 시설. 조성된 지 11년째 가동되지 못한 이 시설에 대해 최근 부산시가 공업용수 생산 시설로 바꾸는 안을 발표했다. 사진 부산시

9일 오전 부산 기장군 기장읍 대변항. 항만을 따라 줄지어 선 멸치ㆍ젓갈ㆍ건어물 좌판의 비린내를 뒤로하고 바다를 따라 2㎞가량 더 동쪽으로 차를 몰자 푸른 바다 빛깔과 확연히 대조되는 흰색의 거대한 시설이 모습을 드러냈다.

‘부산 기장 해양정수센터’라 불리는 이 시설은 본래 바닷물을  담수로 바꿔 주민에게 식수를 공급하려 지은 시설이다. 2014년 8월 공사가 끝났지만, 11년째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이날 둘러본 시설의 저수조와 밸브 등 곳곳엔 녹슨 자국이 눈에 띄었다. 해수 담수화의 핵심 설비인 역삼투막 시설동 내부엔 포장도 뜯지 않은 고성능 필터 수십 상자 위로 먼지가 자욱했다. 가동된 적 없는 시설 곳곳에 붙은 ‘안전제일’ 표어가 무색하게 느껴졌다. 이 시설은 결국 하수처리수를 활용한 공업용수 생산 시설로 바뀐다.

9일 부산 기장군 해수담수화 시설의 핵심 설비인 역삼투압 시설동에서 부산시 상수도 본부 관계자가 이 설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민주 기자

9일 부산 기장군 해수담수화 시설의 핵심 설비인 역삼투압 시설동에서 부산시 상수도 본부 관계자가 이 설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민주 기자

“식수 대신 공업용수” 11년 만에 해법 나왔다

9일 부산시에 따르면 본래 ‘해수담수화 시설’이란 이름으로 지어진 이 시설은 2030년까지 ‘공업용수 생산 시설’로 탈바꿈한다. 시설은 4만7000㎡ 부지에 국ㆍ시비와 민간 투자금 1954억원을 들여 조성됐다. 하루 4만5000t의 바닷물을 담수화해 인근 주민 18만여명 식수(수돗물)를 공급하는 국내 첫 시설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부산시가 시설 입지를 이곳으로 잡은 건 수질 환경 기준 항목 중 하나인 화학적 산소 요구량(COD)기준 1등급 판정을 받은 청정 해역이었기 때문이다. 화명정수장에서 30㎞ 넘게 떨어져 장거리 수송해야 하는 기장ㆍ송정 수돗물의 수질ㆍ공급 효율성 개선 효과도 기대됐다.

9일 부산 기장군 해수담수화시설의 역삼투압 설비동 내부에 포장도 뜯지 않은 고성능 필터 상자가 쌓여 있다. 김민주 기자

9일 부산 기장군 해수담수화시설의 역삼투압 설비동 내부에 포장도 뜯지 않은 고성능 필터 상자가 쌓여 있다. 김민주 기자

2008년 국토교통부 산하 ‘해수담수화 건설지 선정추진위원회’는 수질ㆍ접근성 등을 따져 전국 후보지 중 대변리를 최적지로 낙점했다. 부산시와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 역삼투압 방식 담수화 기술을 보유한 두산에너빌리티(옛 두산중공업)가 조성에 참여했다.  


원전 가까운 시설, ‘후쿠시마 패닉’에 올스톱

그런데 공사가 한창이던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에서 쓰나미로 인한 원전 사고가 터졌다. 일본과 비교적 가까운 부산에선 이 사고로 유출된 방사성 물질에 바다 오염이 심화될 거란 우려가 커졌다. 이후 시설은 완공됐지만, 수돗물 시범 공급 계획(2014년 11월)을 앞두고 일부 주민과 환경단체가 “고리원전에서 가까운(11.3㎞) 시설의 수돗물엔 삼중수소ㆍ세슘 등 방사성 물질이 포함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9일 부산 기장군 해수담수화시설의 여과 설비. 설비 곳곳에 녹슨 흔적 등이 눈에 띈다. 김민주 기자

9일 부산 기장군 해수담수화시설의 여과 설비. 설비 곳곳에 녹슨 흔적 등이 눈에 띈다. 김민주 기자

 
부산시는 수십 건의 안전성 검사 결과 등을 근거로 사업 추진이 문제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후쿠시마 패닉'과 결합한 '방사성 수돗물론'이 힘을 얻으며 결국 시범 공급 계획이 취소됐다. 2016년 3월 주민투표에선 89.3%가 시설에서 만들어진 수돗물 공급에 반대했다. 투표율 26.7%로 유효 투표율(33.3%)엔 못 미쳤지만, 공급 강행이 어려운 수준의 강한 반대 여론이 확인됐다.  

이후 이 시설의 물을 원하는 가구나 공장에만 공급하고, 안전성 검사 결과에 따라 병입수로 만들어 관공서에 보급하려 한 시도는 경제성 등 문제로 모두 무산됐다. 2000억 가까이 들여 지은 시설이 11년째 가동되지 못한 이유다.

9일 부산 기장군 해수담수화 시설에. 바다 방향으로 망원경이 설치돼있지만 사용 흔적이 없다. 김민주 기자

9일 부산 기장군 해수담수화 시설에. 바다 방향으로 망원경이 설치돼있지만 사용 흔적이 없다. 김민주 기자

“하루 3만5000t 공업용수, 동부산 산단 공급될 것” 

부산시가 장고 끝에 찾은 수는 시설 인근 기장ㆍ일광하수처리장에서 일차적으로 걸러진 하수처리수(1일 4만4000t)를 활용해 공업용수를 만드는 방안이다. 처리장을 거치면 자연 하천에 방류할 수 있을 정도로 물이 정수된다. 이를 이용하면 낙동강 원수를 이용할 때 붙는 물이용부담금 등이 절감돼 800원이면 공업용수 1t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시설 전환 등에 드는 사업비는 총 799억원으로, 공급은 20년 공급계약 민간투자 방식(BTO)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9일 부산 기장군 해수화담수화 시설 야외에 잇는 저수조. 설비 곳곳에 녹슨 자국이 선명하다. 김민주 기자

9일 부산 기장군 해수화담수화 시설 야외에 잇는 저수조. 설비 곳곳에 녹슨 자국이 선명하다. 김민주 기자

수요처는 시설에서 가까운 동부산 산업단지다. 부산시 관계자는 “기존 동부산 산단 입주 기업 600여곳은 공업용수가 공급되지 않아 1t당 2410원의 생활용수를 3만t 넘게 받아 공업용수로 쓴다. 시설에서는 하루 3만6000t의 공업용수 생산이 가능하며, 가격 경쟁력이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민간 업체에서 문의 등 관심을 보이는 곳이 있다. 시설 보수 및 관로 설치 등을 거쳐 2030년부터는 공급을 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