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표 의대 증원 원점으로…“내년 3058명 모집” 내일 발표

 

15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의대에서 의대생들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15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의대에서 의대생들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표 의료 개혁’의 핵심 정책인 의과대학 정원 증원이 1년 2개월의 우여곡절 끝에 원점으로 돌아간다. 16일 정부와 대학은 모두 2026학년도 의대 모집인원을 증원 전인 3058명으로 되돌리기로 의견을 모았다. 앞서 교육부와 대학 측은 증원 원상복구의 전제조건으로 의대생의 복귀를 내걸었지만, 수업 정상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한발 더 물러났다.  

대학 총장과 의대 학장들은 “정부가 먼저 신뢰 회복을 위해 결단한 만큼 수업 참여율도 오를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의대생 단체는 여전히 수업 거부를 고수하고 있어 집단 유급 가능성이 여전하다. 이 경우 내년 1학기에 유급된 24ㆍ25학번과 신입생인 26학번이 1학년 과정을 함께 듣는 ‘트리플링’이 발생하고, 향후 의료 인력 수급에도 차질이 생긴다. 

“복귀율 미미하지만 복귀 학생 보호해야”

 
교육계에 따르면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내년도 의대 정원에 대한 브리핑을 연다. 정부 관계자는 “내부 이견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현실적으로는 3058명으로 돌아가는 것 말고는 학생을 설득할 수 없다는 의료계 의견 등을 수용해 모집인원을 2024학년도 수준으로 줄이기로 발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7일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12개 의료단체가 소속된 한국의학교육협의회(의교협)는 정부와 정치권에 “2026학년도 모집인원을 증원 전 규모인 3058명으로 확정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의총협 회장단 양오봉 전북대 총장, 이해우 동아대 총장 그리고 이종태 의대협회 이사장과지난달 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학생 복귀 및 의대교육 정상화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의총협 회장단 양오봉 전북대 총장, 이해우 동아대 총장 그리고 이종태 의대협회 이사장과지난달 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학생 복귀 및 의대교육 정상화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전국 40개 의대의 수업 참여율은 평균 30%를 밑도는 수준이다. 이 때문에 일부 대학 총장들과 보건복지부 등에서는 증원 철회에 반대하는 의견도 나왔다. 그러나 16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와 교육부, 복지부 등 의정 갈등 관련 부처 관계자들은 비공개회의에서 내년도 의대 신입생 모집 시 증원을 원상 복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날 오후 의대가 있는 40개 대학의 총장 모임(의대교육 선진화를 위한 총장협의회)도 회의를 열어 내년도 의대 모집인원을 증원 이전인 3058명으로 확정하는 방안을 정부에 건의하기로 했다. 협의회 관계자는 “이미 복귀한 학생들을 보호해야 할뿐더러, 모집인원 변경을 위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학들은 법령에 따라 매년 4월 말까지 이듬해 대입전형의 변경사항 을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제출해야 한다. 이후엔 수정이 불가능하다.   

정부와 대학은 증원 원상복구를 계기로 의대생의 수업 복귀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 한 수도권 소재 의대 학장은 “지난달 이후 미미하게나마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정부가 증원 동결로 학생에게 신뢰를 보였기 때문에 학생 태도도 변화할 것”이라고 했다. 지역 국립대의 한 관계자는 “학교마다 사정이 다르나 계절학기 등을 활용하면 지금도 수업 정상화가 늦지 않았다”고 말했다.  

수업 거부→트리플링 불가피…“26학번에 수강우선권 줄 것”

 16일 서울의 한 의과대학 앞에서 시민들이 오가고 있다. 뉴스1

16일 서울의 한 의과대학 앞에서 시민들이 오가고 있다. 뉴스1

 
하지만 의대생들이 얼마나 복귀할지는 미지수다. 지역 의대의 25학번 신입생은 “이미 대다수 학생이 '올해는 날린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 역시 다수의 뜻에 따를 것”이라고 했다. 이날 대한의사협회와 수업 거부를 이끄는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등은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의대생의 수업거부가 이어진다면 4월 이후 상당수 의대에서 집단 유급이 발생한다. 이럴 경우 내년 1학기 의대 교육엔 트리플링을 피하기 어렵게 된다. 전날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는 “전국 32개 대학 본과 4학년이 이달 말까지 수업을 거부하면 유급 처리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학교에 따라 학칙이 다소 다르지만, 의대는 수업일수 4분의 1~3분의 1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유급 처분을 내린다. 실제로 15일 연세대는 본과 4학년 48명에 대한 유급 처분을 확정·통보했다. 대부분 의대는 학사과정이 1년 단위로 진행돼 이번 학기에 유급되면 이듬해 1학기에야 복귀할 수 있다.

올해 유급 처분을 받은 24·25학번이 내년 1학기 복학하면 막 대학을 입학한 26학번을 합쳐 총 3개 학년, 약 1만여명이 함께 수업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수강생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일부가 수업을 제대로 듣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동아대 등은 학칙 개정으로 26학번에 수강 우선권을 주려고 한다. 그간 의대생 설득에 노력했던 서울의 한 의대 교수는 “학습권 피해는 (수업을 거부해 유급 처분을 받는) 학생들이 자초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황규석 의협 부회장(서울시의사회장)은 중앙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의대생들에게 최소한 4월 말까지는 돌아올 수 있도록 시간을 줘야 한다”며 정부와 의대 학장들에게 유급을 미뤄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2년 연속 의사가 배출되지 않는다면, 의료계뿐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큰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 소속 의대생들이 지난해 11월 서울 강남구 스페이스쉐어 삼성역센터에서 확대전체학생대표자 총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 소속 의대생들이 지난해 11월 서울 강남구 스페이스쉐어 삼성역센터에서 확대전체학생대표자 총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정원 확대 방침을 믿고 시설·인력을 확충했던 사립대 의대에선 불만이 나왔다. 수도권의 한 사립대 관계자는 “수백억 원을 투자해 새 건물을 지을 땅도 매입하고 융자도 받아야 하는데 모든 것이 불확실해졌다”고 걱정했다. 학생 정원이 적은 이른바 '미니 의대'의 관계자는 “수업에 돌아오지 않을 학생들 때문에 증원 자체를 완전히 되돌리는 것엔 반대”라고 말했다.  

2년 연속으로 대입에 커다란 변화가 생기면서 수험생과 학부모의 혼란·불만도 예상된다. 서울 대치동의 한 입시 컨설턴트는 “올해 고 3은 학생 수가 많은 황금돼지띠인데다가, 재수생 쏠림이 예상되는 상황인데 의대 정원까지 작년보다 줄어들었다. 의대 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에게 ‘목표 대학을 낮추라’고 조언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