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범죄수익 9조원 돌파…대형 사기 급증, 환수전담부 1곳뿐

법무부와 대검찰청이 서울남부지검과 부산지검에 범죄수익환수부 정식 직제화를 추진한다. 뉴스1

법무부와 대검찰청이 서울남부지검과 부산지검에 범죄수익환수부 정식 직제화를 추진한다. 뉴스1

지난해 수사기관의 범죄수익 몰수·추징 보전액이 역대 최대인 9조원을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검찰이 실제 환수한 금액은 1.5%인 1526억원에 불과했다. 검찰은 체계적인 범죄수익 환수를 위해 서울남부지검과 부산지검에 범죄수익환수부 정식 직제화를 추진한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검찰의 범죄수익 몰수·추징 보전액은 9조 344억원이었다. 2022년 3조 4484억원에서 2년 만에 2.6배로 늘어났다. 범죄수익이 급격하게 증가한 것은 ‘SG발 주가조작’과 같은 대형 금융범죄와 스캠코인 사기와 같은 각종 신종 지능 범죄가 늘어났고, 동시에 지난해 가상자산합수부가 출범하는 등 이에 대응한 수사도 확대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같은 기간 검찰이 실제 환수한 범죄수익은 993억원에서 1526억원으로 1.5배 늘어나는 데 그쳤다. 범죄수익이 실제 수익이 아닌 거래 총액으로 산정되는 등 징벌적으로 이뤄지고 지능 범죄 사건의 수사력이 올라갔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지만, 환수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SG(소시에테제네랄)증권발 폭락 사태와 관련해 주가조작을 주도한 의혹을 받는 투자컨설팅업체 H사 라덕연 대표가 2023년 5월 11일 오전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SG(소시에테제네랄)증권발 폭락 사태와 관련해 주가조작을 주도한 의혹을 받는 투자컨설팅업체 H사 라덕연 대표가 2023년 5월 11일 오전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마약 수사 경험이 많은 한 검사는 “범죄자들이 무서워하는 건 처벌보다 오히려 추징금이다. 변호사를 찾아갈 때 형량보다 오히려 추징액수를 줄여달라고 하는 요구가 있을 정도다”며 “범죄수익의 철저한 환수 없이는 범죄를 뿌리 뽑기 어렵다”고 했다.

특히 범죄수익 추징 집행은 공판 절차의 일부로 형사소송법상 검찰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다. 심우정 검찰총장도 지난해 취임사에서 “범죄로부터 1원의 수익도 얻을 수 없도록 범죄수익 환수에도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범죄수익 환수 역량 강화를 위해 지난해 범죄수익 산정에 관한 매뉴얼 제작 TF를 대검에 신설했고 전국의 범죄수익 환수 전문관의 정원도 기존 2명에서 올해 9명으로 늘렸다.


중앙지검 환수액, 특경·특활비 수준

 

서울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부(부장 유민종)가 지난해 이희진(38)씨 주거지에서 압수한 고가 시계. 사진 서울중앙지검

서울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부(부장 유민종)가 지난해 이희진(38)씨 주거지에서 압수한 고가 시계. 사진 서울중앙지검

하지만 범죄수익 환수 강화를 위해선 결국 범죄수익 전담팀을 직제화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현재 전국 18개 검찰청에서 범죄수익환수부가 있는 청은 서울중앙지검이 유일하다. 나머지 17개 청에서는 주로 공판부 소속 검사와 수사관 소수가 범죄수익 환수 업무를 겸직하고 있다.

대검 관계자는 “범죄수익환수는 수사 초기 집중적인 재산 확보를 시작으로 수사와 공판 전 과정에 걸쳐 이뤄지는 연속성이 중요한 업무다”며 “차명 재산은 민사소송을 통해 환수해야 하고, 가상자산 등 첨단화된 은닉 기법도 꾸준히 숙지해야 한다. 전담 부서가 설치돼 체계적이고 끈질긴 관리가 꼭 필요한 분야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해 부장검사 1명과 평검사 3명 등으로 구성된 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부가 지난해 추징한 금액은 551억원에 달한다. 이는 국회에서 삭감한 검찰 특활비·특경비(587억원) 수준이다. ‘청담동 주식 부자’ 이희진씨가 지인과 친인척 명의의 부동산이나 가상자산 등으로 숨겨놓은 범죄수익 123억원도 지난해 모두 추징했다.

남부·부산지검에 범수부 정식 직제화 추진

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부의 성과를 확인한 검찰과 법무부는 올해 남부지검과 부산지검에 범죄수익환수부 출범을 추진한다. 전국의 주요 경제범죄가 몰리는 남부지검의 지난해 범죄수익 추징·몰수 보전액은 6조 3667억원이다. 전체 검찰청(9조 334억원)의 70% 수준이다. 부산지검의 범죄수익 추징·몰수 보전액 역시 6790억원으로 중앙지검(6109억원)보다 많다. 하지만 남부지검과 부산지검의 실제 추징 집행액은 각각 119억원과 87억원에 그쳤다.

금융수사 경험이 많은 한 부장검사는 “최근 남부지검에 가상자산합수부가 생기며 범죄수익 환수 필요성이 더 커졌다”며 “예를 들어 20억원의 횡령 배임 사건이 발생해 징역 5년이 확정돼도 범죄자들은 몸으로 때우면 남는 장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형사처벌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범죄수익을 범죄자들이 가져갈 수 없다는 인식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법무부는 지난 3월 말 남부지검과 부산지검에 범죄수익환수부를 정식 직제화하는 내용의 직제 개편(요구)안을 행안부에 제출했다. 지난 16일엔 행안부 관계자가 대검찰청을 찾아 범죄수익환수부 설치 필요성 등을 듣는 간담회를 가졌다고 한다. 부처 직제 개편은 행안부 심의를 거쳐 결정된다.

최근 범죄자들이 범죄수익을 은닉하는 방법으로 가상화폐를 이용하고 있다. 그래픽

최근 범죄자들이 범죄수익을 은닉하는 방법으로 가상화폐를 이용하고 있다. 그래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