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변호사 남편이 판사에 밑밥"…법원 뒤집은 '뇌물죄 전쟁'

전주지법 소속 A부장판사의 아내가 지난해 3월 B·C변호사 측과 임대차 계약을 맺은 사무실에서 B변호사의 초등학생 아들이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다. A부장판사 아내는 이곳에서 바이올린 교습소 개설을 준비했지만, 건물 용도 변경이 불발돼 무산됐다. 사진 B변호사 아내

전주지법 소속 A부장판사의 아내가 지난해 3월 B·C변호사 측과 임대차 계약을 맺은 사무실에서 B변호사의 초등학생 아들이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다. A부장판사 아내는 이곳에서 바이올린 교습소 개설을 준비했지만, 건물 용도 변경이 불발돼 무산됐다. 사진 B변호사 아내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도 고발 

전주지방법원이 발칵 뒤집혔다. 소속 부장판사와 그의 고교 선배이자 전주 지역 로펌(법무법인) 대표 변호사가 뇌물 및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위반 의혹으로 경찰에 고발당하면서다. 바이올리니스트인 판사 아내가 해당 변호사 소유 사무실을 몇 달씩 무상으로 사용하고, 변호사 자녀의 바이올린 레슨비 명목으로 현금 300만원과 여러 선물을 받은 게 위법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해당 부장판사와 변호사는 "청탁과 무관하다"고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진실 공방으로 흐르고 있다.

25일 전북경찰청 등에 따르면 전주지법에 재직 중인 부장판사 A씨(43)와 변호사 B씨(47)를 형법상 수뢰·뇌물공여죄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수사해 달라는 고발장이 이날 전북경찰청에 송달됐다. 고발인은 A부장판사의 고교 선배인 B변호사 아내다. 경찰 관계자는 “고발장 내용을 검토한 후 담당 부서를 배당할 방침”이라며 “고위공직자범죄처(공수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상 현직 판사는 공수처 수사 대상이어서 공수처에 알릴 수밖에 없는데, 공수처가 이 사건을 직접 수사하거나 다시 전북경찰청에 이첩할 수 있다”고 했다.

B변호사 아내는 고발장에서 “남편 로펌의 소송 사건들은 A부장판사가 소속된 법원에서 다루기 때문에 두 사람은 직무상 관련성이 있다”며 “남편은 A부장판사 부부에게 지난해 현금 300만원을 비롯해 향수·옷·돌반지 등 최소 370만원 이상의 금품을 줬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평소 남편이 ‘A부장판사가 우리 로펌을 많이 도와주고 앞으로도 도움받을 일이 많아 이렇게 밑밥을 깐다’고 언급했다”고 했다. ‘B변호사가 A부장판사가 퇴직하면 본인 로펌으로 데려오겠다’라고도 말했다는 게 B변호사 아내의 주장이다.

전북 전주시 만성동 전주지방법원 전경. A부장판사가 근무하고 있다. 김준희 기자

전북 전주시 만성동 전주지방법원 전경. A부장판사가 근무하고 있다. 김준희 기자

판사 아내, 변호사 소유 사무실 ‘무상 사용’ 의혹 

고발장엔 B변호사가 로펌 공동 대표인 C변호사와 함께 A부장판사의 아내에게 바이올린 교습소 공간을 무상으로 제공했다는 주장도 담겼다. A부장판사 아내는 로펌 아래층에 있는 두 변호사 소유 사무실(111㎡)을 빌려 바이올린 교습소 영업을 준비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방음벽과 방 2개, 거실 등을 갖춘 해당 공간엔 그랜드 피아노도 있었다고 한다.

A부장판사 아내는 지난해 3월 두 변호사 측 법인과 1년짜리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하며 “용도 변경과 교습소 허가가 완료되는 시점부터 보증금 1000만원과 월세 110만원을 지급한다”는 조건을 명시했다. 그러나 관할 지자체의 용도 변경 허가 불허로 교습소는 개설되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 해당 공간은 비어 있다.


