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먹어도 韓판매량 근접" 현대차, 무너진 中시장 재공략

지난해 4월 열린 ‘2024 베이징 국제 모터쇼’에서 현대차 ‘아이오닉 5 N’가 전시돼 있다. 뉴스1

지난해 4월 열린 ‘2024 베이징 국제 모터쇼’에서 현대차 ‘아이오닉 5 N’가 전시돼 있다. 뉴스1

#현대자동차와 중국 베이징자동차(BAIC)의 합작사 베이징현대는 올해 초부터 중국 47개 도시에 배치할 딜러를 모집하고 있다. 베이징, 상하이, 충칭 등 직할시를 비롯해 동북권인 하얼빈부터 최남단 하이난섬 싼야까지 주요 도시를 망라한다. 대규모 딜러 모집은 2017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사태로 촉발된 한한령(限韓令) 이후 무너진 중국 판매망을 복원하기 위해서다. 공고문에서 베이징현대는 “중국에 장기적으로 투자할 것”이라고 했다.

#베이징현대는 지난 22일 상하이에서 중국 맞춤형 전기차 ‘일렉시오(ELEXIO)’를 공개했다. 중국 소비자 취향을 고려해 제조한 전기차는 이번이 처음이다. 일렉시오를 포함해 2027년까지 6종의 중국 전용 전기차를 발표할 예정이다. 베이징현대 관계자는 이날 현지 매체의 철수설 관련 질문에 “어떤 다국적 기업도 중국 시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현대차그룹이 중국 재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자동차 판매량이 약 3143만대로 미국(약 1598만대)보다 약 2배 큰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이다. 워낙 큰 시장이다보니 현지화를 강화해 다시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사드 이전 수준 회복할까 
현대차도 2010년대 중반까지는 중국에서 연간 100만대 이상을 팔며 시장의 4~5%를 차지했다. 하지만 사드 사태 이후 소비자의 외면, 현지 업체들의 저가 판매에 판매량이 급감했다. 2016년 현대차·기아 현지 생산분 판매량은 114만2016대였지만, 한한령 이후인 2017년 78만5006대로 감소한 뒤 지난해엔 20만4573대까지 줄었다. 지난해 현대차·기아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0.65%에 불과하다.

현대차는 중국 5개 공장 중 이미 베이징 1공장(2021년), 충칭공장(2024년)은 매각했고, 2016년 가동을 시작한 장수성 창저우 공장도 매각 수순을 밟고 있다. 이에 현지에선 철수설까지 돌았지만 최근 반전을 꾀하는 모습이다.


중국 전기차 시장의 높은 성장세와 관련이 깊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협회(KAMA)와 시장조사업체 마크라인즈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순수전기차(BEV) 판매량은 630만3000대로, 2023년(496만5000대)보다 26.9% 늘었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해 60.9%나 된다. 미국 전기차 판매량이 2023~2024년 6.6% 성장(116만8000대→124만5000대)에 그치거나, 유럽이 같은 기간 1.3% 역성장(201만9000대→199만3000대)한 것과 대조적이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이렇다 보니 현대차·기아는 중국에서 실수요자를 공략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달 중순 상하이모터쇼에는 불참했지만 지방 도시에서 열리는 소규모 전시회에는 꾸준히 참석해 현지 접점을 늘리는 식이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국에서 전기차 점유율 1%만 높여도 현대차·기아의 지난해 국내 전기차 판매량 8만5000여대에 근접하는 6만여대를 팔 수 있다”며 “사드 이전 점유율 수준으로 회복할 경우, 연간 20만대 이상의 안정적 판매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려면 중국 시장을 선점한 현지 업체나 테슬라와 맞대결을 피하기 어렵다. 전기차통계업체 EV볼륨에 따르면, 비야디(BYD)의 지난해 중국에서 신에너지차(전기차·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 판매량은 352만대로 점유율 31.4%에 달했다. 우링자동차(67만대), 테슬라(66만대), 리오토(50만대), 지리자동차(46만대) 등 다른 경쟁자도 많다. 

보조금 폐지 효과도…“가격 격차 줄었다”

세계 최대 전기차 각축장에 현대차그룹이 다시 도전할 만한 이유는 더 있다. 2023년부터 중국 정부가 민간 기업의 기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전기차 직접보조금 지급을 중단하면서 ‘기울어진 운동장’이 약간 개선됐다. 중국은 2009년부터 중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 제조사에 보조금을 지급해왔는데, 코트라에 따르면 12년간 총 1600억 위안(약 31조원)에 달한다. 그중 BYD가 70억 위안(약 1조4000억원)을 받았다. 보조금 폐지로 중국 업체들의 원가 부담이 늘자 차값도 50만~100만원 가량 올랐다.  

지난 4월 25일 상하이모터쇼에서 BYD의 고급브랜드 '양왕'이 공개한 초대형 플러그인하이브리드 SUV 'U8L'차량. 연합뉴스

지난 4월 25일 상하이모터쇼에서 BYD의 고급브랜드 '양왕'이 공개한 초대형 플러그인하이브리드 SUV 'U8L'차량. 연합뉴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보조금 폐지로 중국업체와 외국업체의 차량 가격 격차가 줄었다”며 “현대차·기아가 ‘이제 해볼 만한 싸움’이라고 여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현대차그룹은 트럼프 행정부의 25% 자동차 관세로 미국 수출길에 부담이 생긴 상황에서 미국 이외 시장에서 판매량을 끌어 올려야 하는 상황이다. 현대차·기아는 해외법인장들에게 “올해 목표치 대비 10% 이상 더 팔라”는 지시를 내린 상태다.

한편, 중국이 전기차 및 배터리 기술에 앞서가면서 최근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이 중국과 기술 협력을 늘려가는 중이다. BYD·지리·둥펑 등 중국 업체는 중국의 생성 AI 딥시크를 도입한 데 이어 닛산·BMW도 동참을 선언했다. BYD는 5분 충전으로 400㎞를, 배터리기업 CATL은 5분 충전에 520㎞를 주행하는 기술을 잇달아 선보였다. 임명섭 한양대 미래자동차공학과 교수는 “중국 전기차 소비자들의 수준도 높아졌다. 현대차·기아가 현지에서 고급 브랜드로 탈바꿈할 필요가 있는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