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체육 신세계

패러글라이딩은 비행 거리(크로스컨트리)와 착륙 정확도(정밀 착륙)를 겨루는 레포츠다. 생활체육 대회에서는 정밀 착륙만 가늠하는데, 양궁 과녁처럼 착륙 지점 중심부로 갈수록 점수가 높아진다. 김홍준 기자
봄. 운동이 기지개를 켠다. 학교와 각종 단체에서 운동회가 열린다. 오는 24일엔 2만여 명이 참가하는 전국생활체육대축전도 전남 일대에서 개최된다. 장씨는 돈으로 셀 수 없다지만 생활체육의 경제적 효과는 크다. 지난 1월 정부가 발표한 2023년 스포츠산업 매출은 81조원에 달했다. 역대 최고치다. 가천의대 연구팀은 체육 활동을 충실히 한 65세 이상 노년층은 의료비를 8%가량 덜 낸다고 분석했다. 연 43만원 정도다.
즐기되 잘하면 덤. 그게 생활체육이다. 간혹 ‘재야의 고수’ 반열에 오르는 이도 나온다. 지난해 국민생활체육조사 결과 60.7%는 “주 1회 30분 이상 규칙적인 체육 활동을 한다”고 답했다. 우리나라 인구수를 대입하면 3000만 명 안팎이다. 이들이 지난해 가장 많이 참여한 종목은 걷기(41.9%). 이어 보디빌딩·헬스(14.6%), 등산(12.1%), 필라테스·요가·태보(8.5%), 골프·파크골프와 수영(각 6.4%) 등이 뒤를 잇는다.
특히 최근엔 장씨가 회원으로 활동하는 풋살이나 피클볼·파크골프·필라테스·패러글라이딩 등 ‘ㅍ(피읖)’으로 시작하는 신상 생활체육에 동호인들의 발길이 쏠리고 있다. 1030은 풋살, 4050은 피클볼, 6070은 파크골프 등 세대별 선호가 다양한 점도 생활체육 인기몰이에 한몫하고 있다는 평가다. 생활체육, 특히 'ㅍ 스포츠'의 세계로 들어간다.
파크골프·피클볼·풋살·필라테스… ‘ㅍ 스포츠’ 인기

전남 구례의 파크골프장에서 동호인들이 파크골프를 즐기고 있다. 김홍준 기자
“네. 그래서 저희 중앙SUNDAY에서 함께 달려보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기사체가 아닌 ‘스포츠 중계체’로 말이죠. 캐스터·해설자·리포터만 가상의 인물임을 고려하십시오.”(해설자·이하 해)
캐=“그런데 생활체육이 뭔가요.”
해=“국민체육진흥법에 따르면 ‘자발적’이고 ‘일상적’인 체육활동입니다. 걷기도 생활체육인 이유입니다.”
캐=“걷기가 참여율이 가장 높은 생활체육이죠. 요즘 공원에서 걷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공원을 보면 골프채를 들고 작은 홀을 도는 이들도 많더군요.”
피클볼, 뉴스포츠 중 가장 빠른 성장
해=“말 그대로 파크골프입니다. 2024 국민생활체육조사에 따르면 골프(파크골프·그라운드골프 포함)는 생활체육 동호회 가입률이 가장 높습니다. 1년 새 9.7%에서 15.3%로 올랐어요. 특히 파크골프 인기가 큰 몫을 했을 것으로 봅니다. 파크골프는 일반 골프의 축소판으로 보면 됩니다. 지난해 회원 수는 18만4000여 명으로 4년 전 4만5000명의 네 배에 달합니다.”
캐=“초고속 성장이군요. 잠시 마이크를 현장으로 돌립니다.”
리포터 1=“네. 여기는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파크골프장입니다. 2만200㎡ 넓이에 18홀로 구성된 이곳에선 100여 명의 ‘선수들’이 라운딩 중입니다. 파3(45m) 3번 홀. 의정부에서 온 68세 문모 선수, 티샷! 공이 구릅니다. 홀인원? 홀인원? 아, 아쉽습니다. 티샷 때 쓰던 채로 퍼팅해 버디에 성공합니다. 이곳에선 18홀을 돌면 4000원을 내야 하지만 그마저 받지 않는 곳도 많습니다. 지난해 10월 기준 405개. 4년 내 120곳이 더 만들어질 예정입니다. 예약은 홀인원보다 어렵습니다. 특히 6070세대에 인기가 높습니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월드컵파크골프장에서 파크골프 빠진 동호인들. 김홍준 기자
리포터 2=“72세 민해자 선수, 파 세이브. 전남 구례군파크골프장 6번 홀에서 선두로 나섭니다. 같은 조 남성들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듭니다. 민 선수, 3년째 파크골프에 빠진 이유가 있습니까.”
민=“일단 과격하지 않아요. 필드도 평지고요. 그래서 여성이 남성 못지않게 할 수 있죠. 제가 먼저 내기를 걸 정도입니다. ‘그린피’ 부담도 거의 없고요. 또 없는 게 있네. 해저드가 없어요, 호호호.”
캐=“일각에서 ‘뉴스포츠’란 단어를 붙인 종목이군요. 지난해 11월 종주국인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한국의 파크골프 열풍을 취재했을 정도로 붐입니다. 인기가 급증하자 노년표를 의식한 지자체들이 우후죽순 파크골프장을 만든다는 비판도 나오더군요. 그런데 뉴스포츠로 가늠하자면 피클볼도 있지 않습니까.”