그러나 A부장판사 아내가 B·C 변호사 소유 사무실을 지난해 10월까지 약 8개월간 무상으로 사용한 것은 청탁금지법상 ‘용역의 무상 제공’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는 게 B변호사 아내 측 주장이다. 국민권익위원회 해석에 따르면 공직자 또는 그 배우자가 직무 관련자에게 금전·물품·용역 등을 무상으로 받는 경우, 직무 관련성과 대가성이 인정되면 법 위반으로 간주될 수 있다.

A부장판사의 아내가 지난해 바이올린 교습소 개설을 준비하기 위해 B·C 변호사 측과 임대차 계약을 맺은 사무실. 용도 변경 불허로 정식 영업을 못하고, 지난해 10월쯤 문을 닫았다. 사진은 지난 21일 모습으로 사무실이 텅 비어 있다. 김준희 기자

A부장판사의 아내가 지난해 바이올린 교습소 개설을 준비하기 위해 B·C 변호사 측과 임대차 계약을 맺은 사무실. 용도 변경 불허로 정식 영업을 못하고, 지난해 10월쯤 문을 닫았다. 사진은 지난 21일 모습으로 사무실이 텅 비어 있다. 김준희 기자

견과류 상자 속 300만원…“뇌물” “레슨비” 논란

또 B변호사의 초등학생 아들은 지난해 3~10월, 모두 27차례(화상 수업 8차례 포함)에 걸쳐 각 1~2시간씩 교습소로 꾸민 공간 등에서 A부장판사 아내에게 바이올린 레슨을 받았다. B변호사 아내는 “처음엔 아들이 계이름을 모르는 데다 전주까지 가서 배우고 싶지 않다고 했는데, 바이올린 선생(A부장판사 아내)이 아들을 재능 기부로 무료 수업을 해준다고 하고 남편도 두 달간 졸라 레슨을 시키게 됐다”고 했다. B변호사 부부 집은 전북 외 지역에 있다.

B변호사가 A부장판사 부부에게 아들의 레슨비와 추가 사례금 명목으로 수백만원을 일시불로 건넨 정황도 고발장에 담겼다. 지난해 9월 4일 오후 9시~9시30분 로펌 건물 지하 주차장에서 B변호사가 A부장판사 부부에게 추석 선물이라며 현금 300만원이 든 봉투가 담긴 견과류 상자를 줬다는 게 당시 함께 있었던 B변호사 아내 주장이다. 청탁금지법상 공직자 또는 그 배우자가 직무 관련자로부터 1회 100만원 또는 연 300만원을 초과해 금품을 수수할 경우 형사 처벌 대상이 된다. 금액이 기준 이하라도 직무 관련성이 있다면 과태료 부과 대상이다.

이와 함께 B변호사는 A부장판사 부부에게 수시로 선물을 건넸다고 한다. 고발장에 따르면 B변호사는 지난해 5월 어린이날을 맞아 10만원 상당의 A부장판사 아들 옷을 사줬다. 지난해 6월 A부장판사 아들 돌잔치 땐 한 돈(당시 약 39만원)짜리 순금 돌반지를 선물했다. A부장판사 아내는 “돌반지 잘 받았다. 고맙다”는 메시지를 B변호사 아내에게 보냈다. 이외에도 B변호사는 지난해 8월 2일 A부장판사 아내 생일에 19만원 상당의 향수를 선물로 줬다.

B변호사가 지난해 9월 4일 A부장판사 부부에게 추석 선물로 건넨 견과류 선물 세트. 이 안에 현금 300만원이 든 봉투가 들어 있었다는 게 B변호사 아내 주장이다. 사진 B변호사 아내A부장판사 아내가 지난해 6월 B변호사 아내에게 보낸 카톡 메시지. B변호사가 A부장판사 아들 돌잔치를 기념해 한 돈(당시 약 39만원)짜리 순금 돌반지를 선물하자 감사 인사를 전하는 내용이 담겼다. 사진 B변호사 아내

판사 “청탁과 무관…아내, 사무실 거의 안 써”

