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일 오후 2시쯤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타임뱅크하우스에서 경기민요 부르기 수업이 진행 중이다. 이아미 기자
지난 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포방터시장 초입에 있는 사회복지단체 ‘타임뱅크하우스’의 서로배움교실에서 장구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남편과 함께 이곳에 온 이송하(35)씨는 장구채를 양 손에 쥐고, 어설프지만 열심히 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그의 선생님은 대학생 때부터 장구를 쳐 왔다는 이재영(76)씨였다. 이재영씨 또한 이곳에서 장구를 가르치는 대신 민요를 배우고 있었다. 이곳에서 무언가를 배울 때 드는 수업료는 없다. 단지 자신이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으면 된다.
한 시간 도움 주고 한 시간 도움 받기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포방터시장 안에 있는 타임뱅크하우스. 타임뱅크코리아 손서락 대표와 양혜란 사무국장 부부가 지난 2022년 6월부터 운영하고 있다. 이아미 기자
타임뱅크란 쉽게 말해서 다른 사람을 도운 시간을 저축하고, 자신이 필요할 때 다른 이로부터 그만큼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자원봉사보다도 공동체 개념이 강하다. 이웃 간 서로 노동을 도와주는 ‘품앗이’와 비슷하다. 타임뱅크하우스는 요양병원 컨설턴트 출신 손서락 대표와 양혜란 사무국장이 지난 2022년 6월부터 운영하는 곳이다. 돌봄 수요는 늘고 있지만 현행 사회복지 서비스만으론 한계가 있는 상황이 이들이 타임뱅크하우스 운영을 시작한 이유다.
서울 중랑구에 있는 ‘사이시옷 시간은행’에서도 이러한 타임뱅크가 이뤄지고 있다. 서울시립대종합사회복지관이 2023년 4월부터 운영을 시작했고, 현재 약 100명의 회원이 참여하고 있다. 이곳에서 3년째 닉네임 ‘석전’으로 활동 중인 이원근(59)씨는 적립 9520분, 사용 3210분으로 회원 중 적립 시간 순위 1등이다.
이씨는 30년간 인테리어업에 종사하다가 8년 전 크게 다친 뒤 5년가량 집에서 홀로 시간을 보냈다. 복지관을 통해 처음 타임뱅크를 접한 이씨는 자신의 전문 분야를 살려 복지관 시설을 수리하고, 동네 아이에게 자전거를 타는 법을 가르치면서 시간을 적립했다. 그렇게 모은 시간은 오일 파스텔과 뜨개질 수업에 사용한다. 이씨는 “최근 이웃집 벽지 도배를 도왔는데, 고맙다며 김과 채소를 챙겨주신 게 기억에 남는다”라며 “내가 남보다 1%, 2%라도 잘하는 것을 나눌 수 있단 게 행복하다”고 말했다.
1인 가구 증가…“돌봄 문화 형성 기여”

2일 서울 중랑구 서울시립대학교종합사회복지관 '사이시옷 시간은행' 회원 석전(이원근·59)씨가 소모임 게시판 앞에 서 있다. 이아미 기자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1인 가구는 782만9000가구로, 전체 가구의 35.5%를 차지한다. 10명 중 3명은 혼자 사는 셈이다. 서울연구원이 2022년 발표한 실태조사 자료를 보면 서울시 거주 1인 가구 3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 중 62.1%가 외로움을, 13.6%가 사회적 고립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에선 타임뱅크를 정부 차원에서 적극 지원하고 있다. 영국은 2018년 사회적 고립을 국가 대응 과제로 선정해 외로움부 장관직을 만들고, 타임뱅크를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중국은 타임뱅크를 고령화 등에 따른 복지 재정 부담의 해법으로 보고 지난 2022년 베이징시 전역에서 시행 중이다. 한국은 2000년대 초 구미사랑고리공동체를 시작으로 10여 곳의 타임뱅크 현장이 운영되고 있다.
1인 가구가 증가 추세인 만큼 타임뱅크가 돌봄과 사회복지의 보완책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박현주 서울시립대학교종합사회복지관 과장은 “기존의 자원봉사 개념은 일방향으로 이뤄져 봉사를 받는 사람에겐 미안함을, 봉사를 하는 사람에겐 피로감을 줄 수 있다”며 “타임뱅크는 상호 호혜적인 만큼 관계를 통해 함께 성장하는 구조여서 보완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양혜란 사무국장은 “타임뱅크는 재능과 시간을 나눠 지역사회 안에서 돌봄 문화를 만든다”며 “복지 서비스의 수혜자에 그치던 이들이 능동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걸 증명하고, 활용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설명했다.