고양시 피클볼 전용구장에서 박초윤씨가 스트로크를 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강 교수=“20여 년 전 미국 연수 중 처음 접했습니다. 작은 카운티마다 피클볼 전용 구장이 있을 정도로 인기였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도, 미 프로농구(NBA) 스타 르브론 제임스도 수십 년째 빠져 있습니다. 포뮬러원(F1) 선수들도 즐기고요. 제가 대한피클볼협회 초대 회장으로 있던 2018년 동호인 수가 100여 명이었는데 현재는 3500명입니다. 숫자는 많지 않지만 뉴스포츠 중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선 실내 테니스장이 피클볼장으로 바뀌고 있을 정도죠. 2028년 LA 올림픽 시범종목에 포함될 가능성도 있고요.”
리포터 3=“말씀하시는 순간, 경기도 고양시 피클볼 전용 구장에서 뜨거운 한판 승부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스매싱! 혼합복식 박초윤·김석환 조가 서재선·전삼영 조를 제압합니다. 박 선수, 몇 년째 하시는지요.”
박=“4년 됐습니다. 코로나19 모임 제한이 오히려 피클볼로 저를 이끌었습니다. 두 명이면 되니까요. 테니스보다 격렬하진 않지만 운동량이 제법 많습니다. 탄성이 작은 공이 오히려 랠리를 길게 만들어요. 그래서 테니스와 배드민턴에 부담을 느끼는 4050세대가 많이 찾아요. 서재선 언니도 마찬가지죠.”

우리나라 최초의 피클볼 전용 구장인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피클볼장에서 서재선씨가 공격하고 있다. 피클볼은 1965년 미국에서 테니스와 배드민턴을 혼합해 만들어졌고 2010년대 후반 우리나라에 본격 보급됐다. 최근 5년 새 회원이 30배 가까이 증가할 정도로 성장세가 가파르다. 김홍준 기자
캐=“365일 운동하는 사람도 있지만 한 주에 1회 30분 이상 운동하지 않는 이들도 39.3%나 됩니다. 그중 1년간 운동을 아예 안 한 사람도 73.6%라죠. 시간이 없어서(70.4%)와 관심이 없어서(50.3%)가 주된 이유로 꼽힙니다. 그런 가운데 없는 시간 쪼개 퇴근 후 옥상으로 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풋살족입니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장영진(39·서울 마포구 직장인)씨=“여성 풋살족 사내 동호회 최고참입니다. 후배들이 그러더군요. ‘스트레스를 날려버려 근속 연수가 늘어날 것 같다’ ‘이직하려다 참게 된다’고요. 동감합니다. 처음엔 포지션이 뭔지도 모르고 뛰었는데 이젠 안 하면 허전합니다. 소리 지르고, 상대 팀 뒷담화하고, 끝나면 순댓국 먹고. 경기 후 ‘고생했어’라며 주고받는 한마디는 얼마나 달콤한지요. 참, 유니폼과 풋살화가 은근히 귀여운 게 많아 쇼핑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한 사내 여성 풋살 동호회 회원들이 서울 마포구의 풋살장에서 훈련하고 있다. [중앙포토]](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2504/19/b2c2c996-b5f8-44de-a79d-2ed0c671f671.jpg)
한 사내 여성 풋살 동호회 회원들이 서울 마포구의 풋살장에서 훈련하고 있다. [중앙포토]