이와 관련, A부장판사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B변호사로부터 사건 청탁을 받은 적이 없고, 배석 판사도 있어서 재판에 영향을 줄 수도 없다”며 “아직 사직할 마음이 없는 데다 나중에 개업하더라도 해당 로펌에 갈 생각이 없다”고 반박하며 법 위반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그러면서 “올해는 B변호사와 법정에서나 보고, 따로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

로펌 사무실 무상 사용 의혹과 관련해선 “저희 부부가 이쪽 지역에 대해 모르고 아는 사람도 없다”며 “B변호사 소개로 알게 된 C변호사가 ‘로펌 밑에 공간이 비어 있다’고 해서 정식으로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약정상 교습소를 정식으로 열면 보증금과 월세를 주기로 했는데 용도 변경 자체가 불발되는 바람에 월세를 낸 적은 없다”며 “아내가 제 사법연수원 동기 부장판사에게 무료로 바이올린 수업을 해주고, B변호사 아들 레슨을 한 것 외에는 사무실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전주지법 내에서 부장판사급 정도는 아내가 바이올린 교습소 개설을 준비 중이었던 사실을 알았지만, 정식으로 수강생을 모집하거나 교습소를 운영하진 않았다”고 A부장판사는 설명했다.

A부장판사는 “아내 학력·경력과 악기 연주 실력은 국내 톱클래스 수준으로 지방에서 이런 강사에게 레슨을 받는 건 드물다”며 “B변호사 아내가 바이올린을 한 번도 안 잡아본 아들을 콩쿠르에 보내 입상시켜야 한다고 해 제 아내가 돈도 받지 않고 전주뿐 아니라 서울에서도 길게는 한 번에 3~4시간씩 성심성의껏 가르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B변호사가 준 견과류 상자에 현금이 들어 있었다는 사실은 나중에서야 아내에게 들었다”며 “아내가 이튿날 B변호사에게 전화했더니 '아들의 1년치 레슨비를 준 것'이라고 해 제가 전주에서 근무하는 동안 아내가 (B변호사 아들을) 잘 가르치겠다고 했던 부분”이라고 했다. B변호사가 준 300만원은 ‘뇌물’이 아니라 A부장판사 아내의 ‘노동의 대가’라는 의미다.

A부장판사 아내와 B·C 변호사가 지난해 3월 맺은 사무실 임대차 계약서 중 특약 사항. 사진 A부장판사

A부장판사 아내와 B·C 변호사가 지난해 3월 맺은 사무실 임대차 계약서 중 특약 사항. 사진 A부장판사

변호사 측 “합법적 임대 계약, 아내 주장 허위”

B변호사 측은 “A부장판사 부부에게 돌반지 등을 준 건 맞지만, 오랫동안 알고 지낸 동문 사이에 도리를 지키는 통상적인 수준이었다”며 “사건 청탁과는 무관하고, 위법한 일을 한 사실도 없다”고 주장했다. “아내의 주장은 대부분 사실이 아니거나 악의적으로 부풀려졌다”는 취지다. C변호사 측도 “(A부장판사 아내와) 합법적으로 임대차 계약을 맺었으며, 판사 아내여서 특혜를 준 게 아니다”라고 했다. 일각에선 “부동산 경기 불황으로 만성동 법조타운 내 건물 공실률이 높아 건물주가 임차인에게 임대료를 1년 이상 받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정재규 전주지법원장은 “해당 의혹은 처음 듣는 얘기”라며 “수사기관에서 관련 통지가 오면 법원 자체적으로 사실관계를 조사한 뒤 필요한 조처를 할 계획이고, 징계 여부는 감사 규정에 따라 대법원에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의혹은 B변호사의 아내가 지난해 10월 남편과 외도한 것으로 의심되는 여성을 상대로 전주지법 민사9단독에 손해배상(위자료) 청구 소송을 제기하면서 불거졌다. 상대 여성은 “B변호사가 이혼남인 줄 알고 만났다. 나도 속은 피해자”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B변호사는 아내를 상대로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