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당선시킨 美마이너그룹 "다시 한다면 절대 안 뽑는다" [트럼프 100일]

“만약 오늘 다시 투표를 한다면 절대 트럼프는 뽑지 않을 겁니다.”
 
미국 내 최대 히스패닉 단체인 ‘라틴아메리카시민연맹(LULAC)’의 데이비드 크루즈 대변인은 26일(현지시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100일에 대한 평가를 요청받자 이같이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3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흑인 및 소수인종에 대한 학교의 배려를 "인종 차별"로 규정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이를 들어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3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흑인 및 소수인종에 대한 학교의 배려를 "인종 차별"로 규정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이를 들어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유를 묻자 그는 “트럼프 2기를 경험한 것 이상 뭐가 더 필요하겠느냐”고 반문하며 “소수인종들은 합법적 이민자까지 표적으로 삼는 트럼프의 정책에 경악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미국을 배타적 인종주의의 과거로 되돌리려는 트럼프의 비전을 단호히 거부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흑인·히스패닉·아시안 등 미국 내 소수인종과 노동자 계층은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세가 강했지만 상당수가 트럼프에게 투표했기 때문이다.

미국 대선 직전이던 지난해 10월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는 흑인 정치 참여 단체 콜렉티브 팩(Collective PAC)의 쿠엔틴 제임스 대표, 북미 최대 산별 노조 ‘유나이티드 스틸워커스(USW)’의 제스 캄 대변인, 히스패닉 단체 라틴아메리카시민연맹(LULAC)’의 도밍고 가르시아 전 의장. 중앙일보

미국 대선 직전이던 지난해 10월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는 흑인 정치 참여 단체 콜렉티브 팩(Collective PAC)의 쿠엔틴 제임스 대표, 북미 최대 산별 노조 ‘유나이티드 스틸워커스(USW)’의 제스 캄 대변인, 히스패닉 단체 라틴아메리카시민연맹(LULAC)’의 도밍고 가르시아 전 의장. 중앙일보

 
그러나 이들의 입장은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지 불과 100일만에 완전히 달라졌다.

중앙일보가 대선 직전이던 지난해 10월 히스패닉 단체 LULAC를 비롯해 흑인 유권자 단체  콜렉티브 팩(Collective PAC), 최대 산별 노조인 유나이티드 스틸워커스(USW)의 대표자들을 인터뷰했을 때만 해도 이들은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엔 절대 민주당에 대한 몰표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6개월만에 다시 본지의 인터뷰에 응한 이들 단체의 관계자들은 “트럼프가 재집권한 지난 100일은 재앙의 기간이었다”며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이들은 특히 ‘제조업을 부흥시키고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오히려 미국 서민들에게 인플레이션 부담으로 되돌아 온 상황을 강하게 비판했다. 물가 문제는 전임 바이든 행정부을 무너뜨린 결정적 요인이었다.

지난 5일 로스앤젤레스 시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트럼프를 형상화한 풍선과 깃발을 들고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5일 로스앤젤레스 시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트럼프를 형상화한 풍선과 깃발을 들고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다만 흑인단체와 철강노조와의 인터뷰는 “조합 내의 이견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익명을 전제로 비공식 입장을 전달한다는 조건으로 진행됐다.

노조 관계자는 “지난 3개월은 유색인종이 다수 포함된 노동자 계층에게는 지옥과 같은 기간이었다”며 “‘미국을 위대하게 만든다’던 트럼프의 발언은 증오로 가득차 있었고 미국을 분열시키고 공공기관의 신뢰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모두가 분노해야 할 상황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노동자 계층을 또 다시 인종·성별 등으로 대립하도록 유도하는 답답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흑인 단체는 “트럼프는 지난달 ‘진실과 정신 회복’이라는 제목의 행정명령을 통해 역사를 왜곡하고 흑인 사회 전체와의 약속을 져버렸다”며 “흑인 단체들은 트럼프의 역사·문화 전쟁에 맞설 것이고, 흑인들의 정치 참여를 확대하는 운동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JD밴스 부통령이 스미소니언 재단의 모든 자산과 프로그램을 심사해 ‘미국적 가치를 저하시키거나 미국인을 인종 문제를 근거로 분열시키는 내용을 금지하는 권한’을 부여했다. 당시 예시로 들었던 대상이 스미소니언 흑인 박물관이었다.

취임 직후인 2월 7일과 지난 23일 공개된 퓨리서치센터의 여론조사 결과를 비교해보면 소수인종들의 배신감이 수치로도 확인된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긍정평가 비율은 47%에서 40%로 줄었고, 51%이던 부정평가 비율은 59%가 됐다. 특히 흑인·히스패닉·아시안의 부정평가 비율은 각각 82%·72%·69%에 달했다. 2월 조사에서 기록했던 78%·62%·51%에서 큰폭을 상승한 수치다. 같은 기간 백인의 부정평가가 ‘55%→49%’로 상대적으로 변동폭이 적었던 것과도 차이가 난다.

LULAC의 크루즈 대변인은 이에 대해 “사실 소수인종과 노동자 계층은 미국 사회에서 서민층에 다수 포함돼 있다”며 “이민정책 등 소수인종을 특정한 정책이 불을 붙이긴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관세를 통한 무모하고 충동적인 접근으로 부유층을 제외한 전 계층의 가정을 생존의 위협으로 몰고가는 데 대한 분노가 확산된 결과”라고 말했다.

오하이오주 쉐보레 공장 근처에 미국 국기가 걸려 있다. AFP=연합뉴스

오하이오주 쉐보레 공장 근처에 미국 국기가 걸려 있다. AFP=연합뉴스

노조 관계자 역시 “미국은 이민을 통해 성립된 국가이고 노동자 계층 역시 인종으로 구분할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며 “분열이 아닌 단결을 통해 미국의 미래를 건설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미국의 다양성은 약점이 아니라 강점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