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창업의 길 78. 공경철 엔젤로보틱스 의장

공경철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교수가 7일 오후 본인이 설립한 엔젤로보틱스 대전플래닛에서 웨어러블 로봇을 설명하며 포즈를 취했다. 김성태 객원기자.
국제 무대 수상 자신감으로 재창업

신재민 기자
언제, 왜 창업을 생각했나?
일찍이 석사과정 때부터 웨어러블 로봇 연구를 했지만, 이후 교수가 되고서도 직접 창업에 나서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2014년에서야 막연하게 ‘창업을 하면 하고 싶은 연구개발을 다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첫 창업을 감행했지만 조바심에 저지른 일이 성공할 리 없었다. 내 기술로 창업을 했는데 사업의 전면에 직접 나서지 않았으니, 투자자를 설득하기는 어려웠다. 상황을 뒤집을 한 방이 필요했는데 2015년 국제사이보그올림픽, 일명 사이배슬론이 스위스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회사에 남은 대출금을 싹싹 긁어모아 대회 준비에 돌입했다. 다행히 첫 출전에 동메달을 땄다. 국제무대에 저희 기술을 알리고 돌아오니, 세상이 달라진 것 같았다. 때마침 LG전자 임원진이 우리 기술에 관심을 보였고, 투자 확약까지 이르게 됐다. 사업의 전면에 나서야 할 책임감과 사명감이 느껴졌다. 2017년 엔젤로보틱스라는 이름으로 다시 창업하고 대표이사가 됐다.
LG전자가 지금도 협업 중인가.
LG전자는 엔젤로보틱스의 초기 성장 단계에서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한 이후 지금까지 2대 주주로서 지속적인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단순한 재무적 투자를 넘어 웨어러블 로봇을 포함한 로봇 기술 전반에 걸친 공동 연구, 기술 협업, 미래 방향성 공유 등 실질적인 시너지 창출을 위한 다양한 논의를 계속하고 있다. LG전자가 로봇을 미래 성장축의 핵심 분야로 명확히 규정하고 있는 만큼 전략적 파트너십은 계속해서 진화하고 확장될 것으로 기대한다.

공경철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교수가 7일 오후 본인이 설립한 엔젤로보틱스 대전플래닛에서 현재 연구 개발중인 신형 웨어러블 로봇을 착용하고 포즈를 취했다. 김성태 객원기자
의료용 웨어러블 로봇이 주력
제품군이 어떻게 되나
엔젤로보틱스는 의료용 웨어러블 로봇 분야에서 국내외 최초의 임상 근거와 기술력을 기반으로 한 제품을 상용화하고 있다. 현재 두 가지 주력 제품군을 중심으로 시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첫째는 ‘엔젤렉스 M20’다. 3등급 의료기기로, 보행 재활을 위해 국내 정형외과와 재활의학 분야 120여 개 기관에 설치돼 활발히 활용되고 있다. 특히 세계 최초로 9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무작위 다기관 임상시험을 통해 뇌졸중 환자의 보행 기능 개선 효과를 과학적으로 입증한 바 있다. 둘째는 최근 출시된 보행재활 보조 기기 ‘엔젤슈트 H10’이다. 2등급 의료기기로 등록되어 있다. 보다 경량화된 형태의 웨어러블 로봇으로, 병원 재활 이후 일상 복귀까지의 연속성을 지원하는 모델이다. 이외에도 산업용과 방위산업 쪽으로도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금메달을 딴 워크온슈트 F1은 멋지긴 한데, 입고 돌아다닐 수는 없을 것 같다.
워크온슈트 F1은 일상 보행을 목적으로 개발된 제품이 아니라 기술의 한계를 시험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기 위한 기술 데모 플랫폼이다. 쉽게 말해, 서킷에서 최고 속도를 겨루기 위해 설계된 F1 자동차로 골목길을 달릴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로봇이 외부 보조장치 없이 스스로 균형을 유지하며 빠르게 보행할 수 있도록 개발됐다. 특히 자체 개발한 신체 균형 센서와 고도화된 제어 알고리즘을 통해 목발 없이 보행 가능한 첫 번째 웨어러블 로봇이라는 점에서 기술적 전환점을 만들었다고 자부한다.

지난해 10월 공경철 KAIST 기계공학과 교수가 이끄는 엑소랩·무브랩·엔젤로보틱스 공동 연구팀이 제3회 사이배슬론 웨어러블 로봇 부문에 출전해 우승을 차지했다. 사진 KAIST
산업화 단계 접어든 웨어러블 로봇
창업 이후 가장 어려웠던 점을 꼽으라면.
교수를 꿈꾸며 한창 공부하고 연구할 때엔 창업은 꿈도 꾸지 않았었는데, 막상 창업하고 회사를 이끌다 보니 오히려 이게 적성에 맞는 길이었나보다 싶을 정도로 신나고 재미있게 했다. 굳이 힘들었던 점을 꼽자면, 2014년 첫 창업 땐 원하는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니 정신적으로 힘들었지만, 2017년 대표이사로 다시 창업한 이후엔 너무 많은 일을 감당해야 하다 보니 육체적으로 어려웠다. 그렇지만 힘들만 하면 좋은 일들이 터지곤 해서, 피곤한 줄 모르고 여기까지 달려온 것 같다.
교수로서도 바쁠 텐데.
웨어러블 로봇과 같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과정에서는 기업가로서의 입장과 교수 또는 연구자로서의 입장이 모두 필요하다. 로봇산업이 기술적 초격차와 사업적 유효성을 동시에 입증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일본의 사이버다인, 미국의 엑소바이오닉스 등 유명한 로봇 스타트업 회사들이 모두 교수창업 기업이다.
앞으로의 비전은.
웨어러블 로봇은 고령화 시대에는 일상 속 건강관리 파트너로, 저출산 사회에는 가사ㆍ육아 보조자로, 산업 현장에서는 근로자의 신체 보호 장비로 확장 가능한, 다차원적 응용력을 가진 기술 플랫폼이다. 어느덧 웨어러블 로봇은 기술적인 주목을 넘어서 실제 시장에서 검증받고 산업화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새로운 ‘제품’을 넘어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내는 것, 더 나아가 인간의 능력을 재창조하는 기업으로 성장해 나가는 게 우리의 비전이다.
배현민 KAIST 창업원장

배현민 KAIST 전자공학과 교수
최주열 현대기술투자 투자본부장

최주열 현대기술투자 투자본부장

최준호 과학전문기자, 논설위원 joon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