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칸다르 모메니 이란 내무장관은 "화재의 약 80%가 진압됐다"고 밝혔지만, 강풍 탓에 남은 불을 끄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전해졌다. 호르모즈간 주정부는 오는 29일까지 3일간을 애도 기간으로 선포했다. 이와 별도로 중앙정부도 28일 하루를 애도일로 정했다. 이에 맞춰 각지의 영화관도 일시적으로 문을 닫기로 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26일 오전 11시 55분(현지시간) 샤히드라자이항에서 일어난 폭발은 약 50㎞ 떨어진 곳에서도 폭발음이 들릴 정도로 강력했다. 폭발 규모가 컸던 탓에 항구 건물 상당수가 심하게 파손됐다.

26일 이란 남부 항구 도시 반다르 압바스 인근 항구에서 대규모 폭발과 화재가 발생한 후 27일 소방관들이 화재를 진압하려고 노력하는 모습. AP=연합뉴스
샤히드라자이항은 세계 원유 수송의 20%를 차지하는 호르무즈 해협에 위치한 이란 최대의 항구다. 연간 8000만t의 화물을 처리하며 석유 탱크와 화학 시설을 갖췄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해 이 항구는 이란 전체 컨테이너의 85%를 처리했다"고 전했다. 경제 분석가인 압돌라 바바카니는 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이 항구의 운영이 2주만 중단돼도 이란 경제에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짚었다.
사고가 일어난 토요일은 이란에선 한 주의 업무가 시작되는 날이다. 당시 항구에 많은 직원이 일하고 있던 때라 인명 피해가 컸다. 연기가 반다르압바스 전역에 번지면서 당국은 인근 지역에 비상사태도 선포했다.

2025년 4월 27일 이란 반다르 압바스 근처 항구의 화재 현장 위성사진. AP=연합뉴스
당국은 주민들에게 야외 활동을 자제하고 실내에 머물라고 권고했으며, 학교와 사무실은 폐쇄됐다. 다만 당국은 "유독성 가스가 유출되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구조대원 상당수가 마스크 없이 구조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이날 열린 호르모즈간주 위기관리본부 특별회의에 직접 참석해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발생했다"고 질책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특히 "항구에 컨테이너 12만∼14만개가 장기간 보관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물류·통관 절차를 개선하라고 말했다.
"미사일 원료가 폭발 원인" 지적도
정확한 사고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이란 위기관리 기구 대변인은 컨테이너 안 화학물질을 제대로 보관하지 않은 것이 사고 원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란 정부 대변인은 "항구 한쪽 구석에 보관돼 있던 화학물질 보관 컨테이너에서 폭발했을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화재 진압 전까지는 원인 규명이 어렵다"고 여지를 남겼다.
익명을 요구한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관계자는 NYT에 이번 폭발 원인이 이란의 중거리 재래식 미사일 제조에 쓰이는 과염소산나트륨이었다고 말했다. 와이넷 등 이스라엘 매체는 지난 2∼3월 중국에서 선적된 과염소산나트륨이 폭발 원인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고 정황이 2020년 레바논 베이루트의 항구에서 발생한 폭발 대참사와 닮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시에도 항구 한 편에 6년째 적재된 질산암모늄이 폭발 원인으로 지목됐다. 런던대학교 화학과 안드레아 셀라 교수도 CNN에 "이번에 이란 항구에서도 비료와 산업용 폭발물에 쓰이는 질산암모늄이 폭발했을 수 있다"면서 "보관이 부실하면 화재 발생 시 대규모 폭발이 일어난다"고 했다.
한편 이번 폭발은 이란이 오만에서 미국과 3차 핵 협상을 시작한 날 발생했으나, 두 사건이 관련 있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이란 당국은 테러나 군사 공격 가능성을 시사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당국자들도 이번 사고와 연관성을 부인했다고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이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