경기도 고양시 롯데몰 옥상 구장의 풋살족. 김홍준 기자
“생활체육 사고, 봄철 몰려 유의해야”
해=“그렇습니다. 수강 경험이 24.4%에 달해 수영(20.2%)을 앞질렀습니다. 여성이 가장 동호회 활동을 하고 싶어 하는 부문(25.1%)이자 ‘시간 없어서 운동 못 하는’ 사람들이 걷기 다음으로 하고 싶어 하는 운동입니다.”
리포터 5=“여기는 서울 마포구의 한 필라테스 스튜디오입니다. 마침 중년 남성 한 명이 배럴(원통 모양의 기구를 이용한 운동) 중입니다. 운동하니 어떻습니까.”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5 서울국제스포츠레저산업전(SPOEX)에서 한 관계자가 필라테스 기구 시범을 선보이고 있다. [뉴시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2504/19/eb48c4c1-60ce-45b6-89cf-314eb72368d7.jpg)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5 서울국제스포츠레저산업전(SPOEX)에서 한 관계자가 필라테스 기구 시범을 선보이고 있다. [뉴시스]
김경철(58·서울 마포구)씨=“몸치입니다. 허리통증을 달고 살아 격하지 않은 운동을 찾았습니다. ‘몸통 일자, 골반 정렬.’ 강사 말대로 하니 코어에 힘이 실리고 통증이 줄더군요. 처음엔 반바지를 입고 했는데 레깅스 입는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이젠 저도 레깅스족이 됐고 매트도 장만했습니다.”
해=“왜 의류·장비 등 스포츠산업이 커지는지, 왜 걷기 다음으로 필라테스를 선호하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군요. 전국에 스튜디오가 1500개가 넘어 과열이란 평도 있습니다. 캐스터님은 어떤 생활체육을 하십니까.”

전남 곡성의 너른 들판 위를 나는 패러글라이딩 체험. 김홍준 기자
캐=“전 패러글라이딩을 합니다. 정밀착륙으로 저녁 내기를 하곤 하죠. 생활체육대축전 종목에도 포함될 정도로 요즘 인기 급등세입니다. 뉴스포츠 고참격인 게이트볼, 파크골프 축소판인 그라운드골프, 국내 빅4 스포츠인 축구·야구·농구·배구, 그리고 산악 동호인들도 대축전에 모여 실력을 겨룹니다. 즐기거나, 투혼을 불사르거나. ‘재야의 생활체육 고수’도 곧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클래식 스포츠가 탄탄히 받치고 뉴스포츠가 바람을 일으키는 모양새입니다. 마지막으로 강재헌 인제대 백병원 교수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강 교수=“생활체육은 65세 이상 노인 의료비를 8% 줄여준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한 해 노인 한 명 의료비가 평균 534만원이니 40만원이 넘습니다. 이는 젊은 층에도 해당합니다. 유대감 형성과 신체활동을 통한 심리적 안정, 체력 향상은 나이를 따지지 않으니까요. 다만 특히 봄에 생활체육 사고가 몰리니 유의 바랍니다.”
캐=“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중계를 마칩니다. 생체 메인스타디움이었습니다.”
생활스포츠지도사로 명칭이 바뀐 건 10년이 됐지만 아직도 응시생들은 ‘생활체육지도자’라고 부른다. 말을 줄여 ‘생체 시험’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응시자 수는 가파르게 늘고 있다. 국민체육진흥공단에 따르면 2020년 2만7987명에서 지난해엔 4만3700명으로 4년 새 1.6배나 늘었다. 필기시험 합격률도 50% 안팎이었지만 지난해 37%에 불과할 정도로 난도가 높아졌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등산은 걷기, 보디빌딩(헬스)에 이어 생활체육 참여율 3위에 이른다. 경남 합천과 경북 성주에 걸쳐 있는 가야산에서 등산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김홍준 기자
등산 분야에 응시하는 오지혜(44·경기도 고양)씨는 “암벽 등반을 10여 년간 하면서 몸으로만 배웠지 이론적인 부분은 더 공부해야겠다 싶어서 응시하게 됐다”며 “직접 하는 생체는 물론 가르치는 생체도 의미가 클 것 같다”고 밝혔다. 조여정(57·경기도 시흥)씨는 당구 생체지도자 자격증을 이미 딴 데 이어 이번엔 게이트볼에 응시한다. 조씨는 “당구도, 게이트볼도 어르신들과 함께하기 위한 것인데 자격증이 있어야 훈수를 둬도 씨알이 먹힐 것 같았다”며 웃었다. 체육시설법은 생활체육지도자 자격증이 있어야 체육관이나 학교·직장·공공기관 체육 시설에서 가르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퇴직 후 인생 2막을 위해 준비한다는 응시자도 적잖다. 김모(59·서울 은평구)씨는 “요즘 핫한 파크골프 지도자 자격증을 딴 뒤 퇴직 후 관련 분야 사업을 꾸릴 생각”이라며 “아무래도 자격증 하나라도 더 있어야 든든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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